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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릴레이]동창생의 ‘각시’를 널리 자랑하렵니다

편집/기자: [ 최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6-28 20:41:11 ] 클릭: [ ]

《길림신문》은 ‘사랑+릴레이’라는 타이틀로 매달 부동한 주제로 계렬 공익행사 진행, 행사에 참여한 분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전하며 사랑 릴레이를 이어가려 합니다.

오늘 발표하는 것은 이달 주제 ‘널리 자랑합니다’ 감동의 응모글입니다. 불구자임에도 남을 먼저 챙겨주고 계모이지만 그 누구보다 자식을 잘 키우고 가정을 알뜰하게 꾸려나가는 ‘각시’, 사랑으로 가득찬 ‘각시’의 아름다운 사연이 우리 사회에 감동을 전하고 또한 이러한 감동은 사랑으로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동창생의 ‘각시’ 김경숙을 널리 자랑하렵니다

올해 5월 25일 우리 대선대대(왕청현동진공사) 1975년급 소학졸업 동창생들은 김태운(59주세)이라는 동창생을 하늘나라에 보냈습니다.

태운이는 정말 우리 동창들 속의 인기였습니다. 태운이는 타고 난 유머로 모이는 장소마다에서 뭇사람들을 웃기고 즐겁게 했으며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러는 그가 언녕부터 당뇨로 앓고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었지만 만날 때마다 늘 쾌활한 모습에서 그가 정말 죽을 정도로 아픈 줄은 누구도 몰랐습니다.

태운이의 마지막길을 보낼 때 누군가 박상철이는 그래도 친구책임을 다 했으니 다른 유감은 없겠다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사실은 태운이가 세상뜨기전 연길에 와 치료를 받았는데 상철이네 집에 보름간 묵으면서 치료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아니, 상철이 각시는 심한 불구자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 집에 묵으며 병치료를 했단 말이지?…)

그러다 보니 자연 상철이 각시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상철이의 딸이 장춘 어느 학교에 붙었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정말 듣던중 반가운 소리였습니다. 상철이도 경한 소아마비 장애자였는데 일도 왕왕 못하다 보니 생활이 궁핍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딸애가 한돌이 되는 그때 상철이의 본 안해는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안해가 없는 집에서 상철이는 타락하다 싶이 살면서도 딸애만은 꼭꼭 손을 이끌고 어디든지 다녔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딸애를 마을친구들이며 이웃들에서 많이 보살폈지요.

그 딸애가 지금 커서 어느 대도시 학교에 붙었다니 정말 남의 일 같지 않게 기뻤습니다. 애가 학교를 가기 전에 꼭 한번 상철이네 집에 가보자고 동창들이 약속을 했습니다. 그렇게 상철이네 집에 다녀온 적 있는 동창생의 안내로 울바자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터밭은 풀 한포기 없이 알뜰하게 가꿔져있고 남새들이 푸르싱싱 자란 것이 웬만한 일군의 솜씨가 아니였습니다.

어머니(김경숙)와 딸

그런데 우리를 맞아준 상철이의 각시는 앉은 자리에서 절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1급장애인이였습니다. 하지만 환한 웃음을 지으며 스스럼없이 우리를 반겨주는 그녀는 아주 성격이 활달하고 인정미가 넘치는 녀성이라 우리는 사귄지 오랜 친구처럼 마주앉아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상철이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고향에 있는 친구가 연길로 병치료를 온다며 안절부절 못하더랍니다. 가장 어렵게 살 때 그 친구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며 한숨을 지으니 집으로 모시고 와서 치료도 해주자고 안해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답니다. 그제야 상철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기뻐하더랍니다. 그렇게 모셔온 친구가 병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참 안되여 집에 있는 돈을 다 모아 5,000원을 내놓았답니다.

“돈은 나중에 있을 때 갚아도 되니 이번 걸음에 치료를 잘 하라.” 고 했답니다. 그러니 태운이는 갖고 온 돈이 있으니 걱정말라며 밀막아 놓더랍니다. 그렇게 상철이네 부부는 태운이를 정성껏 돌보았고 태운이는 치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답니다. 그것이 마지막길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며 상철이 각시는 그렇게 슬퍼하는 것이였습니다.

여기까지만으로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다 계모로서 남편의 딸을 친자식처럼 키워 오늘 고등학교에까지 보내게 된 이야기를 우리 모두는 울며 웃으며 들었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상철이를 만났답니다. 사람은 똑똑한데 어쩌면 가진 것이 없기로 알짜 빈털터리더랍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좋아서 전화통화도 하며 사귀고 있는데 하루는 옆에 있던 남편의 딸애가 래일은 자기 생일이라며 우리 집에 오겠냐고 하더랍니다. 친엄마는 아니여도 생일날 엄마가 그리워 어린 애가 와달라고 하는데 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그래 갈게.” 하고 대답했답니다.

그렇게 왕청에서 사는 남편의 세집으로 찾아 떠났답니다. 근데 세상에, 집이라고는 아주 폭격맞은 꼴이고 발 들여놓을 자리조차 없더랍니다. 그런대로 집을 정리해놓고 저녁이 깊어 잠을 자려고 하는데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고 두눈에서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리더랍니다. 어떻게 무슨 생각을 하고 이렇게 사는 남자한테로 시집오려고 했나 생각하니 자기로도 억이 막히더랍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이 왜 그런 남자를 좋아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답니다. 비록 그토록 없이 살면서도, 그토록 힘들게 살면서도 딸애만은 버리지 않고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니 제 식구는 어디까지나 지키며 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다시금 그녀더러 그 집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답니다.

남편의 세집에 들어서니 말없이 눈만 말똥하니 치켜뜨고 자기 눈치를 보는 딸애가 너무 불쌍하여 눈물이 왈칵 솟더랍니다. 그렇게 그녀의 계모생활은 시작되였답니다.

그후 딸애를 연길에 데려다 공부를 시키려고 하니 관계자가 자선기관을 찾아가라고 하더랍니다. 눈물이 두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아이를 앞세우고 돌아나오는 수 밖에 없었답니다.

후날 연변조선족자치주장애자협회 리춘자 회장과 두만강애심협회 윤희백 회장의 도움으로 딸애를 소학교에 입학시켰답니다. 그러나 마선앞에 올라앉기도 힘든 그녀는 마선바느질로 겨우 생계를 유지해나갔는데 딸애의 학잡비까지 마련하려니 더욱 어렵게 되였답니다. 그런 중에 장애자협회며 애심협회 그리고 주위 선량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떤 이들은 아무리 먼 거리에서도 일감만 있으면 찾아주군 하여 큰 힘이 되였답니다.

그렇게 12년을 딸을 데리고 살아오면서 친딸처럼 키워내려는 엄마의 진정이 딸에게 전해졌는지 오늘도 딸 애영이는 해맑은 얼굴로 엄마를 마주하고 웃습니다.

요즘 애영이는 장춘학교로 떠나기 전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 고스란히 엄마 손에 쥐워주더랍니다. “엄마, 돈이라는 건 쓰자고 버는 것이니까 이 돈을 한푼이라도 남기지 말고 엄마가 다 쓰세요. 엄마가 나를 키우면서 얼마나 속을 많이 태웠는데 이 돈이 다 뭡니까.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다 엄마를 호강시켜 드릴게요. ” 엄마는 그러는 딸이 고맙고 대견하여 울며 웃으며 딸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마주 앉은 우리네들도 정말 모두 울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습니다.

참으로 모녀간의 이야기만으로도 족히 감동적이였는데 글쎄 지력장애가 있어 자립할 수 없는 남편의 형수, 그러니까 둘째 동서까지 모시고 산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한마을에 살면서 상철이 형수의 장애정도를 알고 있는 터라 참으로 감탄을 넘어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상철이는 상철이대로 아주 똘똘한 조카를 낳아준 형수님이라면서 낯선 시설에 보낸다는 것이 차마 못할 일이라며 몰래 속을 앓고 있더랍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러면 내 힘이 자라는 대로 모시고 살아보자.”고 했답니다. 그 말에 남편은 눈에 물기를 머금으며 안해를 쳐다보더랍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가 60대로 막 올라서는 나이고 우리 동창들 안해들도 모두 비슷한 나이이지만 어쩐지 동창생들의 안해들은 모두가 이뻐보이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마음이 들면서 젊은 시절부터 불러온 그 이름 ‘각시’를 지금도 즐겨 부르게 됩니다.

나는 오늘부터 정말 박상철의 ‘각시’ 김경숙이를 통 천하에 널리 자랑하고 싶어 이렇게 필을 들었습니다!

/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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