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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124]할머니의 장농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1-21 14:26:32 ] 클릭: [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2)

▩최혜숙(서란)

한국에 계시는 작은할아버지가 오셨을 때 우리 가족이 할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찍은 사진.

할머니는 늘 온 집 식구가 깊이 잠든 한밤중에 장농을 정리하셨다. 평소 연한 갈색을 띤 커다란 장농에는 언제나 자물쇠가 떡하니 채워져있었다.

“저 장농 안에는 도대체 무슨 보배가 들어있을가? 할머니가 동네에 놀러 나가실 때면 열쇠를 두고 갔으면 좋겠어.”

우리 형제들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장농을 바라보며 소곤대군 했다. 왠지 장농 속에는 사탕, 과자와 같은 맛난 먹거리들이 봉지 채로 가득 들어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도 장농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무척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할머니, 왜 낮에 장농 문을 열지 않으세요? 밤에 장농을 정리하면 재수 없는 일이 생긴다던데요.”

언니가 이렇게 억지를 부리면 할머니는 허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들 같은 굶주린 새앙쥐가 눈독을 잔뜩 들이고 있는데 낮에 열면 물건이 남아나겠냐?”

야속하기만 했던 할머니의 장농, 그 장농은 신비한 마력을 띠고 자석처럼 우리를 흡인했다.

내가 갓 소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어머니가 남동생을 낳으셨다. 딸만 주렁주렁 셋이나 낳으셔서(녀동생은 어릴 때 질병으로 잃었다) 은근히 시집살이를 하시던 차라 어머니는 어렵사리 얻은 남동생을 금이야 옥이야 곱게곱게 키우셨다.

하루아침에 그토록 의지하던 어머니에게서까지 찬밥 신세가 된 나는 서럽기만 했다. 생일날 아침, 투정을 부리는 동생을 달래느라였던지 밥상은 소박하기만 했다. 생일이면 빠지지 않고 올라오던 부추계란볶음도, 미역국도 없는 썰렁한 밥상에 토라진 내 기분을 헤아리신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가셨다. ‘딸깍’ 종래로 있어본 적 없는 낮에 장농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할머니가 사과 한알을 들고 나오셨다. 탱자처럼 자그마하고 조글조글 마른 껍질에 한쪽이 살짝 곯기까지 한 사과였다.

“동생이 어려서 엄마가 경황이 없었나 보다. 자, 이 사과를 먹고 기분 풀어라.”

따스한 온기가 담긴 할머니 특유의 투박한 말투에 나는 코등이 시큰해났다. 훌쩍이며 먹었던 새콤한 그 맛이 지금까지 기억되는 건 왜서일가? 할머니의 장농에 가득 담긴 손군들에 대한 사랑을 못 잊어서였던 걸가?

할머니는 무서운 살림군이셨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째지게 가난했었다. 70년대에 부유한 가정이 어디 있었으랴만 삼촌, 고모들 넷에다 우리 형제 셋까지 합하다 나니 우리 집은 그야말로 대가정이였다. 하여 입을 것, 먹을 것이 언제나 빠듯하였다. 무서운 절약정신으로 집안의 살림을 꾸려나가시던 할머니는 큰일을 치를 때 부조로 들어오는 옷감이라든지 술병 등 자질구레한 것을 싹 정리하여 장농에 넣어두고 자물쇠를 철컥 채우셨다. 그렇게 채워진 장농은 언제나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가 삼라만상이 잠든 밤중에라야 그물거리는 호롱불 아래 달그락 달그락 할머니만의 보물정리가 시작된다.

우리 형제는 어렸을 때 설날을 제외하고는 새옷을 입어본 기억이 없다. 그나마 재봉질을 잘 하는 어머니 덕분에 다른 집 애들의 옷을 지어주고 남은 자투리천을 무어만든 명실상부한 알락달락 ‘무지개옷’이나마 입을 수 있었다. 언니가 소학교를 졸업하던 해였던 것 같다. 친구들이 해입은 꽃치마가 부러웠던 언니는 할머니의 치마폭을 부여잡고 매달렸다.

“할머니, 치마 해입게 지난번에 보았던 자주빛 꽃무늬가 있는 옷감을 좀 내주세요. 친구들이 졸업기념으로 다 해입었단 말이예요. 응? 할머니!”

아무리 애교를 부리고 떼를 써봐도 할머니의 철석간장을 녹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새해가 다가오면 요술을 부리듯 할머니는 장농에서 옷감을 꺼내주셨고 살림군 할머니 덕분에 우리 형제는 설빔을 해입고 깡충깡충 즐거운 설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

몇해전 한국에 일가를 만나보러 가셨던 할머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비행기를 탈 수조차 없이 허약해지셔서 그대로 한국에 머무르게 되였다. 그래서 할머니의 짐을 정리하기 위하여 나는 마침내 신비로운 장농의 문을 열게 되였다. 장농을 꽉 채운 건 우리 자손들이 철철이 사드린 고운 옷들이였는데 워낙 검소함이 몸에 배신 할머니였던지라 거의다 한번도 입지 않은 새옷이였다. 장농 밑으로는 색바랜 데트론 옷감이며 꽃무늬 천들이 수북했다. ‘애심봉사자모임’의 아는 언니에게 부탁하여 할머니의 옷을 기증하면서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시려고 그토록 아끼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신비하기만 했던 할머니의 장농, 이제 내 옷장은 완전히 오픈상태이지만 궁금해하는 사람 하나 없다.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왔던 지난 날, 그 시절이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의 한페지로 남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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