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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1 ] 동년의 설날이 그립다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3-18 15:20:06 ] 클릭: [ ]

[수기 1] 동년의 설날이 그립다

래일이면 설날이다.

멀리에 있는 세 딸과 귀여운 손군들을 그리면서 량주가 마주앉아 손을 꼽아보니 어느덧 내 나이 75살이다. 이만하면 아버지 년세는 넘게 살았고 동네에서 최년상으로 모시던 할아버지(최주해)만큼 살려면 아직도 10년은 더 살아야 한다.

그나마 요즘은 핸드폰을 익힌 덕분으로 매일 핸드폰과 동무하는 것이 별세상이다. 그믐날 부터 핸드폰은 쉴 새 없이 신호가 울린다. 지인들께서 올린 설명절 문안과 동영상들이 명절의 분위기를 띄우고 있지만 핸드폰만 끄면 썰렁한 기분이다.

나는 왕청현 석현진 달라자툰 큰 기와집 큰딸 최정금이다. 어릴 때 우리 집은 마을에서 제일 큰 기와집에서 살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우리 다섯 남매를 키우면서 화목하게 보냈다. 옆집은 삼촌네 집이고 삼촌네도 다섯 남매를 키우면서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았으며 뒤집의 5촌 숙부네도 오누이를 키우면서 재미 나게 살았다.

이렇게 4촌에 6촌까지 합쳐 형제자매 도합 12명, 그 때 우리는 이 집 저 집 뛰여다니며 즐겁게 놀았다. 그래도 설날이 제일 재미 있었다. 설날이면 다들 우리 집에 모여 할아버지에게 세배 드리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설날 아침 할아버지에게 세배를 올리는 행사는 제법 우리 가문에만 있는 례의범절인듯 싶었다. 열명도 넘는 우리 자매들은 모두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저마다 곱게 옷을 차려입고 우리 집에 모여와 나이 순서대로 세배 줄을 선다.

뒤 집 5촌 숙부가 제일 먼저 할아버지에게 세배를 드린다. 5촌 숙부가 할아버지에게 절을 올리면서 “아즈바님, 올해에도 무사합소!” 하면 할아버지께서도 맞절을 하시며 “조카도 무사하오!” 하신다. 그리고는 또 입속말로 뭐라고 중얼거리시는데 그 때 나는 너무 어려서 그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두번째 순서는 아버지와 삼촌의 순서이다. 그들도 할아버지 앞에 공손히 엎드려 절을 하면서 “올해에도 무사하고 오래오래 앉읍소!”라고 인사를 올리니 할아버지도 “으으흠...” 하시며 인사를 받고 즐거워 하셨다

그 다음은 10여명 손군들의 순서이다.

큰 손자부터 절을 한 다음 성욱, 정욱, 영욱, 태욱, 송욱이 뒤따르고 손녀들 순서는 일금, 정금, 순금, 오금, 선금, 신숙이다. 손군들이 깍듯이 하는 설 인사가 제멋이여서 이 때부터 온 집안은 웃음기가 돌기 시작한다.

엉뎅이를 하늘로 쳐들고 머리만 구들에 붙인 놈, 머리와 배를 모두 구들에 납작 붙여 엎드려서는 손만 아마에 대고 있는 놈, 두 무릎을 꿇고 이마에 손을 얹고 일어날념을 하지 않는 놈...별의별 우스운 꼴이 다 있었다. 이중에서도 제일 볼거리가 있는 것이 막둥이들이 절을 하느라 머리를 구들에 대고 엉뎅이를 쳐든다는 것이 그만 짜개바지 밑으로 시퍼런 살과 ‘작은 고추’가 삐죽이 나오는 장면이였는데 온 집안에 폭소가 터진다.

세배를 받은 할아버지는 너무 즐거워 손군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잔등을 정겹게 다독여주며 “네가 제일 잘한다”, “네가 제일 곱게 한다”, “네가 제일 멋 있다”고 치하하시면 철부지들은 저마다 자기가 제일이다고 어깨를 으쓱거린다.

세배가 끝나면 다들 우리 어머니와 숙모가 준비한 맛 좋은 음식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남자들은 술상에 앉아 권커니 작커니 하면서 술을 마시고 녀자들과 애들은 끼리끼리 모여앉아 맛 나는 음식을 먹는다.

 

할아버지는 술잔을 기울이기 전에 가마목 일에 드바쁜 며느리들을 향해 “인젠 그만하고 식사나 빨리 하라”며 정답게 말을 건넨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동네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이 할아버지께 설 인사 드리려고 련거퍼 들어온다.

어머니는 아침 설겆이를 끝내지 못한 채 술상을 갖추고 거두기를 반복하면서 온종일 쉴 새 없이 가마목에서 뱅글뱅글 돌아친다. 그 뿐이 아니다. 초이튿날부터는 먼곳에 있는 친척들까지 들이닥치는 바람에 눈코 뜰 새 없이 뛰여다닌다. 하지만 어머니는 언제 한번 짜증을 낸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효자며느리로 린근에 소문이 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이미 40여년이 지났다.

4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때의 그 모습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때의 그 설날이 우리 부모님들의 넋이 살아있고 우리 민족의 전통이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날이 갈수록 우리 민족의 전통적 미풍량속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으로 하여 저으기 가슴이 아프다.

썰렁한 설날로 인해 기분이 잡쳐진다. 밥맛도 없어진다. 사맥도 해나른해진다. 정신도 어쩐지 흐리터분해진다.

언제면 그 날의 그 화끈한 정경을 다시 볼 수 있을지? 그 날을 학수고대한다. / 최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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