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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전 열혈 당원들, 혁명의 불씨를 연변땅에 뿌리다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6-23 10:31:03 ] 클릭: [ ]

저명한 시인 하경지선생이 연변을 돌아보고 “산마다 진달래요, 마을마다 렬사비”라는 유명한 시구를 남겼듯이 로혁명근거지에 속하는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는 최근년에 당지의 홍색력사를 발굴하고 혁명유적지를 복원하는 사업에 큰 공을 들이고 있다.

룡정시에 있는 중공연변구위원회유적지가 이중의 한곳으로서 지금으로부터 93년 전인 1928년, 중국혁명의 불씨가 바야흐로 전국 각지에 전파될 때 바로 이곳에서 연변의 최초 중국공산당구위원회가 고고성을 울렸다.

중공연변구위원회기념관은 현재 룡정시교원연수학교 울안에 자리잡고 있다. 룡정시로혁명근거지건설추진위원회에서 근무하는 김동수선생의 소개에 따르면 건물 면적이 280평방메터 되는 기념관 복원공사는 2020년 8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여 금년 4월에 시공을 마쳤으며 그후 곧바로 실내전시작업에 착수하여 이미 기본상 완공된 상황이다.

기념관 내에 전시한 문자설명과 도편 그리고 240여폭의 사진을 통해 연변당조직이 초창기에 성립된 자세한 래력과 당조직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 그리고 일본제국주의 침략과 부패한 반동정부에 맞서 싸운 사실들을 알아볼 수 있다.

중공연변구위원회는 당시 봉천, 길림, 흑룡강의 당사업을 령도하던 중공만주성림시위원회의 비준을 거쳐 1928년 8월 룡정에 있는 《민성보》 건물에서 성립되였다. 때문에 중공연변구위원회유적지는 《민성보》 신문사의 옛터이기도 하다. 연변의 문화, 교육 그리고 반일 력사에서 룡정은 큰 획을 남기고 있다. 연변의 교육계와 공상계의 40명 애국지사들이 힘을 합쳐 룡정에서 당시 대중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일제의 중국 침략과 부패한 반동통치배들을 반대하는 《민성보》를 처음으로 발간하기로 한 것이 그 유력한 일증이다.

《민성보》는 1928년 1월에 정식으로 발간되였는데 당시 연변에서 발행된 유일한 진보적 신문이였다. 이때 신문사의 사장으로 있은 관준언(1885년ㅡ1971년, 시버족)은 일본이 투항한 후 연변행정독찰공서의 첫 전원으로 임명되였으며 해방후에는 길림성최고인민법원 원장, 길림성 부성장, 길림성정협 주석 등 요직을 담임하기도 하였다.

1928년 2월, 당조직에서는 료녕성 영구에서 당지부를 세운 경험이 있고 중공만주성림시위원회에서 조직한 당원간부양성반까지 참가한 주동교를 룡정에 파견하였다. 주동교는 1907년에 심양에서 태여났으며 19세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룡정에 온 후 그는 《민성보》의 편집으로 있은 외에 룡정 대성중학교 한어교원으로도 초빙되였다. 주동교는 자신의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비밀리에 진보적 사상을 전파하고 당조직을 건립하는 활동을 추진했으며 1928년 2월 28일 중국공산당 룡정촌지부를 세웠다. 이는 연변에서 제일 처음으로 세워진 당지부이다.

1928년 3월과 6월, 두번에 나누어 연길, 훈춘, 화룡, 왕청 등 4개 현에 있는 소학교에 북경향산자유원 사범부의 졸업생 40여명이 교원으로 왔는데 이들 중 무려 11명이나 공산당원이였으며 공청단원도 6명이 있었다. 연변의 공산당조직과 당활동은 이렇게 봉천에서 온 주동교와 북경에서 온 열혈 청년들을 중심으로 시작을 뗐다.

여기에는 이런 한단락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북경에서 첫패로 연변으로 떠나는 졸업생들 중에 16살에 입당한 류건장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당조직에서는 류건장에게 연변에 도착한 후 현지의 당조직과 련락을 취할 것을 지시하면서 암호는 ‘봉천친구'라고 알려주었다.

지금의 룡정시 삼합진에 내려가서 교원으로 있게 된 류건장은 이제나 저제나하고 지방당조직과 하루빨리 련락이 닿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6월의 어느 하루 드디여 ‘봉천친구'로부터 온 서신을 받게 되였는데 바로 주동교였다. 이렇게 되여 그는 룡정촌당지부의 서기로 있는 주동교와 련락을 취하고 조직관계를 맺게 되였으며 그후 이들은 연변에서 지방당조직을 발전시키는 활동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무렵 연변의 연길, 화룡과 훈춘에서 북경에서 파견되여 온 공산당원과 공청단원들을 주축으로 7개의 당지부가 재빨리 세워졌으며 1928년 8월, 중공연변구위원회가 성립된 후 얼마 안돼 또 2개 지부가 증설되여 모두 9개 당지부가 세워졌고 당원은 22명이였다. 연변구위는 사무실을 민성보사에 두었으며 주동교가 서기직을 담임하고 산하 9개 당지부의 서기는 전부 북경에서 온 나젊은 열혈 당원들이 맡았다.

중공연변구위원회의 성립은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연변 여러 민족 인민들의 영광스런 투쟁의 새 편장을 열어놓았다. 나젊은 열혈 당원들은 《민성보》를 진지로 학교와 사회에서 일제의 사악한 침략 야심을 폭로하고 부패하고 무능한 반동정부를 비판하였으며 맑스레닌주의와 중국공산당의 진보적 사상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면서 혁명의 불씨를 연변 곳곳에 뿌림으로서 연변지방당사에 휘황한 한페지를 남겼다.

/길림신문 리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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