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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111]담배건조실에 깃든 이야기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1-16 13:08:00 ] 클릭: [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9)

▩한창국(안도)

필자 한창국

지난 세기 70년대와 80년대에는 어느 마을에 가든 첫눈에 안겨오는 것이 담배건조실이였다. 지금의 현대식 담배건조실과는 많이 다른, 마을에서 제일 높이 지은 토목건물이기에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던 것이다.

담배를 건조할 때면 두사람이 륜번으로 밤낮 불을 때기에 장작불에 무엇을 구워먹기가 딱 제격이였다. 소학교를 다니던 70년대초에 나는 햇감자거나 햇옥수수가 나오면 그것을 들고 건조실에 달려가 구워먹군 했다. 그 구수한 냄새는 지금도 풍겨오는 것만 같다.

담배건조실 마당은 널직하여 여러가지 용도로 유용하게 사용되였다. 담배를 달고 떼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외에도 평소엔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터였고 어른들의 휴식터로도 되였으며 로천영화를 방영하는 영화관 노릇도 톡톡히 하였다.

당시엔 별다른 소일거리가 없었기에 장년들은 저녁밥술을 놓기 바쁘게 건조실 마당에 모여들어 장기를 두기도 하고 한담도 하면서 긴 밤을 보냈고 호기심 많은 우리는 건조실 주변에서 술래잡기도 하고 간식도 먹으면서 즐거운 동년시절을 보냈다.

로천영화를 방영하는 날이면 건조실 마당은 마치 장마당인양 흥성흥성하였다. 나의 또래 소학생들은 저녁밥을 드는둥 마는둥하곤 누가 부르기라도 하듯 건조실마당으로 모여들어 소리치고 뛰여다니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이어 저녁술을 놓은 마을의 어른들이 쪽걸상을 들고 꾸역꾸역 모여들어 건조실 마당을 꽉 메웠다.

혹은 가족 끼리 혹은 친구 끼리 오손도손 모여앉아 영화를 보는데 눈은 영상을 보고 귀는 소리를 들으며 제구실을 하는데 입이 질투할가봐 호박씨나 해바라기씨를 닦아와 부지런히 입에 넣어주던 기억도 새롭다.

그 때는 주로 전쟁소재 영화들을 많이 보았는데 《갱도전》,《지뢰전》,《영웅아들딸》,《평원유격대》 등등이 대표적이였다.

어른들은 영화를 보면서 하루의 고달픔을 활활 날려보냈고 우리는 동년의 아름다운 추억의 한페지를 장식한 것이다. 지금 와서 펼쳐보니 눈앞에 보는듯 선하고 감회가 새롭다.

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80년대초에 생산대에서는 해마다 밭에 담배를 심어 수입을 올렸다. 그래서 나는 담배모를 대전에 이식하는 일로부터 담배를 건조하는 모든 일에 참여하여 초보자로부터 능숙한 일군으로 점차 성장하였다.

밭에 심은 담배모가 무성하게 자라서 잎이 누르스레 익으면 담배잎을 따게 된다. 녀자들은 한사람이 한이랑씩 차지하고 한포기에서 두세잎씩 따서 겨드랑에 끼며 앞으로 나가는데 담배가 넘쳐나기 전에 남자들이 와서 얼른 가져가기를 바란다. 거리가 멀어 남자들이 미처 가져가지 못하면 “담배야— 담배야-” 하고 고함을 친다. 그러면 남자들은 헐떡거리며 달려와서 가져가는데 뒤통수로 걸죽한 롱담이 날아들군 하였다.

남자들은 눈치를 보다가 녀자들의 겨드랑이에 담배잎이 어지간히 차면 녀자 앞에 가 서서 마치 대방을 안으려는듯 두팔을 쩍 벌린다. 그러면 녀자들은 담배잎 뭉치를 힘있게 안겨준다. 이 때 남자가 두다리와 두팔에 힘을 주지 않고 담배잎 뭉치를 안으려 하다간 뒤로 벌렁 자빠지기 한창이다. 그것은 남자들이 한두사람이 뜯은 담배잎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서너 사람의 것을 함께 받기에 그렇게 안겨주지 않으면 담배잎이 밑으로 줄줄 새여 더 고생이다.이렇게 남자들은 곰같이 담배잎을 한아름 가득 안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무성한 담배숲을 뚫고 수레길 옆에 가져다 놓군 하였다.

이렇게 담배잎을 다 따놓으면 솜씨 잰 녀자들이 댓메터 되는 새끼줄에 담배잎을 끼워넣는 작업을 한다. 왼손으로 새끼줄을 조금 벌리고 오른손으로 담배잎을 서너개씩 끼워넣는데 이렇게 한손으로 벌리면 다른 한손으로 끼워넣는 순서로 부지런히 담배 엮는 작업을 진행한다. 왼손과 오른손이 어찌나 조화를 잘 이루며 찰각찰각 일을 재치있게 해내는지 기계손이 왔다가 울고 갈 지경이다. 녀자들이 이렇게 담배잎을 새끼줄에 다 끼워놓으면 남자들은 그것을 수레에 실어서 건조실 마당에 가져다 쌓아놓고 건조실 안에 달아맬 준비를 한다.

새끼줄에 엮은 담배를 건조실 안에 달아맬 때에는 남자 넷이 두조로 나뉘여 일하는데 아래우에서 건조실의 상하 절반씩 차지하고 안쪽에서부터 차례로 달면서 문 쪽으로 나온다. 아래 두사람이 섬겨주는 새끼줄을 받아서 자기들이 먼저 한번 고정대에 달아매고 다음에 섬겨주는 새끼줄을 웃 두사람에게 넘겨주어 고정대에 달아매게 한다. 일솜씨가 늦거나 고공공포증이 있는 남자는 아예 이 일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초중시절부터 건조실보다 더 높은 잣나무에 자주 올랐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였지만 일은 초보여서 처음에는 쓴소리를 들었다. 서너번 담배를 달고 떼고 하다 보니 점차 익숙해졌고 게다가 한창 힘이 솟는 청춘이라 맡은 바 임무를 남 못지 않게 완성할 수 있었다. 둘이 손발이 맞아 제꺽제꺽 새끼줄을 고정대에 달아매고 또 딛고 있는 발판을 뒤로 이동하면서 번개불에 콩 닦아먹듯이 일을 하는데 아래 두사람이 늦으면 우에서 빨리 달라고 소리치고 우의 두사람이 늦으면 아래선 빨리 가져가라고 소리를 친다.

이런 순서로 건조실 안에 담배를 엮은 새끼줄들을 촘촘히 달아매는데 남자들의 얼굴에선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옷은 흠뻑 젖어 몸에 찰떡같이 달라붙고 게다가 흙먼지에 사람이 아주 깜둥이로 변해 누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 된다.

이 작업이 끝나면 건조실에 불을 지핀다. 온도를 조절하며 밤낮 네댓새 불을 때고 나면 노오란 황연이 굽혀나온다.

담배잎을 건조실에 달아매는 일은 그래도 보통 초저녁에 끝나서 곧바로 강에 달려가 씻을 수 있어 그런 대로 괜찮은데 말리운 담배를 건조실에서 떼여내는 새벽 일이 더 고역이였다. 만지면 와삭와삭 부서지는 황연을 누기 차게 하기 위하여 구워낸 담배를 떼여내는 일은 보통 안개가 내리는 새벽에 진행하는데 일이 끝나고 나면 찜질방에서 나온 것처럼 흐르는 땀에 먼지에 아주 범벅이다. 그렇다고 물이 차거워 손끝이 찡해나는 새벽 강에 달려갈 수도 없고 해서 텁텁한 대로 반나절을 지내야 하는 고민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10대 학창시절이였던 70년대의 건조실에 대한 인상은 먹거리와 놀거리에 관한 즐거운 추억인 것 같고 20대 초보 사회인이였던 80년대의 건조실에 대한 인상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로동의 대가를 알게 한 커피 같은 쓴맛이 나는 추억인 것 같다.

지금 고향에 가면 옛 건조실을 찾아볼 수 없고 빈터만 외롭게 남아 흥미로운 추억만 안겨준다. 툭 다치기만 하면 당금 일어날듯 추억이 한 모퉁이에서 풋잠을 자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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