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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7] 옷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5-23 10:01:14 ] 클릭: [ ]

[수기 7] 옷

어릴 적 우리 집은 소학교 교원인 아버지의 박봉에 매달려 여섯 식구가 살았다. 어머니는 지병으로 몸이 좋지 않아서 수시로 병원나들이를 하셨다. 터울이 작은 우리 4남매는 한창 왕성하게 자라는 때여서 삼시 때 시걱을 마련하는 일만으로도 어머니는 근심걱정이 마를 새 없었다. 그러니 새 옷은 정말 귀하게 생겼다.

뒤줄 왼쪽 첫번째 필자 김숙자 

세밑이면 생산대마다 년말 총산을 하고 분배라는 걸 했다. 때에 맞춰 학급에도 새 옷을 입고 등교하는 애들이 날마다 늘어났다. 남색 바지나 국방색 웃옷이 많았다. 진한 진달래꽃 색갈의 칭룬(腈纶,아크릴 섬유)내의라는 것도 새로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는 그때 그 애들이 남색 웃옷 목선에서 눈이 부시게 빛나던 그 진달래 꽃 색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보다 더욱 큰 동경으로 남았던 옷은 연두색의 털실세타였다. 그때 초록빛이나 다홍색, 남색의 털실은 결혼할 때 함에나 넣는 귀한 물건이였다. 그런데 분배를 꽤 탄 집들에서는 이런 털실도 척척 사다가는 밤을 새워가며 뜨개질 하여서는 자식에게 입혀 보냈다.

그 애들 팔목을 포근하게 잡아주며 손목까지 드리웠던 털실세타의 연두빛을 보면서 나는 소매가 닳고 팔꿈치를 기워 입은 내 속옷이 피부를 스치는 것이 아프고 해져서 꿰맨 소매가 겉에 처져나오지나 않았을가 싶어서 저도 모르게 옷소매를 당기기도 했다. 그때 누가 만약 나에게 “넌 이 담에 어떻게 살고 싶어?” 하고 물었더라면 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연두색 털실을 마음껏 사서 나도 떠 입고 우리 엄마 아버지도 우리 동생들도 다 한견지씩 떠 입히며 사는게 제일 큰 소원이다”고 말했을 것같다.

그때 우리가 입었던 목천바지는 왜서 무릎이 그렇게도 잘 나오고 해지기도 잘하던지 … 무릎이나 엉덩이부위는 늘 기워 입어야 했다. 그나마 안에다 천을 대고 신바닥을 누비듯이 모양을 내서 마선으로 누벼입으며 무작정 천을 턱 붙여 깁는 것보다는 퍼그나 운치가 있어 보였었다.

그런데 우리 집 형편에 마선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겉에다 천을 붙여 기워 입으려니 나는 기운바지를 입고 산다는 것을 아무런 구애도 없이 온 동네에 자랑을 하는 것같아 그것은 질색이였다. 손바느질로 누비는 수밖에 없었다. 실 뜸이 바늘귀만큼 작아야 할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매져야 누빈 효과가 나올 수 있었다. 이런 누빈효과가 열댓살 어린 내손에서 나올리가 만무했다. 누빈 줄도 비뚤거렸고 바늘 뜸을 맞추기도 어려웠다. 이렇게 누빈 바지는 처음 몇견지는 민망스런 모습을 보이더니 후에 두 녀동생들 바지까지 내 손에 누벼입히면서 내 바늘질 솜씨가 일취월장하여 거의 마선으로 박은 효과를 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이런 나를 대견하다고 칭찬을 해주시였다. 한뜸 한뜸 생활을 ‘기워’간 나에게 세월은 남다른 선물을 남겨놓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이 생긴데다가 남편까지 효익이 좋은 단위에 자리를 잡다보니 연두빛 털실세타를 동경하면서 마음속에 남았던 옷에 대한 콤플렉스를 해소할 길이 대번에 열리게 되였다. 휴일이면 옷가게에 갈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빈손으로 돌아온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인젠 연두빛 세타가 문제가 아니였다. 세타만 해도 연두 빛을 입고 보면 또 정중한 까만 색상도 좋아보이고 그런가하면 또 기분 좋은 자주 빛도 눈을 끌었다. 원단으로 보아도 실크 원피스는 가볍고 고상해보여서 잡게 되고 합성섬유는 종류에 따라 탄력이 좋아서 마음에 드는게 있는가 하면 축 내리 드리우는 무게감으로 나를 잡는 것도 있다. 코드만 해도 오리털을 넣은 건 가볍고 편해서 있어야 했고 라사천으로 된 건 장소에 맞춰 정중한 멋을 내니까 있어야 했다. 이렇게 옷 타령에 지칠 줄 모르는 나를 보면서 남편은 여러모로 조언을 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여서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했고 꼭 주의하겠노라고 결심도 했다.

하지만 시장에만 가면 결심 같은 건 어느새 구중천에 날아가 버린다. 이런 나를 그대로 보고만 있다간 큰 일을 낼 것 같았던지 남편은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저금통장 관리권을 박탈한것이다. 집의 재정결재권을 상실한 나는 우리 집에 도대체 돈이 얼마나 있는지가 늘 궁금했다. 그러다가 두번 집을 살 때 남편은 그 궁금증을 통쾌하게 풀어주면서 나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이렇게 내 옷을 ‘말리던’ 남편이지만 한꺼번에 옷을 여섯 견지나 사 준적이 있다.

몇년전에 남편은 근무분야에서 인정을 받아 미국 고찰단 일원으로 출장을 간적이 있었다. 돌아와서 려행가방을 풀 때보니 유명브랜드 아웃도어 같은 옷 세견지에 긴팔, 반팔 티셔츠와 적삼까지 옷을 한꾸레미나 내놓는 것이였다. 이 보다 더 큰 행복을 생각할 수 없을 것같다고 너스레를 떨어가며 나는 그 옷을 하나하나 입어보았다.

그런데 그중 세견지는 너무 작아서 억지로 겨우 입을 정도였다. 자기절로 알아서 사입는 안해이다보니 남편은 나의 옷 사이즈를 알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머지 세견지는 신통하게도 잘 맞았다. 영문을 물어보니 일행중 한 녀성이 신장이나 몸무게가 나와 비슷해 보이기에 그 녀자가 살 때면 따라서 똑 같은 것을 샀다는 것이였다. 또 옷이냐고 많이 빈정대기도 했지만 실은 그런 나를 이렇게 행동으로 포용해주는 남편이였던 것이다.

그날 나는 딸라를 주고 사온 옷을 절반밖에 건지지 못했지만 여느 때보다 더 많이 감사했고 행복했다.

월급만 받고 사는 나로서는 돈이란 요물이 영원히 모자라는 존재다. 아무리 옷에 대한 미련이 끝이 없어도 나는 종래로 내 수입 이상으로 옷에 대한 욕심을 부려 본적은 없다. 항상 뒤를 돌아보면서 옷에 대한 욕심을 하나하나 풀이해갔다.

요즘은 토우보(淘宝)를 비롯한 인터넷쇼핑몰이 하도 많아 일부러 시장으로 나서지 않아도 온 세상의 옷들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황금시대가 온 것 같다.

이전에는 휴일에 일부러 시장에 가야만 했던 옷쇼핑을 지금은 휴대폰 하나만으로 퇴근 후 집에서 소파에 누워서도 할 수 있어 나는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사냥감을 지목한 후 끝도 없이 많고 많은 가게를 쭉~ 돌아보며 이리 비기고 저리 비기면서 그 중 하나를 고른다. 면바로 사게 되면 똑 같은 옷을 매대에서 파는 것 보다 더 저렴하게 살 수 있어서 돈도 적게 쓰면서 수풀속에 묻혀있던 보배를 찾아낸듯한 성취감까지 맛 볼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된다.

나는 녀자다. 이제는 아무리 별의별 옷을 다 떨쳐입고 거리에 나서봤자 뒤 전이 썰렁한 그런 나이에 접어들었다.   

지금 내 옷은 내 기분이고 내 추억이 머물러 있는 무대이다. 중학교동창회 때는 “연두빛색의 털실세타”를 기념하여 나는 진한 초록색의 실크원피스를 일부러 사 입었다. 그 원피스를 입고 당년에 “연두색 털실세타”들과 잔을 부딪치면서 나는 감구지회에 젖었다.

지난 여름 직장에서 산보를 갔을 때도 나는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새로 만든 치포를 빌려다가 맴버들에게 입히고 춤을 추게 했다. 예닐곱 맴버 모두가 나또래였는데 청자무늬의 치포를 입고 무대에 나서는 순간 온 장내에서 찬사를 보내왔다. 그 옷 덕분이였다.

우리 엄마는 팔순이 눈앞에 보이고 등이 휘고 다리가 아파 잘 걷지도 못하지만 옷에 대한 집착은 변함없다.

전에 내가 길림에서 괜찮은 옷을 사다주면 한족티가 난다고 썩 달가와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다 연변에 가게 되면 시장에 옷사러 갈가요 하면 언제 다리가 아팠나 싶게 나먼저 집에서 나서는 엄마다. 시장에서 어느 옷이 마음에 드는가고 물어보기 바쁘게 인차 쫑드르르 어느 매대앞에 가서 손으로 옷을 가르킨다. 언녕부터 봐두고 있다가 자식들이 사주기를 기다린 것 같다.

길림에 온지도 어느덧 30년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어릴 적에 비하면 사고 싶은 옷도 거진 다 사입으면서 항상 만족하며 산다. 만족하며 사는 인생도 즐거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를 가꾸며 녀자로서의 예쁜 삶을 영위해나가면서 삶의 의미지를 더 살찌우고 인생의 길을 더 이쁘게 장식해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며 남한테 적당히 도움을 주면서 나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어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항상 옷이 모자라는 녀자다. 이쁜 옷을 마음껏 입어보지 못한 것이 나한텐 영원한 콤플렉스이다. 생활형편이 많이 좋아진 지금은 옷을 너무 많이 사들인 탓에 옷궤가 모자랄 지경이다. 그래서 근년에 집을 살 때 특별히 드레스룸(衣帽间)이 달린 집으로 선택했다. 물론 드레스룸에는 몽땅 내 옷뿐이다. 요즘에는 그것도 모자라서 큼직한 간이 옷궤를 더 사들여놓았다.

오늘도 옷궤마다 옷이 넘쳐나는 나에게 자그마한 근심거리가 있다. 래일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 또 새 옷 사야 할 것 아닌가? / 김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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