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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무용예술에 혼신을 쏟아붓고있는 만족교수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4-11-30 20:29:42 ] 클릭: [ ]

연변대학예술학원 만족교수 향개명,조선족무용과 인연맺어 40여년

향개명교수

《한 나어린 무용학도로부터 배우, 교원, 지도자로, 문예리론연구일군으로 40여년간 종사하면서 그 어떤 성과나 기여를 올렸다면 그건 전적으로 조선족무용이라는 옥토가 나를 품어주고 키워준 덕분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만족인 저를 조선족으로 알고있는데 그만큼 제가 조선족사회성원으로 잘 융화되여있다는 표시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으로서 저는 크나큰 자부심을 느끼고있고 또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연변대학예술학원 교수위원회 주임 향개명(向开明)선생은 이런 토로를 앞세우며 인터뷰에 응하였다.

스승과 《양아들》

교하1중 만족학생이던 향개명은 16살 나는 해인 1972년에 문화혁명후 첫기로 연변예술학교 무용전과반에 입학하여 고 박용원스승의 제자로 된다. 《박용원스승은 동양무용대부인 최승희선생의 제자로서 교육자이고 학자였으며 조선족전업무용교수체계를 수립한 정초자의 한사람이였습니다. 그는 조선족무용을 가르침에 엄격하였고 무언의 률동으로 무용인의 품격을 가르친분이였습니다. 생활상에서는 또 그토록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았구요. 그이는 저를 〈양아들》이라 불렀습니다. 집이 외지에 있었던 저는 늘 박선생님의 집에 가 맛갈스런 조선족음식들을 먹으면서 친부모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제가 전업무용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첫 스승이 바로 조선족교원이였다는 사실이 저의 평생에 큰 영향을 미쳤던것 같습니다.》

스승 박용원선생(두번째줄 오른쪽)과 함께 있는 향개명선생(첫줄 오른쪽)의 희망찬 80년대.

향개명선생은 자신의 생애에서 박용원선생은 가장 인상깊고 또 가장 영향이 컸던분이라며 몹시 그리워하고있었다. 《제가 예술학교를 졸업하면서 북경과 같은 대도시를 지향하고있을 때 스승님은 대도시에 가면 환경이 좋고 성공할 기회가 많겠지만 연변이라는 이 지역도 특수한 환경과 조건으로 역시 성공 못할 리유는 없을것이라 일깨워주셨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나 감명깊고 고마운 깨우침이였습니다.》

향개명은 1975년 박용원스승님의 도움으로 결국 연변예술학교에 교원으로 남게 된다. 사생들 다수가 조선족인 환경에서 그는 언어관부터 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조선족문화예술에 대한 료해와 리해에 모를 박았다. 한편 배움에 정진하여 북경, 상해 무용학교며 미국브리검영대학 예술미디어학원, 중앙당교 등 곳에서 학습과 연수를 거치면서 조선족무용의 좌표를 탐색하였고 연변대학예술학원 무용학부 학부장으로, 교수, 부원장, 당위서기로 성장해왔다.

한동기 동창생 최미선교수와 함께 쌍무를 추고있는 청춘시절.

대표작 《학춤》과 《장백폭포》

다년간 연변예술학원에서 여러가지 지도직책을 어깨에 걸머쥐고 한가할 새 없이 분망한 그였지만 줄곧 예술학과발전에서 학생, 교원, 작품, 학과의 《네가지 정품화》를 주장하면서 앞장에 섰다. 그는 본과생들과 석사연구생들에 대한 교학을 진행하는 한편 작품 창작과 연출, 과학연구에 병진하면서 높은 성과를 올렸다.

특히 무용창작에서 조선족문화에 대한 축적이 결핍한 그에게 있어서 정품창작은 말그대로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는 조선족 문화사와 력사, 종교사를 섭렵하여 통독해가면서 폭넓은 지식을 장악하였고 풍부한 예술기교와 생활축적, 비약하는 령감을 바탕으로 무용 《학춤》과 《장백폭포》 등 40여편의 작품을 선후로 창작하였다.

1995년경 그는 랑만적인 수법과 아름다운 자태로 대자연속에서 깃을 다듬으며 오연히 하늘을 날아예는 선학의 형상을 부각한 독무 《학춤》을 창작하였다. 학은 조선족인민들이 총애하고 숭상하는 길상물로서 조선족녀성의 선량함과 우아함을 상징하고있다.그는 이 작품에서 조선족녀들이 생활을 열애하고 세속에 항거하며 아름다운 미래를 동경하는 형상을 창조하면서 《천인합일》의 민족정감을 표현하였다.

독무 《학춤》의 한장면. 

무용수업에서 학생들에게 학춤을 가르치고있다. 

이 작품은 제4차 전국예술학교 《도리컵》(桃李杯,3년에 1차 진행)무용경연에서 우수교수극목상, 지도교원상을 수상하였고 이 작품을 표현한 김미홍학생은 《전국10대무용수》칭호를 수여받게 된다. 동시에 제3차 전국무용경연에서 표현2등상을 수상하였을뿐더러 문화부 예술국으로부터 특별표창을 받게 되였다.

이에 큰 신심을 얻게 된 향개명선생은 이어 전통적인 조선족민간무용 표현형식에 기초하여 의인화수법으로 독무 《장백폭포》를 창작해내였다. 3강의 발원지로 하늘을 날아내려 굽이굽이 산과 들을 흘러지나 거센 파도를 일구며 바다로 바다로 흘러드는 장백폭포는 어머니 젓줄기마냥 대지를 적시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생명을 탄생시키고 문명을 낳는다.

제9차《도리컵》경연 1등상 수상작 《장백폭포》의 한장면. 

장백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표현함과 아울러 사람들에게 미적동경과 계발을 안겨주는 이 작품은 경물속에 정이 있고 정속에 경물이 있는 《신경》(神竟)을 그려내면서 쉼없이 분발하고 용왕매진하는 조선족인민들의 정신풍모를 표현하고있다.

이 작품은 제9차 《도리컵》경연에서 극목 1등상, 표현2등상, 지도교원상을 수상하였을뿐만아니라 제4차 전국대학생예술전시공연에서도 작품 1등상, 표현2등상, 지도교원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길림성장백산문예상, 우수작품상에 당선되였을뿐더러 또 제3차 전국무용경연에서 표현2등상과 연출3등상을 수상하면서 여러 매체들에서 강렬한 반향을 보였다.

《광주일보》와 《심수문예보》에서는 대량의 글과 사진으로 보도와 평가를 진행하였다. 중국의 저명한 무용가 가작광선생(贾作光) 은 《무용 〈장백폭포〉는 자연경관으로부터 정감세계에 이르면서 전통을 계승하는 기초상에서 대담하게 창조를 곁들였는바 찬양과 긍정을 받아 마땅하다. 한결 다듬어 정품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평가하였다.이 무용은 지금까지 연변대학의 예술보물고의 보류종목으로 보존되여있다.

중국의 저명한 무용가이며 민족민간무용 개척자의 한사람인 가작광선생(만족,오른쪽 두번째)과 향개명선생 가족.

2005년에 그는 《장백폭포》를 녀성군무로 재창작하여 제7차 련화컵경연에서 한결같은 긍정을 받았고 해내외 교류종목으로도 널리 알려져 미국대학들에서도 이 무용을 배우는 열조가 일었다. 그의 작품 《원의 선률》,《락엽귀근》과 같은 작품들도 전국예술학교 《도리컵》경연에서 교수극목창작상을,《농악무》,《물동이춤》은 제5차 중국민간예술절에서 《금상》,《은상》,《최우수연출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영예를 받아안았다.

향개명선생은 그 어떤 창작이나 수상이 자신의 한사람의 능력이나 성과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는 작품을 창작하거나 훈련, 공연할 때면 언제나 솔선수범하고 헌신적이며 타인을 사려깊게 배려하면서 공동창작을 완성해나갔다.땀 흘리는 사생들의 고초를 헤아려주고 상 받는 타인의 성과에 자신이 더 기뻐하면서 함께 울고 웃는 그의 인격과 인품으로 하여 사생들은 모두 그를 믿고 따르며 존경한다. 그러는 그는 수차 길림성민족단결모범인물로 당선되였다.

국가급 연구과제 《중국조선족 100년 무용문화의 전승과 발전에 대한 연구》

국내 무용계에서 조선족무용은 풍격이 독특하고 내함이 풍부하며 표현이 아름다우면서 그만큼 장악하기 어렵다는 개념으로 통하고있다. 여기서 향개명선생은 조선족무용이야말로 연구가치가 높고 추구해볼만한 고품격의 예술이라며 작품창작과 학술론문집필에 정진해왔다.

 미국브리검영대학 예술미디어학원 부원장(오른쪽)으로부터 연수증서를 받고있다.

2006년 그는 국가급교수연구과제로 《태극문화와 동아무용문화》를 완성하여 국내외연구령역에서의 공백을 메웠다. 이 과제는 《태극》리론연구와 그 독특한 사유방식을 착안점으로 문화학, 예술학의 시각으로 중한전통무용문화의 초보적 형성과 발전맥락을 탐색함하였으며 잇달아 실제와 결부시켜 어떻게 문화유산을 계승할것인가를 제기하면서 중국특색의 조선족무용체계를 건립하는 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선후로 《연변50년문예작품선》 무용저작을 출판하였고 《근원탐색과 대조로 중국조선족무용교수체계건립을 론하다》등 30여편의 론문을 완성하여 국가급간행물에 게재하였다. 그는 조선, 한국, 중국의 조선민족무용은 같은 뿌리를 갖고있고 또 같은 절주를 가진 무용일지라도 각자 생활구역이 다르고 훈련체계가 다르며 인체형태가 다름으로 하여 변화발전하는 면에서 각이한 특징을 구현하고있음을 밝혀냈다.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에 깊은 관심을 갖고있는 향개명교수

일무(佾舞)전승인 김영숙녀사와 함께.

만족교수로서 조선족무용 창작과 연구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올리게 되자 주위에서는 그에게 만족무용에 대한 연구를 권장하고있다. 이에 대해 그는 《만족무용은 연구가치가 있고 연구하고싶지만 지금까지 류전되여온 만족무용문화는 그 수량이 극히 적고 만족무용예술에 대한 료해가 적을뿐더러 내가 장악하고있는것은 더구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그쪽 연구에 착수한다는것은 시기적으로 늦었고 정력을 분산하고싶지 않다》고 실토한다.

그러면서 중화민족이라는 대개념속에 계속 조선족무용예술에 일체 정력을 몰부어 보다 큰 성과를 올리는것이 자신의 진정한 마음속 바람이라며 조선족무용예술에 대한 애착과 긍지를 표하였다.

조선족무용예술에 대한 사랑은 향개명선생 자신에게만 그친것이 아니였다. 그의 무남독녀인 《향남》이 역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연변대학예술학원에서 조선족무용을 전공하였고 북경에서 연구생까지 마쳤다. 그녀는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가 현대무와도 접촉하고 한국 서울에 가 한국무용에 대한 료해를 깊이 하면서 무용세계에 대한 안목을 넓혔다. 현재 그녀는 대련대학에서 조선족무용을 가르치는 무용교수로 활약하고있다.

향개명선생은 현재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과 무용학과 주임, 교수위원회 주임으로 직책을 감당해가면서 국가급연구과제인 《중국조선족 100년 무용문화의 전승과 발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있다. 조선족무용예술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추구로 그는 오늘도 교학과 창작, 연구의 일체화길에서 온갖 심혈을 몰붓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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