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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115]장모님께 선 보이던 날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2-14 14:35:02 ] 클릭: [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3)

▩김동원(북경)

두 딸과 함께 (중간 사람이 필자)

1959년 7월의 어느 날이였다. 심심산골에서 언 감자에 둥굴레 뿌리로 주린 배를 달래며 자라온 나는 종내 대학졸업증을 손에 쥐게 되였다.

학교 지도부에서는 졸업생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열고 사업배치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국가 조학금과 늙은 부모들의 피타는 노력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또 졸업할 때 우수간부로 당선된지라 솔선적으로 분배에 무조건 복종하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래도 속으로는 연길이 아니면 룡정이겠지 하고 제 좋은 생각만 굴리였다. 그런데 연변 밖의 외지에 배치된 명단 가운데 내 이름이 있을 줄이야 !

나는 영길현조선족3중(2000년에 길림시룡담구조선족중학교로 개칭)에 배치받았다. 그 곳에 처녀가 귀하다는 소문을 들은 나는 졸업생 가운데서 그중 예쁘고 호감이 갔던 란이를 대상감으로 찍었다. 그 때 란이는 화룡현 모 중학교에 배치되여있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란이가 있는 녀학생 기숙사로 찾아갔다.

“란이 있어요?”

“예.”

그녀는 문을 열고 나를 바라보고는 활짝 웃으며 물었다.

“무슨 일로 찾으세요?”

“아, 뭐 별일은 아니고 시간이 있으면 오늘 저녁 강뚝에서 만나자구요.”

“예, 그렇게 하죠.”

란이는 선뜻 대답하며 스스럼없이 나를 따라나섰다. 별들이 반짝이는 그 날 저녁 우리는 강뚝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에 들어갔다.

“남자친구 있어요?”

“련애편지는 몇번 받은 적 있지만 모두 거절해버렸어요.”

“그래요? 그럼 나에게도 기회가 있네요. 사실 란이에게 호감이 있는데요.”

“학교에서 명성이 뜨르르한 동원동무가 저한테 이런 문제를 제기하다니 뜻밖이네요. 하지만 저도 마음이 없진 않아요.”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란이는 이런 말을 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좋아해도 엄마 동의를 얻어야 해요. 엄마 마음에 안 들면 집에도 안 들여놓는다고 했거든요.”

“하하, 거 꽤 까다로운 어머니시군. 나는 툭 털면 먼지 밖에 없는 가난뱅이 학생인데 꺼리시지 않을가요?”

“호호, 글쎄요…”

이튿날 우리는 룡문교 다리를 건너 비암산 고개를 넘어 란이네 집마당에 들어섰다. 나는 일부러 큰소리로 불렀다.

“주인님 계십니까?”

“예. 누구십니까?”

집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란이는 입을 싸쥐고 터지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미구하여 문이 빠끔히 열리면서 40대 중반의 녀인이 나와 란이를 번갈아보더니 환하게 웃으셨다. 어머님을 보니 란이가 어머님을 닮아 예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란이가 소개했다.

“어머니, 이 동무는 내 남자친구래요.”

“그래?!”

어머니는 활짝 웃으셨다. 나는 어머님께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어머님,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아이구, 반갑구만. 어서 들어오시오.”

“웃방으로 들어갈가요, 정지간으로 들어갈가요?”

“어려워 말고 정지간에 들어오오.”

우리는 정지간에 들어섰다. 나는 점잖게 앉아 어머님의 눈치를 슬슬 살피였다. 어머님이 물었다.

“부모님은 다 계시지?”

“예. 두분 다 계십니다. 저는 칠남매중 막냅니다. 집은 째지게 가난하고요. 지금 입고 있는 옷도 형이 입다 물려준 건데 헐망하여 볼모양 없어요.”

“젊어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고 했는데 가난은 흠이 아니오.”

점심때가 되여 모녀가 지지고 볶고 하더니 잠간사이에 한상 푸짐히 갖춰졌다. 반찬을 헤아려보니 모두 열두가지나 되였다. 머리털이 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이처럼 푸짐한 상이였다. 어머님의 음식솜씨는 대단하였다. 주량이 없는 내가 어머님이 부어주는 술 두잔을 받고 보니 벌써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밥 두사발에 맛나는 반찬을 이것저것 골고루 집어먹었더니 배가 터질 것 같았다.

“어머님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상을 물리고 모녀가 거두는 사이에도 밀려드는 졸음을 쫓을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님에게 량해를 구했다.

“술 좀 마셨더니 눈이 자꾸 감기네요. 원래 술은 못하거든요.”

“그래 허물 말고 자오.”

어머님은 재빨리 요를 펴주고 베개를 갖다주었다. 나는 웃옷을 벗고 눕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졌다. 깨여나서 웃옷을 입자고 보니 옷기슭과 소매기슭의 터졌던 곳이 곱게 기워져있었다.

“아니, 이건 누가 기웠는데?”

“어머니가 기웠어요.”

나는 어머님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훈훈해났다.

“기운 자리가 알리지 않게 곱게 기웠네요! 고마와요.”

“별소리 다하네. 내 자식과 같은데.”

사업배치 문제로 이튿날에도 학교에서 회의가 있어 떠나야 했다. 우리는 장모님이 하루밤 자고 가라고 극구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귀로에 올랐다. 장모님은 문밖까지 나와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저으며 바래주었다. 비암산 고개를 넘으며 란이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동원동무가 잘 때 엄마가 나한테 귀속말로 뭐라 한 줄 아세요?”

“뭐라 했기에?”

“남자가 모든 걸 맛있게 잘 먹어 내 복이 터졌다고 하지 않겠어요.”

“그게 왜 복인데?”

“남자가 뭐든지 잘 먹고 음식을 가리지 않는 건 건강한 표현이고 남편 섬기기가 수월하다는 거래요. 그래서 내가 엄마가 어찌는가 보려고 동원동무의 ‘흠’을 잡았거든요.”

“어떤 걸?”

“눈이 좀 작다고 했더니 뭐라는지 알아요? 동원동무의 눈은 크지도 작지도 않고 매력이 있대요. 글쎄 엄마가 매력이란 말을 다 할 줄 아는 거 있죠.”

“또 어떤 ‘흠’을 얘기했는데?”

“코가 크다고 했더니 엄마가 하는 말이 ‘남자는 코가 덩실해야 남자답다’고 하면서 저를 빤히 쳐다보며 ‘네 코는 작은 줄 아니? 박죽코 같은게 너보다 모든 게 낫더라.’ 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 어르신님이 장모님께 무사히 통과된 거란 말이지?”

“그럼요, 그렇구 말구요.”

우리는 다정히 손 잡고 비암산 고개를 넘었다…

사랑과 리상으로 끓어넘치던 랑만의 시절이였다. 그로부터 몇십년이 지나갔다. 장모님은 이미 오래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문득 장모님께 처음 선을 보이던 그 날의 정경이 떠오르면서 나를 친자식처럼 이뻐해주시고 사랑을 주시던 장모님이 그리워난다. 그리고 나와 50여년 동고동락하고 아기자기 살아오며 나 없으면 못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랑하는 안해 란이도 2016년에 암병으로 내 곁을 영영 떠나갔다. 아,사무치게 그립고 그리운 내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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