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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2] 탁 영 탁 족 (濯纓濯足)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3-18 15:26:04 ] 클릭: [ ]

[수기 2] 탁 영 탁 족 (濯纓濯足)

아침마다 걷는 조깅의 길, 가슴이 확 트이는 대련 앞바다의 경치는 가슴을 들먹이게 한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우에 갈매기들이 훨훨 날아예고 여러가지 경공업품과 소상품을 만재한 화물선이 로씨야 , 한국, 일본 등 여러 나라를 향해 쉼없이 줄달음친다. 록음방초 우거진 바다가에서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그칠 새 없이 들려온다.

붐비는 인파속에서 40년전까지만 해도 한적하게 국내 손님들을 배로 나르던 대련부두의 들끓는 정경을 바라보노라니 나의 가슴에 묻혀졌던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사연들이 쪽문을 연다.

 로씨야 고려인과 기념사진을 남긴 필자 리삼민(오른쪽)

1992년 나는 흑룡강 동녕현 향정부에서 공무원으로 있었다. 하향을 가면 백성들이 올리받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지도간부들한테서 훈계를 받는 ‘두병간부’ 생활에 신물이 나는데다가 “세상이 바뀌였어, 빨리 돈 벌러 나오라!”는 친구들의 권고를 이겨내지 못해 나는 결연히 로씨야 장사 길에 나섰다.

구쏘련이 해체되고 나라 대문이 활짝 열린 우쑤리스크(乌苏里斯克)는 시장마다 중국사람들의 천지였다. 옷과 신 그리고 소상품, 과일, 채소를 파는 중국인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로씨야 모 회사로부터 꾼 20만원의 루블을 안고 이곳저곳을 살피던 나는 큰돈을 벌려고 철물장사에 접어들었다. 한 트럭에 20톤의 철물을 중국으로 보내면 적어도 4, 000원에서 5, 000원의 돈을 번다기에 나는 짠지 쪼각에 헬레브(만두)를 먹으면서 밤낮 사흘동안 로씨야 회사를 빗질했다. 하지만 원래 장사에 숙맥인데다가 먼저 들어선 장사군들이 새로 들어오는 철물을 가로채는 바람에 번마다 헛물을 켜고 말았다.

루블시세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집세는 껑충껑충 뛰여오르고 경찰들과 깡패들이 벌떼처럼 중국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바람에 돈 벌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입술이 메마른 논바닥처럼 갈라터진 나의 몰골을 보고 여기저기서 비난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책상머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무슨 돈을 번다구?”, “저 사람처럼 고지식한 사람 백년 가도 그 꼴이야.”…

그러던 어느 날, 통역을 서던 꼴랴(고려인)가 열흘이면 철물 20톤이 도착한다면서 선불금 17만원(인민페)을 빨리 달라고 했다. 평소에 그의 집에 가서 개추렴도 하고 해서 믿음성이 있어보여 나는 그 자리에서 현찰을 꺼내 주었다. 이튿날 꼴랴가 도장이 박힌 령수증을 가져다 주면서 열흘동안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웬걸 하루 이틀이 지나고 한주일이 지나도 철물은 고사하고 꼴랴도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그의 집으로 달려가 보니 커다란 자물쇠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웃집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집은 세집이고 꼴랴는 어제밤에 따스껜으로 갔다고 알려 주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로씨야 땅에서 어데 가서 꼴랴를 찾는단 말인가. 하늘을 우러러 하소연해도 응대하는 사람이 없었고 땅을 치며 통곡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앞이 캄캄하고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하도 억이 막혀 집으로 돌아 가자니 안해가 편지에서 빚군들이 내가 돌아가기만 하면 김치움에 가두어 넣으려 하니 죽어도 돌아오지 말라고 한다.

개방된 나라 대문에 들어선 나의 첫 시련이였고 인생을 바꾸기 시작한 첫 발자국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장경제는 우리를 상상밖의 딴 세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길은 좁고 사람은 많아 돈에 혈안이 된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갓 들어온 철물을 가로채기 위해 로씨야 회사측에 돈뭉치를 찔러주고 미인계를 쓰고 경찰과 깡패를 동원하고 심지어 중국인 끼리 숙소를 들이치는 일이 늘 일어났다.

12월도 막 가고 설을 맞는 어느 날, 나는 저녁밥도 먹지 못한 채 자리에 누웠는데 거미 한마리가 천정 한쪽 구석에서 한창 줄을 늘이고 있었다. 주방에서 고기 삶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기지만 거미는 거기에 곁눈을 팔지 않고 한줄 또 한줄, 가로세로 빈틈없이 열심히 그물을 치고 있었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자 주인집 식구들이 소고기, 해산물에다 소주를 마시면서 즐겁게 설을 쇠였다. 거미는 요행 그물에 걸린 모기와 파리로 끼니를 대충 에우며 ‘설’을 쇠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 졌다. 바깥세상에 곁눈을 팔지 않고 주어진 삶에 열중하는 거미 인생이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시장경제의 세찬 물결 속에서 권력이 크고 작든, 재부가 많고 적든, 부유와 빈곤은 그 사람의 표면 현상이지 그것으로 그 사람의 인생 가치와 사회적 위치를 저울질할 수 없지 않는가?!

모든 불의와 정에 물들지 않고 옳곧은 삶의 신조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시대의 부름이고 인생의 가치가 아닐가!

생각을 바꾸니 앞이 확 트이고 힘이 솟구쳤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올랴 할머니가 작년까지만 해도 설 명절이 되여야 급이 있는 사람들이 미국에서 들여온 사과를 맛볼 수 있다고 하면서 나를 통해 중국 사과를 들여오기로 결정했다고 알려 주었다.

절호의 기회이다. 나는 불철주야 뛰여다니던 철물장사를 그만두고 목단강으로부터 중국산 과일과 채소를 실어다가 도매하기 시작했다.

장장 13년 동안 우쑤리스크, 울라지보스또크, 나호드까 등 도시를 전전하면서 수천톤의 과일과 채소를 팔았다. 그 사이 망짝같이 나의 어깨를 짓누르던 빚더미를 허물어 버렸고 시내에 아빠트도 장만하였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 어느덧 고희를 넘어섰다.

나는 대련 앞바다 실북처럼 드나드는 륜선을 바라보며 고사 ‘탁영탁족(濯纓濯足)’을 머리속에 떠올린다. 갓끈과 발을 물에 담가 씻는다는 뜻으로 전국 시대 초나라 때 굴원이 천부적인 문재(文才)로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간신들의 참소로 일생동안 세번이나 귀양을 가면서 결국 울분을 이기지 못해 멱라강(汨罗江)에 뛰여든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이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이내 발을 씻으리’ 탁류에 휘말려 몸을 버리기보다 올곧은 마음으로 부정 비리에 곁눈을 팔지 않고 주어진 삶에 충직하는 것이 시대의 부름이고 인생의 가치인가 본다.

숨이 붙어있는 한 나는 이 철리를 명기할 것이다. / 리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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