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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문물에 담긴 이야기(10) 규중칠우─다리미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5-10 10:32:31 ] 클릭: [ ]
다리미, 룡정조선족민속박물관 소장.

과거 남자들에게 문방사우인 종이, 붓, 먹, 벼루가 있었다면 부녀자들에게는 규중칠우(闺中七友)인 바늘, 실, 골무, 가위, 자, 인두와 다리미가 있었다. 바느질을 하는 데 필요한 침선도구인 다리미는 녀인들의 전유물로서 정겨운 추억의 물건이다. 다리미에는 가족들의 의상을 항상 깨끗하고 정갈하게 특히 깨끗한 나들이 의상은 한 집안 녀성들의 살림솜씨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일종 존중이라고 생각하는 조선족 녀성들의 생활에 대한 태도가 반영되기도 한다.

사진 속의 이 다리미는 룡정조선족민속박물관의 소장품으로서 지금으로부터 35년전인 1984년 11월 5일, 초대관장 차상춘과 신길철선생이 안도현 복흥향 복흥촌 주순애가정에서 수집해들인 것이다. 당시 주순애의 회억에 따르면 이 다리미는 한국 전라남도에서 1937년에 중국으로 건너올 때 가지고 왔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제공한 원시기록카드에 ‘다로’라고 적혀있어 혹시 잘못되였나 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한국 경상남도의 방언에 다리미를 ‘다로’라고 부른다고 했다. 전라남도면 경상남도와 바로 ‘이웃집’이니 주순애가 만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전라남도에서 안도현까지 가지고 온 다리미를 ‘다로’라고 부른 것은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고 보면 로일대 문물사업일군들이 ‘다로’를 다리미로 적어넣지 않고 문물주인들이 제공한 그대로 적은 것은 참으로 현명한 처사다.

생활이 가난한 대신 인심이 후했던 옛날에 다리미는 녀인들의 손을 거쳐 마을의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는 ‘자원봉사자’였다. 1970년대 초반에 아버지가 조선에 있는 두 형님과 삼촌을 만나러 갔다가 한 보름 만에 선물꾸레미를 들고 돌아왔다. 우리에게는 자동연필이며 나일론 긴팔을 가져왔는데 그 때까지 자동연필 그림자도 볼 수 없었던 연변에서는 동네 또래들이 자못 부러워하는 ‘사치품’이였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당시 상해와 같은 대도시에서나 입었을 의류와 숄(披肩), 외국으로 수출한다는 황태 한박스 그리고 전기다리미를 선물로 가져왔다.

마음씨가 비단인 어머니는 머리를 제거한 노릇노릇하고 껍질을 벗긴 일품 황태를 한집 한집 돌아가면서 맛을 보라고 돌렸다. 그리고 아버지가 ‘귀중품’으로 조선에서 가져온 다리미는 마을에서 유일한 전기다리미, 얼마 후 우리 집으로 마실을 왔던 아낙네들이 보고 두눈이 휘둥그래서 부러워하더니 이윽고 한집 두집 빌려가기 시작했다. 전기곤로와 같은 열선에 사기고리를 씌워서 만들어진 전기다리미는 품질이 지금 말하면 불량품 정도여서 얼마 안 지나서부터 열선이 끊어나고 사기고리가 깨지는 고장이 잦았다. 처음에는 선을 이어서 그런대로 계속 돌아가면서 사용이 가능했으나 후에는 점점 심하게 고장이 생기더니 일년도 채 안돼서 아예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어머니는 몹시 속상했으나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하나도 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외할머니 집에서 불다리미를 가져다 사용할 적마다 아버지한테 겉은 멀쩡한 대로 있는 전기다리미를 애석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어떻게 수리해서 사용할 수 없겠는가고 몇번 물어보는 것을 보면 그 때 전기다리미의 ‘환생’에 대한 일루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가를 알 수 있었다.

지난 청명에 가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어머니는 “그 세월에는 그랬지. 지금은 그 때 우리 전기다리미를 빌렸던 사람들이 거의 다 땅 밑 세상으로 가고 없소. 저 아래 춘복이 엄마가 아직도 생전이라오. 발도 안 달린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지.”라고 하면서 회포에 젖어 돌아간 마을 아낙네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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