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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117] 세상에서 제일 맛있던 밥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2-21 14:06:36 ] 클릭: [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5)

▩김정일(도문)

로동자 모집에 합격되여 도시로 떠나는 친구를 송별하며 찍은 기념사진. 뒤켠에 있는 집이 집체호이고 맨 뒤줄 오른쪽 첫 사람이 필자임.

사람들은 내가 제일 맛있던 밥이라고 하면 아마 어느 누구의 초대를 받아서 어떤 고급식당에서 한끼 잘 먹었거나 아니면 어떤 잔치에 참석하여 한끼 잘 먹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한끼 밥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내가 하향지식청년으로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으러 농촌에 내려가있을 때 집체호에서 먹은 잊을 수 없는 한끼 밥을 말한다.

40여년 전 1974년 8월 쯤으로 생각된다. 그 때 우리 집체호의 강일수란 친구와 나는 대대 ‘모택동사상문예선전대’에 선발되여 날마다 사오리 떨어진 대대마을로 춤노래를 련습하러 다니였다. 그 때는 해마다 공사와 시에서 문예회연 경연이 많아 우리는 전문 생산을 리탈하고 련습에 전력을 다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종일 춤 련습에 뛰여다니다가 저녁때가 되여서 집체호에 돌아와보니 집체호 애들은 하나도 없고 텅 빈 집만 우리를 맞아주었다. 후에야 알고 보니 전 생산대 청년들이 모두 ‘민병군사야영’을 떠났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우리 둘은 허기진 배부터 채우려고 찬장을 뒤져보니 먹을 것이라고는 한소래 묵은 찬밥-강냉이를 섞은 꼬장꼬장한 조밥 뿐, 반찬은 고사하고 먹다 남은 된장국도 없었다.

배는 고프고 먹을 것은 마땅치 않고, 우리 둘은 찬밥을 놓고 한참 궁리하다가 ‘작전계획’을 세웠다. 소위 작전계획이란 사원들의 터밭에서 좀 ‘가져다’ 먹는 것이였다. 그 때 우리 집체호에는 채소를 심을 마당도 없었다.

이윽고 우리 둘은 여러 집의 터밭을 돌아본 후 정치대장 집의 고추를 조금 ‘빌려’오기로 했다. 그것은 항상 우리 집체호 애들을 두둔해주면서 집 떠나서 고생이 많다며 혀를 끌끌 차는 마음씨 고운 아주머니길래 발각되여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작전이 시작되자 나는 인차 고추밭에 들어가서 고추를 따서는 호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금방 여라문개의 고추를 따는데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 온다는 신호였다. 즉시 철수하여 집체호에 돌아왔다. 헤여보니 모두 12개였다. 좀더 땄더라면 하고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우리는 코노래를 부르며 고추를 손질하고 잘게 썰어서는 조밥소래에 쏟아넣었다. 그리고는 찬장을 뒤져서 기름병 밑굽에 조금 밖에 안 남은 생콩기름을 몽땅 부어놓고는 숟가락으로 한참 비볐다. ‘집체호’표 비빔밥이 드디여 완성되였다.

우리는 랭수 한사발씩 떠놓고 숟가락에 간장을 묻혀가면서 먹기 시작하였다. 잠시후 밥소래가 굽이 나자 우리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글쎄 5, 6명이 먹을 한소래나 되는 밥을 둘이서 게눈 감추듯해버렸으니 말이다.

그 후 몇년 뒤 정치대장집 아주머니와 우연히 만나서 그 때 풋고추 12개를 훔쳐먹은 얘기를 했더니 웃으시며 “다 알고 있었다”고 너그럽게 말씀하는 것이였다.

아… 그 때 그 밥이 얼마나 맛있던지 지금도 그 비빔빕을 생각하면 입을 다시게 된다. 요즘엔 거리에 나가보면 별의별 밥집들이 많고도 많다. 하지만 그 ‘집체호’표 비빔밥 만큼 맛있는 밥은 다시 먹어보지 못했다.

그 후 수십년이 지난 후 강일수 그 친구를 만나 그 때 그 비빔밥을 해먹던 얘기를 꺼내니 그 친구도 그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더없이 감개무량해했다. 우리는 후에 언젠가는 꼭 다시 한번 만나서 ‘집체호’표 비빔밥을 해먹자고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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