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 [
리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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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6-08 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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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민족영웅 양정우(1905ㅡ1940) 장군의 손자인 마계지는 일전 할아버지가 당년 전우들과 어깨 겯고 일제침략자들과 맞서 영용히 싸우던 항일유적지를 찾아 선렬들의 업적을 기리였다. 양정우와 함께 동북항일련군을 이끌었던 중공남만성위 서기이며 항일명장 위증민(1909ㅡ1941) 장군의 손자 관옥부 등 일행이 이번 답사에 함께 동행했다.
동북항일련군 하리회의 유적지에서 양정우 손자 마계지(왼쪽)와 위증민 손자 관옥부가 손을 잡고 있다. 1936년 7월, 동북항일련군 제1군 군장 겸 정위인 양정우와 동만특위 서기이며 동북항일련군 제2군 정위 위증민은 이곳 하리밀영에서 동남만당정군고급지도간부회의(하리회의)를 소집하여 공산국제 7차대표대회 정신을 전달하고 1, 2 동북항일련군을 합병하여 양정우가 사령원 겸 정위를 담임하고 위증민이 중공남만성위 서기직을 맡는 등 일련의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동북항일련군 항일명장 후손들의 이번 답사는 길림성 통화현 관련 부문의 조직하에 이루어졌다. 통화현은 동북항일련군이 남만일대에서 일본침략자들과 맞서 싸우던 주요 근거지의 하나로 당년에 항일용사들은 장백산 망망림해에 의거하여 헤아릴 수 없는 곤난들을 극복하면서 일본침략자들을 용감히 무찔렀다.
양정우 장군 손자 마계지와 위증민 장군 손자 관옥부 등 일행은 통화현에서 동북항일련군문화원, 하리항일근거지, 사방산과 방가채 항일밀영과 <민족의 혼 양정우> , <철혈소년> 등 홍색영화를 촬영했던 곳들을 돌아보면서 선인들의 업적을 기리였다. 당지의 촌민들은 항일영웅 후손들이 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발적으로 마중을 나와서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항일투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였다.
<민족의 혼 양정우> 영화 촬영지를 찾은 마계지와 관옥부.
항일민족영웅 양정우의 본명은 마상덕이며 1905년 하남성에서 탄생했다. 1932년 당중앙에서는 그를 동북에 파견하여 항일련군을 조직하는 임무를 맡겼다. 양정우는 뛰여난 조직력과 호소력으로 남만에 흩어져있던 16갈래의 항일무장단체들을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항일무장대오 주위에 뭉치게 함으로써 드디여 1934년 2월에 동북항일련군 총지휘부를 세우고 직접 총지휘를 맡았다.
이 시기 조선족의 저명한 항일투사 리홍광이 동북항일련군 총지휘부 참모장직을 맡고 양정우 장군과 어깨 겯고 함께 싸웠다. 안타깝게도 1935년 5월 25세의 젊은 나이에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희생되였다.
항일밀영유적지를 찾아 답사.
환영 나온 촌민들이 마을에서 전해내려오고 있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이상 사진 통화현정부 제공).
당중앙과 모든 련계가 단절된 렬악한 상황에서 양정우 장군은 고도의 사명감을 지니고 자신들의 항일부대가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있는 대오라는 것을 한시도 망각하지 않고 새 중국 탄생을 위해 일제와 피어린 투쟁을 견지하면서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양정우의 아들 마종운은 2살에 혁명에 참가한 아버지와 갈라진 후로 한번도 아버지 양정우 장군을 뵙지 못했으며 한평생 평범한 철도로동자로 일하다가 1964년에 병으로 돌아갔다. 마종운은 슬하에 자녀 5명을 두었는데 아버지 양정우 장군의 혁명유지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이름을 계광(继光), 계선(继先), 계전(继传), 계지(继志), 계민(继民)으로 지었다.
5남매를 혼자서 어렵게 키워온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엄격히 요구하고 책임을 중히 여기며 만족함을 알아야 한다(严要求、重责任、懂知足)'를 가훈으로 정해주었는데 가훈에 밝힌 것처럼 이들은 한평생 정부에 단 한번도 손을 내밀지 않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평범한 철도로동자로 묵묵히 살아왔다.
양정우 장군의 손자 마계지는 일찍 18살에 윁남자위반격전에 참가하여 전투에서 3등공을 세웠으며 허리에 부상을 입고 파편이 아직도 몸에 남아있다고 한다. 2019년 길림성에서는 여러면으로 되는 노력을 통해 양정우의 손자 마계지 일가를 하남성 정주에서 장춘으로 모셔오는 데 성공했다.
료해한 데 따르면 마계지로인은 길림성에 온 후 관련 부문과 함께 홍색이야기와 동북항일련군정신을 선전하며 할아버지 양정우 장군의 사적을 사회에 널리 알리고 리상과 신념 교육 등 후대교양사업에 적극 몸 담그고 있다.
/길림신문 리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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