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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문화공모]아름다운 나눔의 진맛-술

편집/기자: [ 박금룡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1-06-29 13:14:17 ] 클릭: [ ]

술이란 알코올이 함유되여있어 마시면 취하게 되는 음료의 총칭이다. 술은 대개 양조주, 증류주, 혼성주로 구분된다.

오랜 옛날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술을 인간이 우연히 맛보게 되면서 술의 력사가 시작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 양주력사는 5천년전 《용산문화》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고시대 술의 용도는 주로 제신용이였지만 인류사회가 발전하면서 술은 인간의 삶에서 빠질수 없는 기호품으로 변천하여 사람들의 물질적, 정신적 생활과 사교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사람들은 그 술로 자기만의 례의, 기분, 정취, 심경을 표달하였다. 술은 자고로 희노애락의 촉매제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용기를 주고 힘과 열정에 넘치게 하며 사랑과 진정을 토로하게 하였다. 그래서 성숙된 음주문화 그 속에는 소중한《추진력》요소와 아름다운《나눔》의 진맛이 담겨져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술은 땀동이 쏟으며 일하고 난후 시원한 청량감으로 로동의 힘겨움을 달래주는 신비한 령약이였고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친한 동네 벗과 권커니 작커니 서로 잔을 기울이며 우정을 나눌 때 그 진맛을 느낄수 있다. 이 점은 분명 가정에서와 사회생활에서 훈도로 이루어진것이다.

나의 어머님은 음식솜씨가 동네에서 첫 손 꼽히는 분이시였다. 특히 조선족전통주-막걸리 담그는 솜씨는 동네방네에 소문이 자자했었다. 인정많고 후더운 어머님은 늘 막걸리를 손수 만들어 동네어르신들을 대접하고 마을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는 항상 사람들로 흥성흥성했으며 특히 설명절이 되면 많은 동네 젊은이들이 세배인사하러 왔는데 물론 어르신을 존경하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또한 우리 집 막걸리를 탐내여 오는 속셈도 깔려있었다.

우리집에는 또 아버님의 한족 친구들도 자주 찾아와 술을 마셨는데 막걸리와 조선족의 전통김치는 그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았다. 인심 후한 어머님은 그들이 돌아갈 때면 항상 포기김치나 고추장을 조금씩 담아주고 막걸리술을《푸른 대병》에다 가득 담아주셨다. 이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익숙히 보아온 장면이였다.

어느 한번 나는 아버지, 어머니가 들에 일 나간 틈을 타서 한동네의 내 또래 개구쟁이친구들을 한구들 청해놓고 술독에 거꾸로 엎드려 술독밑에 깔린 술을 술바가지로 박박 긁어퍼서 친구들과 돌아가면서 술맛도 모르고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리고 배추김치를 썰지도 않고 저마다 줄줄 짲어서 안주삼아 먹었다. 코흘리기친구들은 고추가루가 벌겋게 묻은 입가며 술독이 올라 빨개진 얼굴들을 서로 쳐다보고 깔깔 웃어댔다. 그중에는 말괄량이 계집애들도 셋이나 끼여있었다. 조금 지나니 꼬맹이들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다가 하나둘씩 구들방우에 꼬꾸라지기 시작했다. 들일 마친 어른들이 제집 아이들을 찾으러 와 깨워서야 한구들 늘어졌던 우리는 영문을 알게 되였다. 부모들과 마을 어른들은 모두 허리를 잡고 웃느라 우리를 그 자리에서 나무라지 않으셨다. 이것이 바로 내가 소시적 청한 첫 술파티였고 나눔이였던것 같다. 근 6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40년 공직생활 또 정년퇴직후 지금까지 나는 부동한 장소에서 이런저런 많은 사람들과 각종 명목의 술을 마시고 나누었다. 그가운데 제일 맛있고 즐거운 술의 나눔은 60년대초부터 80년대말 현성으로 조동되기전까지 근 20년간 농촌에서 사업할 때 마셨던 술인것 같다. 그때 나는 기층에서 인생의 황금시기를 불태웠고 많은 시련도 겪으면서《술 한몫 일 한몫》이란 나름대로의《어록》까지 지어냈었다.

그러나 항시 깨끗한 술을 마셨고 깨끗하게 술을 마셨다. 그중에도 60년대 국민경제 잠시 곤난시기 술표로만 살수 있는 모자리술, 수전농사하는 우리 조선족에게만 차례지는 특혜술, 얼음받친 무논에서 맨발로 작업하는 우리 농민들 몸을 따뜻하게 녹였던 그 술이 참으로 달았고 시간 절기 앞당기겠다고 별을 이고 나갔다가 달을 이고 돌아오는 강도높은 모내기철에 마시던 새참술이 꿀맛이였고 해마다 있던 풍년농사 수익분배 및 총결대회에서 뭉치돈 타가는 우리 사원들의 행복한 얼굴들을 보면서 온 마을이 모여 나누는 총결술이 제일 즐거웠던것 같다.

촌간부나 기관간부들이 애로나 고민이 있을 때 달려가 내가 가지고 간 술을 권하면서 속심을 털어놓고 나눈 끝에 사상보따리를 던지고 새 사람이 된 모습으로 화답술을 마실 때 그 술이 제일 통쾌했고 저수지건설, 국도건설, 송화강 제방건설, 전비용삼선도로건설 등 현장에서 민공들과 마신 위문술이 제일 감동적이였는가 하면 느닷없이 몰아치는 차가운 정치운동바람에 살아남기 위하여 마셨던 담키우기술이 제일 쓰고 또 인차 취한것 같았다.

술은 알고 마시면 장수한다. 적당하게 마시는 술은 혈약순환개선, 신진대사촉진, 신경안정에 리로울뿐만아니라 위장에 적당한 자극을 주어 소화에도 도움을 주며 질병의 원인되는 스트레스의 해소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술은 또한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어서 많이 마시면 신경계통장애, 심장계통장애, 소화계통장애 등 우리 몸 곳곳을 손상시킬수도 있다. 술의 이러한 작용으로 약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 하는것은 남녀로소를 막론하고 결국 마시는 사람 자신에게 달려있다.

술의 흡수속도는 위내 음식의 량, 술의 종류, 술의 량, 마시는 사람의 체질, 술 마실 때의 분위기, 감정 등에 따라 사람마다 많은 차이가 있지만 술에 취하거나 술을 깨는것은 알코올대사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관건은 어렵지만 폭주를 하지 말아야 한다. 한때 이런 웃음거리가 있었다. 술을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에는 양과 같이 온순하던 사람이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와지며 조금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리고 더 많이 마시면 토하고 뒹굴면서 돼지처럼 추해지게 된다. 모든것은 지나치면 인성을 망치기 마련인바 술마시는것도 자제력이 필요하다. 동서양 음주문화의 차이점으로 보면 동양의 음주문화는 권주를 즐기며 주량이 많은 이를 높이 평가하는 문화인 반면에 서양의 음주문화는 철저히 개인적인바 각자 자신이 마시고 싶은만큼 각자가 따라 마신다. 나는 장소와 대상에 따라 종합적으로 받아 들이는 편이다.

황혼에 접어들면서부터 나는 꼭 옳바른 음주습관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즉 하루에 알각잔 한잔 정도의 음주만을 즐기고 일주일에 적어도 이삼일의 휴간일을 갖는다. 공복에 절대 마시지 않으며 술좌석에서 천천히 마신다. 안주를 충분히 먹으며 섞어서 마시지 않고 음주후 목욕을 피한다. 젊었을 때는 나도 흰술을 즐겨 마셨으나 이제는 부인과 함께 어머님께 물려받은 조선민족 전통주-막걸리를 손수 만들고 마시고 나누며 즐기려고 한다. 짧게나마 몇년전부터 마시기 시작한《통천포도주》를 앞으로도 계속 동반하고 싶다. 와인도 알면 알수록 참 매력적인 술이지만 외국 와인을 즐기려면 어느정도 경제적인 부담이 된다는게 흠이다.

격변기 대이동속에서 살아가는 중국조선족, 흥성하던 조선족마을은 절반이상 없어지고 조상들이 피땀으로 개척한 논밭에는 눈을 씻고 봐도 이제는 조선족사원이 일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인구감소로 몇곳 남지 않은 중소학교의 그 넓은 운동장에 몇줄 안되는 학생들과 로인협회가 주축이 되여 고향을 지키고있는 현실이지만 실로 자랑할만한 우리의 음주문화는 아직 살아 숨쉬고있다. 인심은 천심이라 음주문화의 아름다운 나눔의 진맛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있느냐를 막론하고 영원히 우리 민족을 똘똘 뭉치게 하고 나눔과 사랑으로 더불어 사는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찬란하게 장식할것이다. 

/서란시 량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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