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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음악예술에 생을 건 김봉관선생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4-01-17 17:17:52 ] 클릭: [ ]

 

한생을 민족음악예술발전에 고스란히 이바지하고있는 김봉관선생.

길림성 도문시에는 《조선족음악예술의 산화석》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평생에 걸쳐 민족음악예술발전에 혼신을 다하고있는 김봉관선생(74세)이다.

《연변아리랑》의 작곡자

김봉관선생은 1967년 연변예술학교 작곡반을 졸업하고 도문시 문공단 악대대장, 단장, 문화관 부관장, 시 음악가협회 주석 등 직을 력임하면서 부 연구원으로도 사업하였다. 2000년1월 정년퇴직하면서 본격적으로 민족음악발굴과 계승사업에 정력을 몰붓고있다.

일찍 재직시기 《조선족민족문화유산연구》를 《문학과 예술》 잡지에 련재하였고 《조선족민요》, 《민가모음》등을 집성해내였다.

1998년에는 《조선족민요의 유래를 론함》, 2003년에는 《중국조선족아리랑》, 2009년에는 《반세기후에야 울려펴진 교향곡》, 《청주아리랑》, 《박우선생의 창작기교를 론함》 등 무게있는 론문들을 륙속 펴냈다.

김봉관선생은 《모주석을 그리네》, 《방치소리》 등 무용작품에 맞춰 무려 200여수의 노래를 창작하였다. 1980년에 창작한 《일할수록 성수나오》(강효억 사)는 연변가요집 창작상을, 1989년의 《깨끗한 마음의 산》(김동진 사)은 전국 조선족가요 창작 2등상을 수상하였으며 30여수의 창작가요들은 연변인민들이 즐겨부르는 노래로 널리 울려퍼졌다.

2003년에는 국가문화부에서 조직한 《중국 할빈의 여름---제1회전국조선족가요음악콩클》에서 《연변아리랑》으로 《우수 창작상》을 수상하였고 또 연변주 《진달래문예상》(2009년12월)을 받아안았다.

자치주창립 60돐을 맞으며 창작한 《잘 꾸려보세》(김철학 작사)라는 가요는 60수 입선작에서 2등으로 평의되였으며 그는 직접 연변불로송합창단을 지휘하여 이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름으로써 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국조선족민간음악집》집필자중 유일한 생존자

50년대초 연변주 초대주장 주덕해동지께서는 《소방차가 불끄러 달려가는 속도로 민족문화예술을 발굴하고 정리하여 발전시키라》는 지시를 내린적 있다. 이는 민간문예가들에게 큰 정신적 힘으로 되였다. 김봉관선생은 평생동안 그 지시정신을 가슴깊이 간직하고있었다.

그는 1978년 10월부터 13명 음악인들과 함께 《중국조선족민간음악집》을 편찬하는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였다.량수진 정암촌에 내려가 민요수집을 할 때 술상을 차려놓고 마을로인들을 청하여 노래부르기를 하면서 민간음악을 발굴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20킬로그람도 더 되는 록음기를 어깨에 메고 가 리상철로인의 《충청도아리랑》이며 《풍구타령》, 심철로인의 《청주아리랑》등 노래를 날샐녁까지 록음하고 기보하며 자료로 남겼다. 

30여년간의 꾸준한 노력으로 1050수에 달하는 민간가요를 수집정리하여 2009년 1월 드디여 《중국조선족민간음악집》을 출판하였다.그때의 13명중 그는 지금 유일한 생존자로 남아 그들의 유지를 이어가고있다.

《중국조선족 민간악기대전》(2013년 10월) 역시 김봉관선생이 끊임없는 노력으로 기악곡 260수를 열심히 발굴, 정리하여 1766페지 되는 대형악기사전으로 편찬한것이다.

족음악발전을 위한 사업에는 정년퇴직이란 따로 없었다. 김봉관선생은 점차 사라져가는 민간음악을 하루빨리 발굴하려는 절박함에 《불 끄러 가는 소방대원》의 마음으로 매일 일과를 팽팽히 짜놓고 때로는 하루 20여시간의 작업을 진행하면서 심혈을 바쳐간다.

그는 반년 품을 들여 1500수의 전통민요를 정리하였으나 손필기작품은 어디서도 접수하려 하지 않자 고래희를 넘어선 나이에 컴퓨터에 마주앉아 타자부터 열심히 배워냈다.

끝끝내 1500수의 민요를 다시 정리하였는데 조작이 서툴었던 그는 그만 컴퓨터에서 자료를 잃어버리고말았다. 할수 없이 또다시 한자한자 타자하여 메모리에 저장하였는데 어린 손녀의 작난질에 또 메모리마저 망가졌다.

실수나 실패앞에 그는 물러설줄 몰랐다. 세번째로 다시 타자를 하여 끝끝내 77만자에 달하는 《민요문학》자료를 완성하였고 최근에야 탈고를 마칠수 있었던것이다. 

《고향땅》을 지켜선 영원한 파수군

김봉관선생은 과로로 당뇨를 앓게 되였고 안저출혈로 이미 한눈은 완전 실명상태가 되였다. 2012년 8월 그는 일본에 가 딸의 도움으로 수술치료를 받고 지금 겨우 한쪽눈으로나마 앞을 볼수 있게 되였다. 그러자 그는 확대경을 들고 계속하여 자료를 찾아읽고 컴퓨터건반을 누르면서 자료정리사업에 정진하고있다.

그는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을 하나 둘 떠나가는 조선족사회현실을 가슴아프게 여기며 최근 《고향땅》이라는 제목의 가요를 작사작곡하였다. 비싼 제작비를 팔아 음반까지 내면서라도 그는 보다 사람들에게 고향의 의미를 깨우쳐주고싶었던것이다. 이 가요는 최근 연변위성TV방송의 매주일가로 방송되며 사람들의 심금을 크게 울려주고있다.

《조선족음악은 우리 민족의 거대한 문화재부입니다. 이 귀중한 재부를 땅속에 묻어두거나 관속에 넣어갈수는 없지 않습니까.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을 나도 하고있을뿐입니다.》

김봉관선생은 이런 평범한 각오를 평생에 걸쳐 실천하면서 비범한 음악인생을 살고계셨다.김봉관선생은《세계중화인 문학예술계 명인록》(1998년3월)에 , 《중국전문가인재》(1999년8월)에 수록되여있다.

그는  2010년 12월 중앙인민방송국 《음악의 향기》프로에서, 2013년 6월 연변위성방송 《음악가 초대석》, 《고향의 아침》프로에서 자신의 민족음악에 대한 소신과 소명을 밝히면서 자신이 발굴하고 정리한 민요들과 직접 창작한 가요들로 중국조선족음악예술의 향기를 세상만방에 전하였다.

/ 박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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