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수기]컴퓨터앞에 앉을 때마다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5-31 17:48:08 ] 클릭: [ ]

나는 컴퓨터앞에 앉아 네모판을 누르며 누에가 실을 뽑듯 주옥 같은 우리 글을 신나게 타자할 때마다 추억속에 잠긴다. 지난날 컴퓨터에 대한 이왕지사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30여년전, 당시 금방 룡정시 조양천진 조양소학교로 전근한 나에게는 교원주택이 차례지기 만무했다. 로임은 적고 안해는 일자리가 없고 년로한 어머니를 모시는데다가 세 자식이 한창 공부하는 때라 헐망한 초가집이라도 사려는 생각이 굴뚝같이 치솟았다. 그러나 서발막대 거칠 것이 없는 가난으로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여섯식구가 생활하기에 너무나 비좁고 헐망한 집도 나무리지 않고 집세만 싸면 이사짐을 싸고 일곱번이나 옮겼다.

필자 최문

지난 세기 90년대 중반, 연변의 재정난으로 일부 현, 시 교원들의 로임을 1년간 지불하지 못했다. 당시 막내아들을 근근득실 공부뒤바라지를 한데서 막내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준비로 컴퓨터 강습반에 참가하려 했다. 우리 부부는 ‘소팔아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전통관념의 영향으로 새 컴퓨터를 사주지 못할 망정 돈 꿔서 강습반의 학잡비를 대여주며 아들의 등을 밀어 소원을 이루도록 격려했다.

그후 밀린 로임을 목돈으로 쥐자 선참으로 컴퓨터를 사서 아들에게 안겨주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아들은 부모의 지극한 정성과 크나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컴퓨터기능이 수준급에 도달했다. 또한 수년전 심양시 고층건물난방장치유한회사의 설계원초빙시험에 도전하여 많은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취직하게 되였다.

3년전 음력설을 쇠러 고향에 돌아온 막내 아들은 글쓰기에 남다른 흥취를 갖고 있는 나에게 컴퓨터를 사왔다. 그리고 초급단계로부터 하나하나 인내성 있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안해의 반대도 아랑곳 하지 않고 70고령에 컴퓨터 리론을 베끼고 기억하며 반복적으로 자모결합을 실천하여 우리 글 타자를 끝내 배워냈다. 하여 지금은 독립적으로 원고를 쓰고 전자우편으로 발송할 수 있어 소식, 통신, 기사, 수필 등 원고 도합 200여편을 썼다. 이중 일부는 여러가지 간행물, 방송국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사랑은 나누면 커지고 슬픔은 나누면 줄어든다.’ 고 나는 아들에게서 효도선물로 오매에도 바라던 컴퓨터를 받고보니 가슴이 희열로 벅차 오른다.

나는 컴퓨터를 여생의 가장 친밀한 동반자, 대변인으로 삼고 조화사회 구축에 힘다 하리라 다짐한다.

/ 최문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