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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림원춘 72년만에 고향으로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7-06 12:35:18 ] 클릭: [ ]

남의 집마당으로 변한 고향집 옛터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림원춘선생.

원로소설가 림원춘선생이 72년만에 자신이 태여난 고향인 룡정시 덕신향 숭민촌 안방툰과 소년기를 보냈던 지신향 승지촌 이천툰을 찾아 답사하고 감회가 깊다고 소감을 밝혔다.

7월 5일, 원 덕신향 향장과 룡정시과학기술국 국장을 지냈던 김종환씨와 룡정시작가협회 회원들의 안내로 덕신향 숭민촌 안방툰에 이른 림원춘선생은 몰라보게 변한 마을을 보고 혀를 끌끌 찼고 새로 지은 벽돌집의 마당으로 변한 옛집터에 무너지듯 큰절을 올리더니 세멘트벽에 걸터 앉아 1944년에 떠난 고향에 대한 오랜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때 우린 모두 배불리 먹지 못했지. 그래서 비술나무씨를 훑어서 밥처럼 먹기도 하였지. 많이 먹었다구.” 그가 가리킨 비술나무는 다섯사람이 겨우 안을수 있는 고목이였는데 어림잡아도 수령이 500년은 훨씬 넘은 비술나무였다. “그때 마을에서 이 비술나무까지 오솔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밭으로 변했네.”

아름드리 비술나무아래에서.

“다섯살 때던지 내가 홍진에 걸렸는데 우리 아버지가 금곡의 사금평에 가서 물가재를 잡아다가 돌절구에 찧어 끓여먹여서 떨어진 기억이 생생하구만…” 80고령의 림원춘선생의 눈가에 향수에 젖은 이슬이 반짝였다.

8살에 고향을 떠나 용신향 이천촌 자성동에 이사간 림원춘은 30여리 길을 걸어 신안소학교에 다녔고 룡정내 6개 학교를 합병한 룡정중학교까지 매일마다 도보로 다녔다고 한다.

“그때 신이 있었겠나? 초신이지. 그것도 판날가봐 맨발로 신화까지 와서 꺼내 신었다구.”

일행은 덕신향에서 곧바로 령을 넘어 지신향 승지촌으로 향했다. 밭사이로 난 옛날 수레길이 지금은 세멘트길로 변해 룡정으로 돌아가면 1시간이 걸릴 거리를 불과 20여분만에 득달할수 있었다. 옛날에는 용신향 이천촌이였으나 지금은 지신향 승지촌 이천툰으로 변한 이천마을에 도착한 림원춘선생은 “이곳은 내가 익숙해, 20년전에 영화를 제작할 때 다녀갔으니.”하고 말문을 연다. 자성동 옛터는 지금 산골짜기 무성한 풀에 덮힌데다 차길도 없으니 그냥 이곳까지 와보면 된다고 말한다.

힘이 솟구친다는 이천샘물터에서.

“이천의 샘물을 아나? 달디단 그 샘물을 먹으면 힘이 부쩍부쩍 난다구. 내가 35리 등교길에 꼭꼭 마시던 샘물이였지. 그리고 동네분들이 김치나 돼지고기를 불궈놓던 곳이기도 하구.” 이천이라는 마을이름도 샘물때문에 생긴 이름이란다. 일행이 광천수병으로 물을 떠먹는데 림원춘선생이 어데론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바로 이천샘물터 아래쪽 산밑에 자리잡은 아담한 옛집, 휘늘어진 수양버들이 미풍에 머리를 풀어 더욱 고풍스런 집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다가 “춘섭아, 여기 나와라! 내왔다!” 밭에서 기음을 매는 주인장을 보고 외친다.

김춘섭씨 내외분과 함께.

“아, 형님이요? 웬일로 이렇게…” 밭이랑사이를 헐레벌떡 달려나온 주인장은 올해 76세의 김춘섭씨, 림원춘선생의 조카사위였으나 한마을에서 살면서 형님, 동생으로 굳어진 말습관때문에 지금도 그냥 형님, 동생으로 호칭한단다. 고향생각에 뗐던 담배까지 다시 피우는 림원춘선생의 얼굴은 주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맑아졌다.

“임마새끼가 장재에 가서 앙까이를 꼬셔왔대서 와보니 내 사촌형님네 딸이 아니겠나? 하하하!” 일행을 둘러보며 소개하는 림원춘선생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듯 걸쭉한 토배기언어로 말하고는 호탕하게 웃는다.

1960년대에 군복무를 한 김춘섭씨는 마을에서 소문난 감농군이였는데 지난해에 위암수술까지 받았지만 하루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고있단다. “일없다. 위암은 떼버리면 그만이야. 난 그사이 큰 수술을 두번이나 받았지만 지금도 술을 먹고 담배도 피운다.” “동생”이 위암수술을 받았다는데도 병문안 대신 “일없다”고 말하는 림원춘선생, 자기 건강비결을 락천적인 생활태도에 있다고 수차 말한적이 있지만 이렇듯 무정한 일면도 있을줄은 누구도 몰랐다.

“오늘 내가 태여나고 자랐던 고향땅을 밟고 동생까지 만나니 청년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오랜 숙원이 풀렸다.” 돌아오는 길에 던진 림원춘선생의 말이다. 덕신향 안방촌에는 여러번 들렀으나 자기 고향집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 늘 안타까웠는데 한고향 사람인 김종환씨가 부모들로부터 익히 들어 기억하고있은것이 이날 연분으로 이어졌다.

 

림원춘 프로필:

1937년 음력 12월 15일 길림성 연길현 덕신향 안방촌(지금의 숭민촌)에서 출생

1956년―1960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1960년―1982년 연변인민방송국, 연변텔레비죤방송국 편집, 주임

1982년― 연변작가협회 전직작가, 부주석, 중국작가협회 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상무리사.

주요작품: 단편소설《몽당치마》등 80여편, 중편소설 《눈물젖은 숲》등 10여부, 장편소설《우산은 비에 운다》등 3부, 장편실화문학《예고된 파멸의 기록》등 3부

수상 및 영예:

1980년 단편소설《꽃노을》중국제1차소수민족문학상, 길림성소수민족문학상 수상, 초급중학교 조선어문교과서에 편입

1983년 단편소설 《몽당치마》로 중국단편소설우수문학상, 중국소수민족문학상, 길림성소수민족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1985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고급중학교 조선어문교과서에 실림.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진달래문학상》, 연변작가협회문학상, 연변작가협회50주년《특수공헌상》,《공로상》등 다수 수상.

1988년 중공연변주당위 선전부《문화사업돌출상》, 2007년 중공연변주당위, 연변주인민정부 《민족문화사업특수기여인물상》을 등 수상하고 2008년에는 20세기중국소수민족작가 100명중 한분으로 선정되여《20세기중국소수민족문학백가평전》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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