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더기아래 윤동주의 집》은?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연변일보 ] 발표시간: [ 2011-11-28 12:52:34 ] 클릭: [ ]

연변라지오방송국 문학부 남철주임이 극본을 창작하고 정광이 연출을 맡고 서태문이 해설을 진행한 다큐멘터리 《더기아래 윤동주네 집》은 윤동주가 15살때부터 생활했고 그의 장례식까지 치러진 집터를 배경으로 윤동주의 모습과 문학창작배경을 새롭게 발굴된 자료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오늘날 세인의 주목을 받고있다.

기자: 다큐멘터리 《더기아래 윤동주네 집》은 어떤 내용을 담고있습니까?

남철: 우선 제목은 《더기아래 윤동주네 집》입니다. 민족시인 윤동주가 명동에서 태여나 소학교를 졸업한후 1932년에 중학교에 붙을무렵 윤동주의 아버지 윤영석이 아들의 장래를 위해 룡정으로의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이사한 집이 지금의 룡정정부청사동쪽에 있는 집이였습니다.

그때 그 집에는 윤동주의 조부모, 부모, 형제 셋에 고모의 아들 송몽규까지 여덟 식솔이 살았습니다. 동주가 입학한 중학교는 지금 룡정로년대학(옛날 모윤숙이 교편을 잡았던 명신녀교)옆에 있는 영국선교사들이 꾸린 은진(하느님의 은혜로 진리를 배운다는 뜻)중학교였습니다. 그 은진중학교는 바로 지금 룡정에서 말하는 《영국더기》에 있었고 윤동주네 집은 바로 그 더기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큐드라마의 제목이 《더기아래 윤동주의 집》으로 되였습니다.

기자: 《더기아래 윤동주네 집》의 창작계기는 무엇입니까?

남철: 지금까지 윤동주의 생가와 묘지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윤동주가 15살부터 살았고 은진중학(초중), 평양숭실중학(고중), 서울 연희전문(대학), 일본 도지샤대학(류학)시절을 지냈으며 윤동주가 세상뜬 후 장례식을 치렀던 집은 아는 사람이 극히 적고 또 그 집자리는 지금 파가이주되여 어느 공장의 창고로 돼있습니다.

열백번 문화재로 되여야 할 그 자리가 력사의 진토속에 묻혀버린 아쉬움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것이 저의 프로 기획 의도였습니다. 윤동주 사망후 가족들은 계속 그 집에서 살았고 그 집에서 윤동주의 조부모, 어머니가 사망했으며 1958년에 아버지 윤영석은 동주의 계모 홍씨, 막내아들 윤광주와 함께 용문교쪽으로 이사갔습니다. 윤동주가 살던 옛집은 그냥 방치된채로 있다가 1996년에 이개축을 하면서 허물어졌습니다.

기자: 무엇때문에 《더기아래 윤동주네 집》이 국제상을 수상할수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남철: 프로가 상을 받자면 우선은 제재가 참신해야 합니다. 저의 프로에는 우리가 다 알고있는것 같았지만 또 모르고있었던 윤동주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있습니다. 이 정보는 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 김혁주임이 제공한것입니다. 《연변문학》지에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를 발표한 김혁작가도 지난해에야 이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 정보제공자가 바로 1930년대에 은진중학교부근에서 종살이를 했고 윤동주의 은진중학교 12년 후배인 최근갑로인(86세)입니다. 또 다른 정보제공자는 윤동주의 막내동생 윤광주의 딱친구인 리송덕로인입니다.

연변라지오방송국 문학부 남철주임이 제작한 《더기아래 윤동주네 집》은 일전에 한국 KBS 세계한국어방송인대회에서 시상하는 국제상인 《서울프라이즈》 시상식에서 라지오부문 특별상을 수상했다.

/ 허국화기자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