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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생일 리남조할머니 "아직 몇십년은 문제없수다!"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10-16 10:25:29 ] 클릭: [ ]

▣ 리남조 가족사 중국 조선족 100년 력사 축소판

▣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 항일투사

10월 3일에 있은 ‘100세수연례’ 로부터 ‘지금은 100세시대’ 라는 말이 확실한듯 하다.

이날 연길 카이락스수정궁에서 펼쳐진 백세 수연례의 주인공은 연길시에 거주하는 리남조(李南祚)할머니이시다. 수연식에 먼저 방영하는 동영상에서 모든 하객들은 리남조할머니의 독서, 필기, 바느질, 설겆이를 하는 모습이거나 두손을 높이 들었다가 허리를 굽혀 두손으로 땅을 짚는 운동을 하는 등  믿기 어려운 장면들을 보고 “확실히 백세시대가 온다”고 찬탄하였다.

리남조할머니

100세수연례는 리남조네 가족사를 소개하는 록화방송으로 막을 올렸다. 리남조할머니의 원적은 한국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무의리이다.리남조의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 3대가 반일투사이다. 형제 8남매(7남 1녀)중 리남조는 10살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가사와 농사일을 했고 결혼 후 54세에 남편을 잃고 혼자몸으로 2남 6녀의 뒤바라지를 하였다. 자식들을 선후로 박사, 석사 공부를 시키고 의사, 대학 교수 등 인재로 키워낸 자랑스러운 어머니시다.

지금 5대에 53명 (큰딸, 80세)의 대 가족이 중국, 한국, 미국, 오스트랄리아 4개 국에서 살고 있는 데  리남조할머니는 중국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행복한 대가정

리남조의 할아버지 리수원(李数元,1874-1959)은 어린 나이에 서당공부를 했으며 신동이라고 불렸다. 1913년 어느날 리수원은 마을에서 조직한 시(诗)발표모임에서 반일(反日)시를 발표했다는 죄명으로 일본경찰들이 체포령을 내렸다는 소식을 듣자 가족들을 데리고 신의주를 통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 후 “사람은 까막눈이 되여서는 안된다”며 자비를 출자하여 류하현 삼원포에 생물동학교를 설립하고 우수한 학생들을 반일 무관을 양성하는 신흥무관학교에 추천하였다. 그리고 명신년 토벌을 피해 흑룡강성 녕안 밀강에 이사한 후에도 그 곳에 학교를 세우고 촌장으로 있었다.

리남조의 할아버지 리수원(李数元)

1923년 가을에 리수원은 동경성으로 이사, 항일 무장세력을 육성하는 데 일조했으며 항일투쟁에 큰 공을 세웠다.

리남조의 아버지 리대성(李大成)은 동북군 집단군 부군장으로 있었으며 1925년 김좌진 장군이 영안에서 신민부를 설립할 때 동경성 대표로 참석하여 회의 장소와 식사 관련 책임을 졌다. 1931년 ‘9.18’ 사변 후  민국 지방군 기병중대장인 마해산에게 군 자금을 후원하는 등으로 영안현내의 4,000여명 조선인들이 위기를 넘기는데 도움을 주었다.

1932년초에 리대성은 마해산과 공동으로 작전하여 소룡만과 잉가령에서 일본군 천야부대 기습에서 성공, 당년 12월에는 한국 독립군의 차도선과 함께 경박호반대첩을 하였다.1932년부터 항일 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리대성은 농장을 운영하면서 딸 리근숙(큰형님의 딸 입양) 이 유격대를 조직하는데 10만원의 자금을 해결해주기도 했다.

1933년 10월 리대성은 영안에서 체포되여 할빈관동군 사령부에 7개월 감금되였다가 신의주형무소로 이감되여 지방형 3년 재판을 받았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일본놈들에세 참살당했다.

리남조의 언니 리근숙(李根叔)은 1930년 공산당에 가입, ‘9.18’ 사변 후 항일구국운동에 뛰여들었고 1934년에 참군하여  동북항일련군 제4군 부녀주임 겸 선전처 처장을 담임했다. 1940년대초에 쏘련 모스크바대학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후 동경성 사라진에서 지방사업을 하였다.그러다 어느 날 뻐스에서 일본 사복경찰에게 발각되여 체포된 후 참혹한 고문을 당하고 불구가 되여 잠시 석방되였다가 다시 체포되여 일본군에게 참혹하게 총살당했다.

이날 리남조할머니의 100세 수연례에 참석한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전임 주임 리덕수와 연변조선족자치주당위 선전부 전임 부부장 채영춘이 축사를 올렸다.

리덕수는 축사에서 “조선족 100력사의 견증인인 리남조할머니의 건강 장수비결은 ‘화목+건강=애심’이다” 며 “리남조할머니는 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나라와 가족, 이웃을 위하여 기여하였다고 말했다. 채영춘은 “리할머니의 가족사는 우리 민족력사의 숙영이며 중국조선족 100년사의 축소판이다. 리남조할머니의 100년 인생은 많은 사람들의 념원을 오늘의 실천으로 증명했다. 리남조할머니는 우리 모두의 자랑이고 긍지이다”고 말했다.

리남조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손을 높이 흔들며 기쁨과 감사를 표하고 나서 이렇게 답사했다.

“나의 오늘은 나라의 덕분이고 자식들이 효도한 덕분입니다. 우리 집의 모든 사람들이 나쁜 일을 절대 안했습니다…지금은 글을 써도 글씨가 삐뚤어서 쓰고 싶은 글도 방정하게 못써서 아주 아쉽습니다…여러분들도 자식들의 효도속에서 건강 장수하십시요! ”

리남조할머니에 따르면 현재 그는 안경이 없이 신문을 보고 바늘귀도 꿴다. 썩 오래 전에 딸집을 가다가 물도랑에 넘어져서 무릅 뼈가 탈골되면서 그 후유증으로 가끔씩 무릎이 아픈 외 아무런 이상이 없다. 단 이발이 부실하여 십년 전에 치료를 하고 요즘에 불편해 틀이를 한 것 뿐이다.

가장 존경하는 어머니를 소설로 쓰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다고 말하는 리남조할머니이다.

리남조할머니는 “나의 몸에는 로인 반점도 없다. 우리 집에서 나 같이 건강함은 누구도 따르지 못한다. ”고 말한다.

건강비결은 무엇인가는 물음에 리남조할머니는 “늘 편안한 마음으로 남을 잘 받아줍니다. 40세부터 의학서적을 보면서 스스로 여러가지 건강운동을 만들어 50여년을 견지해왔습니다. 큰아들이 나에게 발운동을 어떻게 하면 좋다고 알려준 후로 나는 그런 발운동을 50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견지했습니다”고 말한다.

이제 몇년을 더 계실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 하고 묻자 “운동원처럼 건강하지는 않지만 먹을 것을 제대로 먹으니 지금 생각에 아직도 몇십년은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환하게 웃음을 짓는다. / 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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