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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6] 그리운 고향친구 용규야, 보고 싶다!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4-19 14:48:06 ] 클릭: [ ]

내가 살던 고향은 편벽한 산골 길림시 강북향 김가툰이다. 어느덧 70고개를 넘어서니 어릴 때 고향에서 함께 뛰놀던 옛 친구들의 얼굴이 자주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윤용규가 제일 그립다. 용규는 8남매 중 맏이로 태여났다. 얼굴이 동그랗게 생겼고 몸집은 작으나 단단하였다.

친구 윤용규(앞), 오봉석(뒤 오른쪽)과 함께 기념사진 남긴 필자 양상태

항일전쟁 승리 초기 너나없이 가난했던 세월에 용규네 집은 특별이 가난했다. 제비둥지 같은 오막살이 집에서 살았는데 집안은 서발막대 휘둘러도 거칠 것 없었다. 이부자리가 모자라서 밤에 잘 때 이불 한채로 열식구가 같이 덮었다고 한다.

용규와 나는 동갑내기인데 짜개바지 동무였고 소학교 때부터 중학교에 이르기까지 한 학교에 다녔으며 졸업후 고향에 돌아와 함께 생산대에서 일했다.

내가 생산대로 돌아간 이듬해의 모내기철이였다. 잠 자던 나는 갑자기 배가 아프고 열이 나면서 메스껍더니 토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반복해 토하고 나니 나중에는 토할 기운조차 없었다. 병세는 점점 엄중해졌고 어머니는 큰일 났다며 눈물이 글썽하여 나를 보고 빨리 위생소에 가보자고 했다.

그런데 위생소는 8리나 떨어진 리가대대에 있었다. 자정이 넘은 데다 또 낮에 모내기를 하느라 다들 곤하게 자는데 누굴 부르겠나? 나는 생각 끝에 용규를 불러오라고 어머니께 부탁했다.

어머니가 용규네 집에 가 내가 아프다는 사정을 말하자 용규는 두말없이 사육소에 가서 부랴부랴 소차를 메워 와서는 나를 태우고 위생소로 달려갔다. 급성 위장염이였다. 의사가 떼준 점적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나니 많이 나아졌다. 그 후에도 나는 자주 위장염이 발작하였는데 번마다 용규가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용규가 너무 고마와 구명은인이라고 말했더니 그만한 일에 무슨 구명은인이라고 하느냐고 대꾸했다.

우리 생산대 대장은 김기원이란 분이였다. 몸집이 억세 보이고 어깨가 쩍 벌어지고 체격이 우람졌다. 성격은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처럼 급하고 일을 할라치면 불티나게 해치웠다. 학교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불농군인데 로당원이다. 용규와 나는 학교에서 금방 나온 풋내기 일군으로서 우리가 일을 잘못하거나 꾀를 부리면 사정없이 나무람하는 그다.

용규와 나는 김대장이 마을에서 제일 권리가 있고 가장 위풍이 있어보여 항상 두려워했다. 그래서 김대장의 말이라면 “예, 예” 하면서 무조건 복종이다.

어느 날 내가 용규를 보고 “우리 김대장을 털 없는 범이라고 부르자.”라고 했더니 용규도 그 별명이 참 좋다고 하면서 그 때로부터 우리 둘은 김대장을 보면 ‘털없는 범’이 온다고 하였다.

용규와 나는 소대에서 제일 낮은 벼슬 조장도 못해봤다. 간부들은 그래도 일하다가 공사나 대대로 회의하러 가면 한번씩 허리를 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논물을 보거나 사육원, 목수일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헐하게 벌어먹었다. 용규와 나는 능력이 없다 보니 죽으나 사나 허드레 일이나 했다.

그러나 허드레군도 한시기 중용할 때가 있었다. 그 절기가 ‘모내기철엔 아궁앞의 부지깽이도 뛴다.’는 때다. 용규는 모 찌는 솜씨가 좋고 나는 모 심는 솜씨가 좋았다. 모 심기때에는 녀성들이 주력군인데 용규와 나는 해마다 주력군에 들었고 우리 둘은 한조가 되여 모를 심었다. 우리 대 논은 모래자갈 땅이 많았다. 여러 날 모를 심다 나면 손가락 끝이 다스러져 피가 맺히기도 했다. 모를 심다가 혹시 손가락이 돌에 부딪치면 저도 모르게 “아차”하는 아픔 소리가 나고 눈물이 찔금 나온다.

개혁개방의 봄바람이 불어와 호도거리를 시작하자 우리는 다시는 코 꿰맨 송아지마냥 집체조직에 끌려다니지 않게 되였다. 우리는 마치 조롱속에 갇혔던 새를 풀어준 것처럼 자유스러웠다. 어느 날 나는 소차를 메워 로령자 고개마루에 창고를 지을 모래흙을 실으러 갔다. 로령자는 마을에서 2리 떨어져있으며 그 곳엔 45도로 경사진 50여메터 되는 고개가 있었다.

모래흙을 한차 가득 싣고 차에 앉아 차멎기 끈을 힘껏 잡아당기면서 내리막 길을 내려오는데 차멎기가 차바퀴 안과 마찰되면서 드르륵드르륵 요란한 소리가 났다. 소가 그만 그 소리에 놀라 와닥닥 내리뛰기 시작했다. 나는 불이 나게 차에서 뛰여내리면서 소고삐를 다잡아쥐고 있는 힘껏 잡아당겼지만 소는 거침없이 내달렸다. 나는 따라 갈 수가 없어 그만 고삐를 놓고 말았다. 순간 “혹시 길 가던 사람들이 미처 피하지 못하면 사고를 칠 수 있겠는데…” 는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헐레벌떡이며 냅다 뛰여 마을에 거의 다 다달았는데 마을 앞길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무슨 사고가 났는가? 나는 가슴이 한줌만 해서 그 곳에 가보니 용규가 소고삐를 쥐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오늘 용규가 아니였더면 큰일이 날 번 했다고 중구난방으로 말하였다. 나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 때 용규가 마침 큰길에 나서는데 우리 집 소가 차를 끌고 네굽을 치며 달려오는 걸 보고 무작정 몽둥이로 소를 내리쳐 제지시켰다 한다.

나는 너무 고마와 용규를 덥석 붙안고 감동조로 “너 아니면 큰일 칠 번 했구나!”라고 연신 고맙다고 말하자 용규는 “너 오늘 많이 놀랬겠구나”며 되려 나를 위로해주었다.

용규는 나의 일생에서 잊을 수 없는 딱친구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전립선질병으로 고생하다가 환갑을 겨우 넘기고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그리운 친구 용규야, 너 지금 하늘나라 어느 곳에 외롭게 있지? 항상 그립구나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구나!” / 양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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