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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93]동냥쌀에 깃든 효성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7-20 12:12:38 ] 클릭: [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1)

▩민점순(영길)

생각하면 반세기란 긴 세월이 눈 깜짝할 새 흘러가버린 몇십년전 일이지만 마치 어제 일처럼 오늘도 눈앞에 생생하다.

그 때 나는 남편이 군대에 가있고 큰집에서 함께 지내다가 따로 살림을 나왔는데 시어머님도 나를 따라 함께 나오셨다.

큰집에서 같이 지낼 때는 몰랐는데 따로 나오고 보니 생각지도 않은 이런저런 일들이 많기도 하였다. 일이야 많고적고간에 관계 없는데 문제는 남자들이 해야 할 일들을 녀자가 해야 하니 그것이 골치 아팠다.

때는 한로 상강이 지나고 천고마비의 가을철이라 이 때는 집집마다 구들을 뜯고 집손질을 하느라 한창 바삐 도는 때였다.

남편이 있는 집들에서는 남자가 알아서 척척 해치우는데 남편이 집에 없는 우리 같은 집은 참으로 어렵고 힘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나이 젊은 한창때인지라 그까짓 거 내라고 못하겠느냐는 마음에 팔을 둥둥 걷어올렸다.

일은 시작이 절반이라고 마음이 내킨 김에 구들장을 뜯어내고 골에 가득찬 구들재를 말끔하게 걷어내는 데까지는 힘든 줄 모르고 빨리도 해치웠다. 그런데 이리저리 뜯어놓은 구들장을 다시 원래 대로 놓으려고 하니 생각과는 달랐다.

네모반듯한 벽돌장 같으면 이가 맞게 착착 놓으면 그만인데 이놈의 돌구들장은 크고작기가 같지 않은 데다 변두리마저 들쑹날쑹 고르지 않아 그것을 맞추어놓으려고 하니 여간 애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다 돌이여서 무겁기는 또 얼마나 무거운지 그놈을 들고 낑낑거리며 왔다갔다 일은 빨리 진척이 되지 않고 손목까지 아파 짜증이 났다.

이 때 허리병이 도져 겨우 지팽이를 짚고 큰집에 가서 앉아계시던 시어머님이 내가 하는 일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 돌아오셨다.

“아이고, 이 때까지 너는 무엇 하고 있었길래 구들 하나도 다 놓지 못하고. 일을 하는 거냐 마는 거냐. 이렇게 일을 해서야 밥은커녕 죽도 먹기 힘들겠다.”

뜻밖에 시어머님의 이와 같은 말은 물론 관심에 어린 핀잔이였지만 붙는 불에 기름 치기였다. 그러지 않아도 열이 나서 속을 태우고 있는데 이 애타는 마음을 몰라주고 책망을 하시니. 그렇다고 버릇없이 말대꾸를 하며 까박을 줄 수는 없고 그만 들고 있던 구들장을 내려놓고는 밖으로 뛰여나갔다.

왜 나만 이런 고생을 해야 하고 이런 일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그만 눈물이 저도 모르게 팍 쏟아져나오고 말았다. 남의 눈에 뜨일가봐 집모퉁이로 몸을 피해 숨어서서 쿨쩍쿨쩍 울었다. 북받치는 서러움에 남편이 더없이 그리우면서 또한 여간 원망스럽지 않았다.

이렇게 나도 모르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아이구나, 이러고 있으면 되냐.’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라 다시 일을 하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웃집 아저씨가 언제 오셨는지 구들을 다 놓아가고 있었다.

“아이고, 너도 참 한심하구나. 글쎄 일을 하다 말고 어디에 가서 반나절이나 정신없이 자빠져있다가 이제사 기여오는 거냐.”

시어머님한테서 체면마저 무시하고 하시는 꾸지람을 한바가지 들으면서도 나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였다.

“어서 이겨놓은 흙이나 담아다 드려라.”

나는 냉큼 방에서 뛰여나갔다. 갑자기 흙 담을 그릇을 찾지 못해 금한 김에 세수대야에 흙을 퍼담아서는 가지고 들어갔다.

아저씨는 힘들지 않게 흙칼로 다 놓은 구들을 골고루 매끈하게 잘도 바르며 잠간사이에 일을 끝내버렸다. 일이란 손에 익은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였지만 서툰 사람에게는 어렵고도 힘든 것이였다.

나는 구들을 말리기 위해 인츰 부엌에 불을 지피였다. 그러고는 닦고 쓸고 하면서 뒤설겆이를 깨끗이 하였다. 해가 넘어가는 때를 같이하여 구들도 깨끗하게 빨리도 말랐다. 간단하게 된장국이나마 구수하게 끓여서 시어머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피곤한 느낌에 일찌기 자리를 폈다. 그런데 정작 자려 하니 오던 잠은 어디로 갑자기 도망쳐버리고 없었다.

나는 그냥 누워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아이고, 하시며 자기 아픈 허리를 툭툭 두드리며 돌아누우신다. 그랬으나 나는 죽은듯이 꼼짝 않고 있으니 그새 잠이 깊이도 들었구나 하고 혀를 끌끌 차시며 내가 덮고 있는 얇은 이불을 여미여주시고 다독거려주는 것이였다. 이 때 나는 그만 코등이 시큰해남을 어쩌지 못하였다. 세상에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매 한가지지만 다만 표현방식이 부동할 뿐이리다.

나는 시어머니의 아픈 허리를 몹시 걱정하며 안타까와하였다. 병은 자랑하라고 일하러 나가서 한담을 하다가 시어머니의 아픈 허리를 걱정했더니 나이 듬직한 아줌마가 좋은 비방이 하나 있긴 한데 할 수 있겠냐는 것이였다. 나는 시어머니의 아픈 허리만 고칠 수 있다면야 무슨 짓을 못하겠냐며 그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었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저녁도 대충 먹는둥마는둥하고 빈 자루 하나를 찾아들고 집문을 나섰다. 조선족과 한족이 섞여사는 뒤동네를 찾아갔다. 낯선 동네 낯선 골목에서 잠시 주저주저하며 망설이다가 대담하게 한 집을 정해 찾아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미안스럽지만 무슨 쌀이든 상관없이 한숟가락이라도 주시면 참으로 더없이 감사하겠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집주인 아줌마는 무슨 일인가 해서 눈을 소눈처럼 크게 뜨고 껌벅거리며 쳐다본다. 그래서 나는 자초지종 사정이야기를 했더니 아줌마는 두말 하지 않고 시원스럽게 쌀을 푹 떠서 주는 것이였다.

그 때는 지금처럼 식량이 풍족하지 못하고 겨우 빳빳하게 이어먹으며 식량이 딸리는 때라 어떤 집에서는 한숟가락이라도 줄가말가 난처해하였고 아예 주지 않고 내쫓으며 문전박대하는 집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집에서는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시어머니를 위해 이렇게 하는 일은 참으로 기특한 행실이라고 칭찬하면서 이런 쌀은 한숟가락이 아니라 열숟가락이라도 줄 수 있다며 푹 떠서 자루에 넣어주는 것이였다.

이런 동냥도 무한정이 아니고 시어머니 나이 수자 만큼 했다. 한족이고 조선족이고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동냥한 쌀은 입쌀, 강낭쌀, 수수쌀, 지어 콩과 팥까지 해서 참으로 다양한 오곡미였다.

나는 동냥한 이 오곡미를 깨끗이 물에 씻어서 소쿠리에 담아 물을 찌워서는 절구질을 하여 가루를 내였다. 그 알록달록한 가루를 보드라운 채로 쳐서 떡을 빚었더니 동글납작 이쁘기도 하였다.

나는 또 친정언니가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동생이라고 생각해서 준 암탉 두마리가 낳아 아껴모아둔 닭알들을 가져다 팔아 독한 소주 한병도 준비하였다.

“어머님, 여기로 오셔서 누워보세요”

“왜, 무엇 하려고 그러느냐?”

“어머님 아픈 허리에 뜸을 떠보려고 합니다.”

시어머님은 의아해하면서도 내가 시키는 대로 하시였다. 깨끗한 접시에 술을 쓸 만큼 부어놓고 성냥을 그어대니 불이 확 당겼다. 시어머님은 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파란 불이 나불나불 피여오르며 데워진 술을 나는 식을세라 빨리 가져다 시어머니 아픈 허리에다 발라주며 문질러드렸다. 이렇게 술이 다 없어지도록 바르고 바르고 하고 나서는 더운 김이 뭉게뭉게 솟는 솥안에서 떡을 꺼내여 보드라운 수건에 싸서는 시어머님 허리로 가져다 뜸질을 하였다.

“어머님, 어떠세요? 너무 뜨겁지는 않으세요?”

“약간 뜨겁긴 하다만 견딜 만하니 괜찮다. 그런데 시원한 느낌이 든다.”

“그러세요!”

이렇게 련이어 사흘을 뜸질했더니 헛되지 않고 보람이 있어 시어머님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무척 좋아하셨다.

“이 애 며늘아,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는 옛 속담이 있듯이 네가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하면서도 저녁에는 나에게 꼭꼭 뜸질을 해준 덕에 내 허리가 다 나아진 것 같다. 이제는 놀리기에도 아프지 않고 편해졌다. 내가 복이 있어 너 같은 며느리를 둔 덕이 아니냐. 참 고맙다.”

나도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어머님 허리가 나아졌다니 다행입니다.”

시어머님은 떡도 잡수어보시고는 나에게도 하나 집어주신다.

“쫀득쫀득한 게 먹을 만하다. 너도 하나 먹어보아라.”

“아니예요 어머님. 이 떡은 누구도 주지 말고 꼭 어머님이 다 드셔야 된다고 합니다.”

나는 떡을 받아서 다시 시어머님께 올렸다.

“그렇다면야 별 수 없구나.”

시어머니는 동네에 마실을 나가셔서 아픈 허리가 나은 일을 자랑하시였다. 그래서 동네에서는 우리를 참 잘 지내는 고부간이라고 칭찬했다.

이 모든 것은 친정아버지가 나에게 “홀로 계시는 시어머니를 절대 섭섭치 않게 손톱 만치라도 소홀히 대하지 말고 잘 모시며 자식된 도리를 잘해야 너희들도 장래에 복을 받는다”고 부탁하시던 말씀을 잊지 않고 실천한 보람이였다.

나는 이 말씀을 명심했으며 남 부럽지 않게 잘살고 있는 오늘에도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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