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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모춤과 인연 맺어 30년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1-05-09 11:35:03 ] 클릭: [ ]

왕청현상모춤예술단 단장 김명춘씨의 이야기

가야하반에 자리잡은 연변주 왕청현에는 국가무형문화재인 상모춤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장장 30년을 하루와 같이 열심히 뛰여온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왕청현무형문화재보호쎈터의 주임이며 상모춤예술단 단장으로 활약하고있는 김명춘씨이다.

중국조선족농악무는 동북3성에서 유일하게 《세계인류무형문화재대표작명록》에 수록되고 우리나라 《인류무형문화재대표작명록》에 수록되였으며 김명춘씨는 2008년에 문화부로부터 《국가무형문화재 중국조선족농악무 제4대계승인》으로 지정되였다.

국가무형문화재 중국조선족농악무 제4대 계승인증서

올해 53세에 나는 김명춘씨는 조선족집거지인 왕청현 배초구진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조선족무용에 흥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상모춤에 대해 독특한 재능이 있어 촌업여문예선전대에서 전문 상모춤을 표현해 관중들의 호평을 받았다.

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워 상모를 살수없는 김명춘씨는 자체로 바가지와 납소래로 상모를 만들어 돌렸다. 이런 환경속에서도 그는 1986년에 연변주문예경연에서 우수상을 받고 동북3성 음악무용경색에서 특등상을 수여 받았다. 그해 12월 그는 또 전국 제1차 민족민간무용경색에서 2등상을 수여받아 상모춤이 처음으로 중앙텔레비죤을 통해 현지실황으로 방송되여 국가문화부의 고도로 되는 중시를 불러일으켰다. 이듬해 문화부에서 왕청에 와 시찰할 때 전문 배초구진을 찾아 김명춘씨의 상모표현을 관람하고 배초구진을 《상모춤의 고향》으로 명명했다.

1987년, 왕청현문공단에 정식으로 배치되면서부터 김명춘씨는 상모춤의 계승과 발전에 온갖 정력을 몰부었다. 반복되는 실험을 거쳐 그는 처음에 남자들이 돌리는 상모길이를 1메터로부터 20메터로, 종류를 긴 상모, 중상모, 짧은 상모 등 일곱가지로 발전시켰다.

김명춘씨의 지명도가 높아감에 따라 각종 대형표현과 경색에 참가하는 차수가 갈수록 늘어났다. 1988년에 그는 곤명에서 열린 전국 제1차 광장무용경색에서 우수상을 수여받고 1989년 10월 1일, 국경40주년 천안문 광장만회 및 중국제2차예술절페막식에 참가해 당과 국가지도자들에게 표현했으며 1993년에는 장춘에서 열린 《관동열기절》에 참가해 평심위원회로부터 《상모춤대왕》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외에도 그는 2008년 올림픽 민속표현, 2009년 대만과의 문화교류공연, 2010년 상해엑스포, 2011년 1월 중앙텔레비죤방송 제7채널 농촌음력설만회, 제1채널 농민공위문공연, 제3채널 음력설대묘회특별공연 등 대형행사에 참가했을으며 지난 5월 1일에는 중앙텔레비죤 제1채널 《전국5.1절만회》에 참가해 33메터의 상모를 돌려 목전 세계기록을 돌파해 조선민족의 풍채를 만천하에 자랑했다

중앙텔레비죤방송국 기자의 취재를 받고있는 김명춘씨(가운데)

김명춘씨는 또 농악무에 대한 보호와 계승을 강화해 농악무의 발원지, 보호, 예술창조, 공연형식 등에 대해 전문 정리하고 대량의 인력, 물력, 재력을 투입해 농악무의 예술창신과 형식을 심층 발굴하고있다. 그리고 만천성풍경구의 배초구진 면전촌에 농악출연을 위주로 하는 《민족생태문화촌》 관광코스와 부지면적이 2000평방메터에 달하는 농악무강습기지를 건설하였다. 그 외에도 그는 학교, 유치원, 기업사업단위, 지역사회와 민간예술단체에 27개의 농악무(상모춤)강습기지를 세웠다.

김명춘씨의 노력으로 목전 왕청현에서는 농악무보호체계를 형성했을 뿐만아니라 농악무를 위주로 한 문화산업기초도 튼튼하게 닦았다. 오늘도 김명춘씨는 농악무의 계승 보호 발전을 위해 땀동이를 쏟고있다.

상모춤을 추고있는 김명춘씨

돌아오는 6월 11일, 김명춘씨는 문화부의 요청으로 오문에서 조직하는 제6차무형문화재기념일공연에 참가하게 되는데 현재 이를 위해 15명 연원(연변가무단 2명, 연변예술관 6명, 왕청현상모춤예술단 7명)들괌 함께 훈련에 땀동이를 쏟고있다.

리강춘 특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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