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술문화공모]술을 알고 잘 마시자

편집/기자: [ 박금룡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1-07-01 08:36:35 ] 클릭: [ ]

술, 그 이름에 얽힌 추억은 참 감미로왔다. 바로 내가 어릴 때 술찌끼가 풍기는 냄새를 맡을 때마다 어쩌면 그리도 구수하고 싱그럽던지… 또 한번은 내가 발목을 상했을 때 옆집 아저씨가 불이 이는 소주를 손바닥에 자주 묻혀 상한 발목을 마사지하니 어쩌면 그 동통과 부증이 훌~ 경감됐던지… 그때 나는 꼭 마술에 빠진 격이였다.

실상 지난날 내가 술에 대한 느낌은 칸트(미국)의 《술은 마음을 열게 하는 도덕적 물질이다》는 론술에 힘입어 종종 친구들과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 나눈 술에서였다. 이를테면 속상하거나 스트레스 쌓일 때 마음을 터놓아 잠시 여유를 갖고 또 스트레스도 해소되여 그 무엇이 존재하는 촉매로 어쩌면 순진한 소녀의 랑만도 다 지녀봤던지? 이런 술문화의 일조로 나의 청춘은 나래쳤으니 참말, 술의 례찬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었다.

세월은 흘러 몸과 맘도 다 개혁개방 물결속에서 출렁이던 1992년, 학교를 퇴직한 나는 야심차게 무역상사를 꾸리고 한국대양회사가 흑룡강성내 복장과 일용품의 전매권을 대리받았다. 이 별안간의 물망은 상사의 문쪽에 불이 날 지경인데 조, 한 상인들은 또 서로 내 팔 끌어 음식점에 가는 붐을 일구며 복닥거렸다.

이런 술은 그들이 함께 베푼 초대연이라 그 술문화는 일견 사람을 사귀고 인연을 느리며 감성과 우정을 담아내는 그런 전달매체와 다양한 콘텐츠로 거개가 서로의 상업리익을 챙기는데 기인되여 퍽 열기를 띠였다.

보라, 연회는 정말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 우선 주최자의 기발된 건배사에 따라 소주를 련거퍼 석잔을 《깐!》 (干杯)하는 대작형식으로 시작했다. 다음은 위계순으로 각자가 욕구를 곁붙여 나와 각각 소주 한잔씩 건배했는데 참 《취옹의 심사는 술에 있지 않다》처럼 어떤이는 《한국에 보내 주세요》란 청도 하였다.

그런데 술상의 생선머리가 나를 향했다고 어미쪽 대상자와 막 건배시켰고 또 내가 술을 흘리고 남겼다고 의뭉스레 억지부려 두잔 더 벌주 시켰다. 이어서 수작형식과 획권(划拳)도 해 나는 또 여러잔의 술을 마셨는데 아무튼 강권해서라도 손님의 만취가 잘 된 접대라니 이 폭주족천국에서 나는 부득이 초반취기도 마다 한 끼와 용기로 계속 순배되는 포도주를 다 마셨고 맥주도 마구 건배했다. 하여 사람들은 모두 《폭탄주》를 마셔 어찌 취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니 이런 술문화와 음주량 또 권주문화나 안주문화는 가히 세계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번엔 또 우르르 노래방에 몰려가 고성방가에 춤추고 다시 술을 마시며 밤을 패던 것이다. 허나, 나를 포함해 숙취된 사람도 있어 소식을 접한 집은 자기 남편이나 부인들을 모셔 갔다고 한다.

원래 조선의 술문화는 술맛을 음미하며 풍류를 즐겼고 또 인생도 학문도 담론하던 그런 삶의 표출이였다. 허나, 지금 이 후손(폭주족)들은 《술에 먹히워》 그 술 버릇은 참말, 험하기로 진작 말이 아니라고 전해 왔다.

보라, 그 중 한분은 곤드레만드레 취해 거리에서 비츨대고 웃고 울다 쓰러져 자면서 대소변도 실금했다면, 또 다른 두 분은 광장에서 토하고 소피보고 욕질에 싸우다 경찰이 오니 대뜸 이완돼 《워메이쭈이》(我没醉)란 아는 주정의 그런 인격과 덕행을 반사시켰다. 결국 술에 지친 그들은 모두 파출소에서 하루 더 잤다고 한다.

더욱힌 또 한 분은 택시덕에 집동네는 왔어도 마구 남의 집문을 두둘여 외려 나온 주인을 욕질 해 동네를 번졌고 또 제집에 가서는 처자를 때리고 가장집물을 마스는 등 상습적 비행이라, 정녕 도덕의 저선(底线)을 넘어 《110》에서까지 간섭됐으니 어찌 타민족들이 《조선족의 술 버릇은 참 나쁘다》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렇다. 인젠 더는 간과 못 할 이 술 과음과 강권에 나는 깊이 자성해 그 후 초대연부턴 금약세워 다시는 비일비재한 술 주정이 없게 됐다. 허나, 3년을 계속 이런 술 선행 《거래법칙》따라 지내서 우선 내가 지나친 음 주 세례로 끝내 지방간이 유발 돼 결국 술을 끊고 후에 치유 받았지만 내 동생만은 폭주로 숨지고 말았다......

이와 같이 과분한 음주는 리성을 잃고 술 주정으로 사회불화와 가정폭력을 야기시켜 조선족의 낯도 깎았고 또 건강을 해쳐 질병과 로화에 목숨마져 빼앗아 정녕 친인들 가슴속에 뜨거운 눈물만 남겼던 것이다.

실상 음주폐단은 술 자체보다 어찌 술 마시는 사람나름에 기인되지 않았던가? 때문에 이는 어디까지나 모든 국민의 소질, 도덕적 힘과 지적수준의 향상을 우선 급선무로 해야 할 일이다. 오직 이런 선행만이 세계인이 괄목하는 문명하고도 건전한 음주문화와 술문화가 확립 됨을 필자는 재삼 강조하고 싶다.

이상 사람마다 술의 리병과 량면적문화에 제한 인식의 차이는 컷고 그 음주의 효과나 영향도 참, 달랐다. 때문에 술을 좀 더 깊이 알기 위해 현대의학과학은 또 이른바 《모든 술은 발암물질이다……술속의 알콜은 인간에게 암을 일으킨다.》(11/01/15 흑룡강신문)는 정설도 파급했다. 하다면 이는 어찌 생명을 아끼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께 내린 《금주령》이 아니며 또 음주는 어찌 만성적 자살이 아니겠는가?

예서 많은 친구들은 내가 이미 술을 끊어 건강과 삶의 가치 품격이 퍽 늘었다고 부러워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지난날 몸에 축적 된 알콜 총량이 언제 쯤 시한폭탄과 같은 암병을 터칠까워 은근히 근심할 때도 많았다.

하여 지금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부러운것은 바로 알콜 0흡수자인 이슬람교도들과 청소년들이다. 이로써 부모나 선생님들도 청소년들께 《제발 술을 마시지 말라.》는 충고가 많게 된다. 허나, 바꾸어서 《술은 간암, 유방암 등 60여종 질병과 관련되는데 이로 인해 중국은 매년 250만명이 사망된다(2008년 기준)》는 사실과 과학적 근거도 겸해 강의된다면 그 충고의 효험은 어찌 더 크지 않겠는가?

《아니, 이눔이 자식들, 공부는 안하구 또 술을 먹었니? 》

이는 술에 취해 남의 등에 업혀 온 손자를 보고 속상해 외치는 한 할머니의 격한 하소연이였다.

이처럼 술 유혹에 잠시 도취된 청소년들은 진작 음지에서 엽기적으로 마신 술이라 어찌 그 맛과 향, 멋과 뜻을 알며 또 어찌 그 술 버릇도 기형적이 아니겠는가? 이 차세대에 제해 특히 학교는 《조선족수양》과나 과외활동을 통해 응당 옳바른 술 지식과 그 문화 및 술의 해악과 음주례의범절에 거쳐 차근차근 강의와 설득에 갈파시키고 인도한다면 그들은 최종 술을 끊지 않고도 어릴적부터 좋은 술 버릇으로 벅찬 미래를 향 할 것이다.

한편 술의 발암설은 오늘도 참, 많은 사람들을 놀래워 필자는 의학자문을 하였다. 즉 《술의 발암기전은 알콜의 대사물인 아세트알데히드에 기인되며 또 음주량과 발암빈도는 정비례된다. 그리고 알콜의 대사는 대체로 알콜-아세트알데히드(유독물)-아세트산(무독물)-이산화탄소,물-체외로 배설 된다》고 한다.

예서 적당한 음주는 아세트알데히드의 정상적 대사로 몸에 무리가 없으나 일단 과분한 음주는 알콜과 아세트알데히드의 대사 한계로 그 대부분이 대사 못한 채 체내 각 장기에 머물며 취기를 준다. 만약 술 과음이 잦으면 필경 체내에 루적된 알콜과 아세트알데히드가 많아 결국 중독 혹은 암을 유발시키는것이다.

그러나 와인은 페놀성항산화제가 들어 있어 생체가 섭취한 발암물질까지 대폭 해독하여 일반 와인량을 마셔도 발암위험이 없다. 또 심혈관계질환방지와 항산화, 항우울작용과 각종 퇴행성 병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때문에 세계 주류의 술문화중 현대인들은 언녕 와인을 선호하여 음주관습을 변천시켰다. 이에 우리도 와인 문화의 새 시대에 돌입하는 창의정신으로 술문화를 갱신하여 보자! 바로 그 맛과 향기, 빛갈과 품위가 어우른 서정시속에서 우아한 교제로 마신 와인의 랑만으로 말이다. 하지만 당전 생활수준은 값진 외국와인보다 그래도 원사보같이 값싼 국산와인을 선택하거나 혹은 요리집에서 한컵씩 사서 규칙적으로 마실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런 술은 먼 옛날 원숭이가 저장한 과일이 우발적으로 발효 돼 그 맛도 좋아 의식적으로 만든 기원설로 고고학은 술을 무려 20만년 력사를 어우르게 한다. 바로 인류와 함께 탄생한 것과 다름없는 술은 이미 문화적으로 술이 없이는 살수 없듯이 일반화와 세계화한 현실상태의 청신호로 됐다.

하지만 술은 필경 안전한량이 없어 꼭 알고 잘 마셔야 랑만에 찬 내 건강 챙기고 또 나라와 민족과 인류를 위해 기여하게 끔, 정녕 부끄럼도 실례도 없는 그런 숭고한 약속이 될 것이다!

술, 그 이름에 얽힌 술문화는 이 시대 문명발전의 축사(缩写)다. 허나, 음주량은 이 문명발전을 대표하지 못하며 또한 음주는 그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약속과 행위범주에 속하는 속성으로써 필시 법치를 떠날 수 없다.

이에 필자는 중국도 캐나다나 미국처럼 우선 사회적인 술소비를 줄이는 규제부터 세워 아무사람(특히 임신부 와 아동)이나 아무곳에서 술을 살수 있고 또 아무때나 아무데서 술을 마시는 것을 제한시키며, 그 외 주정뱅이 단속 등 규정도 정비 할 것을 특히 제의한다. 그러면서 이 혁신 조취는 필경 당대 중국에서 획기적인 술문화의 창의적 갱신과 영조 및 조화사회 구축에도 그 이채를 돋구어 줄 것임을 굳게 확신하고 기대하게 되는것이다.

/주 봉 (목단강)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