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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철과 로년송가 제3부곡 그리고 작곡자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2-08-21 09:36:02 ] 클릭: [ ]

작사대가 허동철선생과 로년송가 제3부곡 그리고 작곡자

중국조선족의 저명한 작사대가 허동철선생

연변 TV에서는 로인절을 계기로 지난주(8월 13일-19일) 우리 민족의 저명한 작사대가인 허동철선생의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 헌례작품 《한삼백년 살아볼가 한오백년 살아볼가》를 방송하여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반향을 얻고있다.

가사에서는 좋은 세월속에 오래오래 살고싶어하는 로인들의 진속을 있는 그대로 생동하게 그리면서 《궂은 일은 맘속에서 모두다 가셔내고》《좋은 일만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가며》라는 글귀들로 양생비법을 구현하고있다. 《달다가도 쓴것이 인생이였던가요 울다가도 웃는것이 인생이였던가요》파란만장한 인생살이를 너무나도 잘 함축한 이런 구절들은 인생의 철리를 담고있어 깊은 음미를 자아내기도 한다.

이 노래는 연길시인민정부에서 주최한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 대중가요응모》에서 3등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허동철선생은 《수상에 의미가 있다기보다 자신의 창작생애에서의 파트너 고 방룡철선생과 합작하여 〈오래오래 앉으세요〉와  〈로년을 잘 보내세요〉라는 로인송가 2부곡을 완성하였는데 이번에는 방룡철선생의 장자 방권일선생과의 합작으로 제 3부곡 〈한삼백년 살아볼가 한오백년 살아볼가〉를 창작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싶다》고 한다.

어쩌면 첫 두 작품은 젊은세대들이 로세대들에 대한 축복의 노래로 되고 제3부작은 로세대들이 젊은세대들에 대한 화답으로 되여 퍽 마음이 흡족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제3부작의 창작과정을 들려주었다.

방룡철선생이 세상뜨신 뒤로 그의 심적고통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가사에 가장 적절한 정서표달을 할수 있는이가 없었다. 수년간 가사창작에서 손맥을 놓고있던중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 헌례작품응모가 있게 되자 그는 고인의 큰아들 방권일선생을 찾아갔다.

지금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작곡과 작곡기술리론》을 가르치고있는 작곡자 방권일선생은 중앙음악학원 학창시절 벌써 전국피아노작품응모에서 독주곡《장고》를 창작하여 1등상을 수상하고 전국중국풍격민악작품경연에서 《모색》으로 2등상(1등상 공백)을, 기악과 예술가요 경연에서 수차 수상한 전도유망한 작곡가이다. 그는 여태껏 주로 교향곡과 대중형기악작품을 창작하고 교수에 전념하면서 대중가요를 쓸 생각은 거의 하지 않고있었던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오신 아버지의 파트너 허동철선생의 부탁앞에서 그는 아버지와의 옛정을 생각하며 대중가요작곡창작에 첫손을 대였던것이다. 이렇게 탄생한것이 바로 《한삼백년 살아볼가 한오백년 살아볼가》이다.

허동철선생은 일찍 1981년경에 《오래오래 앉으세요》(방룡철 작곡, 국가3등상)가사를 창작하여 중화20세기경전작품집 《중화세기민족의 노래》에 입선되였으며 잇달아 그는 국가민족사무위원회,중앙라지오텔레비죤영화총국,중화인민공화국문화부로부터 증서를 발급받았다.그는 또 《형제자매들 한자리에 모였네》(동희철 작곡, 국가급 1등상),《꽃밭을 가꾸네》(방룡철 작곡, 국가급고무상) 등 가사를 비롯하여《명절놀이》,《첫날의 노래》,《우리네 자랑 꾀꼴새》 등 민속제재가사, 고향을 노래한《명월구산천가》,《꽃피는 동산》《사과배동산에서》 등 수십수의 성, 주급 수상작품을 창작해냄으로써 우리 민족 작사대가의 반렬에 올라있었다.

그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타고난 재질이 있어도 기회와 여건이 주어지지 않아 하고있는 일과 하고싶은 일에서 소원성취를 하지 못하고있다면서 자신은 훌륭한 동업자, 파트너, 지도자들을 만났기에 이런 성과를 거둘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연변인민방송국 음악편집부 편집으로 사업하던 시기 《오래오래 앉으세요》라는 환갑노래를 성공시키자 당시 국장으로 계시던 리송영국장은 그토록 기뻐하면서 이번에는 결혼잔치노래를 써보라며 고무해주었다. 그에 힘입어 탄생시킨것이《첫날의 노래》였다.

어느 한번 리송영국장은 또 그에게 뜻밖의 속심말을 터놓았다. 《우리 아버님(연길현 로력모범)께서 하루는 나를 불러놓고 이런 말씀을 하더군.〈어머니는 오래오래 앉으라고 노래하는데 왜 아버지는 오래오래 살라는 노래는 없는거냐?〉고. 그러는 아버님 두눈엔 눈물이 글썽해있더군.》

고령의 아버님이 아들한테 터놓았다는 그 진정에 큰 충격을 받은 허동철선생은 아버지노래를 지어내리라 작심하였던것이다. 당시 사회배경으로 놓고보아도 등소평동지께서 2선으로 물러서면서 새세대젊은이들을 내세우는 전례로 전사회가 호평을 보내던 때였다. 이때 그는 《시름을 더시고 만년을 행복하게 보내시라》는 내용으로 된 가사 《로년을 잘 보내시라》를 창작하였다. 이 노래는 또 방룡철선생의 작곡으로 완성되고 구련옥가수가 불러 사회적 공명을 불러일으켰다.

새 작품을 구상하고있는 작사자 허동철선생과 작곡자 방권일선생.

허동철선생의 창작생애에는 그만이 간직하고있는 일화들이 한두건 아니다. 1982년 당시 음력설문예계련환모임에서 중공연변주위 리덕수서기는 일부러 허동철선생님과

자리를 나란히 정해앉으면서《연길현문공단이 중남해에 가 중앙지도자와 로간부들 앞에서 〈오래오래 앉으세요〉를 불렀는데 장내에서는 우뢰와 같은 기립박수가 터졌댔습니다. 이번에는 연변을 노래한 가사를 잘 써주십시오.》라고 신신당부하는것이였다.

그 부탁을 받고 한동안 깊은 고민을 하면서 내놓은 작품이《사과배동산에서》였다.

허동철선생이 가사를 적어가지고 리덕수서기를 찾아가자 그는 《내 마음에는 썩 드는데 다른 전문가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내가 직접 가사합평회를 가지겠소》라고 하였다.

후날 리덕수서기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자 당시 문교서기였던 김성화서기더러 직접 가사합평회를 개최하도록 하였고 작품이 완성되자 록음테이프를 듣고 아주 흡족해하면서 방송국 국장한테 《매주일가》로 방송할것을 건의하였던것이다.

아시아의 가장 큰 과원으로 소문높은 우리의 자랑 만무과원, 봄꽃이 새하얗게 피고 사과배가 빨갛게 익어가는 가을풍경, 하얀 사과배처럼 깨끗한 우리 민족의 마음씨, 무르익는 사과배처럼 시원한 우리 민족의 성정미를 노래한 이 가요는 지금도 연변의 사과배축제마당의 지지 않는 메아리로 울려퍼진다.

길림TV방송국에서는《사과배동산에서》를 주선률로 하여《사과배의 고향》이라는 제목으로 연변을 소개하는 종합프로를 제작하였는데 이는 전국TV문예종합종목경연에서 2등상을 수상하였다.

허동철선생은 이번 로년송가 제3부곡《한삼백년 살아볼가 한오백년 살아볼가》가 TV매주일가로 방송되자 이미 10여통의 축하전화를 받았다며 내심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있다.그는 옛 민요로 《한오백년》이라는 노래가 있기는한데 그건 한서린 《신세타령》에 지나지 않지만 자신의 《한오백년은》신나는 《흥타령》이라 개괄해본다.

전임 불로송예술단 단장이며 현임 주직속로간부활동센터 문예협회 회장인 안철호선생은 로인들에게 꼭 알맞는 좋은 노래를 써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이 노래를 로인들에게 보급할 계획이라고 토로하였다. 허동철선생 또한 이 노래를 자신의 가사창작을 줄곧 고무하고 편달해준 로세대간부들과 자신의 작품을 기쁘게 받아들여 함께 불러주면서 로년을 즐기는 여러 양로원 로인들께 선물할 타산이라고 의향을 터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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