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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내용은 적고 지도자 사진만 많은 촌사관, 무엇이 문제인가?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신화사 ] 발표시간: [ 2021-03-21 12:18:05 ] 클릭: [ ]

근년래 향촌진흥의 추진과 함께 촌사관(村史馆), 촌사주랑(村史走廊), 빈곤해탈 난관공략 진렬관 등 향촌문화시설들이 우후죽순마냥 생겨나고 또 이것이 사회적인 조류로 되고 있다. 《반월담》 기자가 부분적 지역들에서 취재하는 과정에 발견한 데 따르면 일부 촌력사관은 현실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맛’이 변해가고 있다. 군중들이 가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간부들이 많이 보며 전시품들중에도 본 촌의 특색이 적고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것들이 많다. 전시판에도 본 촌의 내용이 적고 지도자들의 사진이 많았다…… 일부 촌사관은 향토 맛과 문화적인 맛이 결핍했을 뿐만 아니라 랑비하고 또 형식주의가 번식하고 있었다.

촌사관이 고물관으로 돼

서부 모시 근교의 한 촌에서 《반월담》기자는 한 촌민에게 촌사관이 어디에 있는가고 물어보았는데 촌민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의 3층집을 가리키면서 촌민위원회 건물 안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촌민위원회 문어구에서 《반월담》기자는 촌사관의 간판을 보지 못했다. 건물에 들어선 후 층계를 올라 가서야 3층 입구 쪽에 문 한개가 나졌고 그우에 <촌사관>이라고 쓴 간판이 걸려 있는 것이였다. 전시관에 들어서니 옛날 농가 모양으로 장식한 전시구역이 보였는데 정중앙에 놓인 책상에는 기름등잔, 보온병, 차주전자가 놓여 있었고 량쪽 벽에 짚모자, 도롱이와 옥수수, 고추, 마늘, 락화생 등 모형품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벽 구석에는 밭갈이할 때 쓰는 보습이 놓여져 있었다……전시관은 촌민위원회의 한개 층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는데 마치 소형박물관 같았다.

《반월담》기자는 전시관을 돌아볼 때 전시된 분류가 력사 발전의 맥락에 따라 점진적으로 전시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국가의 중대한 력사사건과 향촌진흥 등의 문건발취와 표어들이고 촌 소개, 기초시설 건설 성과, 촌 지식청년점, 선진인물 등 소수의 몇 안되는 전시내용만이 본 촌과 비교적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들임을 발견했다. 유리상자 안의 항전 총칼, 각종 수표, 낡은 책, 당기, 메달과 마크 등은 문자소개가 없어 촌과 어떤 련계가 있는지 알수 없었다.

이 촌과 30키로메터 떨어진 다른 한 촌에서도 촌사관을 촌민위원회 건물 안에 꾸며 놓았다. 전시관에는 마찬가지로 적잖은 멜대와 매돌 등 고물들이 있었고 전시판의 내용은 근년래 촌에서 펼친 각종 향촌진흥 활동사진들이 위주였다. 《반월담》 기자는 전시관 안의 붉은 바탕에 흰글로 만들어진 향촌진흥 선전전시 벽면은 모양이나 크기가 앞에서 말한 촌사관과 똑같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기타 향진의 몇개 촌사관이거나 촌주제전시관을 돌아본 후 《반월담》 기자는 전시관들이 전시 내용이 거의 대동소이하며 전시품들이 많이는 동질화된 고물들이고 본 지역 특색이 결핍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촌사관을 한바퀴 돌아보느라면 마치도 고물잡화시장에 들어선듯한 느낌을 준다. 일부 전시관의 농민형상 밀랍인형과 식품도구들은 싸구려 민속주제 음식점에 들어선듯한 느낌을 주었다.

촌민들은 보지 않고 전문 지도자의 참관을 위한 것

여러 촌사관 부근에서 《반월담》 기자는 촌민들이 촌사관에 가본 적이 있는가고 물었는데 적잖은 촌민들은 모두 촌사관의 위치는 알고 있었지만 가 보았다는 사람은 몇명 안되였다. 한 촌민은 “우리는 농촌사람들이기에 그런 농기구들에 대해 흥취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촌사관은 촌민위원회 사무청사에 있는데 알림패말이 없었기에 외래 관광객들이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촌사관은 주요하게 이전에 참관 고찰을 온 지도간부들을 대상으로 개방하고 있었다. 《반월담》 기자가 한 촌사관의 방명록에서 보았는데 길림, 산동, 광동 등 지의 간부강습 대표들이 이곳에 와서 향촌건설 성과를 고찰한 후 방명록에 글들을 남기였다. 촌사관에서 청결사업을 하는 퇴직한 촌간부에 따르면 촌사관을 찾아오는 군중들은 적으며 참관오는 사람들은 주요하게 간부 단체들이다.

3칸짜리 농가를 개조해서 만든 ‘농촌 3가지 변화’ 개혁추진 빈곤부축전시관은 문앞에 몇개의 낡은 걸상과 화학비료주머니, 한무더기 옥수수이삭들이 쌓여져 있었다. 촌민에 따르면 전시관은 오래 동안 문을 열지 않았다. 평소에 촌에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 전시관은 늘 문을 잠그고 있으며 손님이 와서 참관하려고 해도 사전에 촌간부와 련계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반월담》 기자는 이 전시관 앞의 공시패말에서 전시관 건설자금은 동서부빈곤부축 협조로 지원된 49만원이며 건설류형은 향촌관광임을 볼수 있았다. 전시관 벽에는 커다란 액정모니터 텔레비죤 한대가 걸려져 있었는데 기자가 참관할 때 보니 마사져서 사용할 수 없었다.

취재 가운데서 어떤 기층간부들은 일부 촌사관은 촌 두가지 위원회의 정치 업적을 전시하는 장소로 변모했고 지도자들의 고찰사진 전시관으로 되였다고 말했다. 《반월담》 기자는 한 촌사관에서 각 급 지도일군들이 이 촌과 소재한 향진을 고찰할 때 찍은 20여장의 사진들이 벽 한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것을 보았다. 다른 한 촌의 전시관에서는 두개 벽면의 전시판에 모두 현과 구의 지도일군들이 고찰하는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어떤 기층간부들은 지도자가 향촌진흥을 고찰 오면 보여줄 것이 있어야 하는데 촌력사관을 만들면 지도자를 접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농촌의 새로운 면모와 기상을 반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형식이 내용보다 큰 것’에 경각성 높여야

일부 기층간부들은 촌사관을 건립하는 최초의 지향과 소원은 촌 력사를 발굴하는 것을 통해 충분히 향토문화와 민속풍토인정, 향토 명인사적을 전시하고 인민군중들의 분투창업 려정을 반영하는 것이며 광범한 농촌군중들의 아름다운 고향에 대한 영예감과 귀속감을 격발시키고 우량한 민속가풍을 발양하며 향수와 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군중들이 고향의 발전을 보게 하고 내심으로 당의 정책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것이라는 것이였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구체적인 조작에서 향촌 문화진흥을 간단히 촌력사관 건설과 함께 하고 촌사관 건설에서 또 간단한 모식화의 전시와 고물들과 함께 처리하고 있다. 때문에 촌 력사의 생동한 발굴전시가 부족하며 일부 지방에서는 촌사관이 현실적이 되건 말건, 보는 사람이 있건 말건 고려하지 않으며 촌사관 건설을 단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총망한 건설이기에 정부에서 돈을 팔고도 군중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된다.

서남정법대학 교수 정덕안은 촌사관, 향수문화관 등은 우리 나라에서 아직은 신생사물에 속하는바 최근 년래 향촌진흥과 함께 점차 흥기하고 있으며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이기에 일부 촌사관 건설은 비교적 거칠며 완벽하게 되기까지는 과정이 수요된다고 말했다.

정덕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부 촌사관의 곤경은 바로 기층에 인재가 결핍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촌사관은 거시적 주제전시를 수요할 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이야기도 체현돼야 한다. 촌사관의 설계자는 정책에 대해 일정한 리해와 파악능력이 있어야 하며 촌민들과 촌의 사정에 대해 료해하고 전시기획 등 전문적인 요구도 비교적 높아야 한다. 목전 일부 촌사관의 거시적 정책개념전시가 지나치게 많고 지도자에 대한 전시가 너무 많으며 본 지역 문화전통에 대한 발굴이 부족하고 본 촌 군중들의 분투사, 획득감 등이 잘 체현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각 지에서 촌사관을 건설할 때 맹목적이지 말아야 하며 응당 농후한 문화분위기와 관광업 위주의 전통 촌락에 대해 건설하고 종합적으로 각 면의 인재자원을 통괄하며 아울러 본지 빈곤퇴치 난관공략, 문화관광발전, 도시농촌건설, 향촌진흥 등 계획에 서로 련결시켜야 한다. 촌사관 건설은 너무 의도적으로 소리, 빛, 전기, 환원시물레이션 등 현대화 수법을 추구할 필요가 없으며 아울러 응당 진입성, 참여성, 접근성을 증강하여 대중을 향한 공공문화봉사시설로 되여야 하며 군중들이 마음 속으로부터 친밀감을 증강할수 있게 해야 한다.

/래원: 신화사, 편역: 안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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