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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14] 뜻밖에 받은 소포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7-18 20:22:19 ] 클릭: [ ]

나의 고향은 연변의 한모퉁이,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한면이 두만강이 흐르는 궁벽한 산골ㅡ 하마래라는 곳이다.

우리 마을은 모래땅이고 돌밭이여서 농사는 언제나 흉년이였다. 이런 곳에서 우리 부모는 칠남매를 키웠다. 나는 칠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여났다. 서발막대 거칠 것 없는 가난한 살림이여서 우리 부모는 자식들을 공부시킬 엄두를 못냈다.

 

필자(앉아있는 분) 78세 생일을 맞으며

1939년도에 태여난 나는 어릴 때 기억이라면 어머니가 짜서 만든 베옷에 아버지가 만들어준 짚신을 신고 마을에서 5리나 떨어진 부유소학교로 다녔다. 점심도 못 먹고 배를 쫄쫄 곯으며 학교에 다녔다. 겨울철에 어머니는 70여리나 되는 평두산에 가서 삯물레를 자아 언감자를 얻어다 생계를 유지하였다.

10여살 되여 세상물정을 좀 알게 된 나의 머리 속에는 꼭 공부를 잘하여 대학에 가 이 산골을 떠나야겠다는 꿈을 키우게 되였다. 나는 열심히 공부하였다. 소학교 졸업학년 때에는 학생회 주석으로 당선되였고 우등생으로 졸업하였다.

부모들은 내 우로 소학교를 졸업한 누나는 무조건 농사일을 시키고 나보고는 중학교에 다니라 하였다. 나는 시험 보고 우수한 성적으로 우리 집과 30여리나 떨어진 연길현6중 (삼합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우리 반은 50여명 학생으로 된 남녀 혼합반이였다. 학급 담임선생님은 허명윤선생님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반장이란 책임을 맡겼고 나는 열심히 공부하면서 담임선생님을 도와 학급의 조직기률성을 높이기에 노력하였다. 1학년 하학기가 될 때 부모님들은 내가 주숙하던 하숙집에 매달 대주던 좁쌀 네말(한 말 지금의 열근)을 대주지 못하겠으니 초평으로 시집 간 큰누나네 집에서 다니라고 했다. 그 때 집에서는 두말의 쌀을 누나네 집에 보내주었다.

누나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15리였다. 나는 통학길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약 두달 후였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집에서 전해왔다. 두말의 쌀도 대주지 못하겠으니 집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였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눈물을 쏟으며 담임선생님과 정든 동학들과 작별하였다.

집에 돌아와서 호미를 쥐고 사래 긴 조밭기음을 매느라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래 내 꿈을 이 척박한 모래땅에 파묻어버린단 말인가?! 학교를 떠나 약 한달간 집에서 심각한 고민에 잠겨있을 때 나한테 생각지도 못한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 집에 웬 소포가 날아왔다! 소포를 헤치고 보니 허명윤선생님과 우리 반 50여명 동학들이 나에게 보낸 편지였다. 나는 부모님 앞에서 이 편지들을 읽었다. 담임선생님의 편지내용은 이러했다.

“동원동무의 가정형편이 곤난한 상황을 상급 관련 부문에 반영했더니 매달 국가조학

금 10원씩 보조해주기로 했습니다. 속히 학교에 돌아와 학습을 견지하기 바랍니다.”

동학들의 편지는 “보고 싶다. 곤난을 극복하고 우리와 같이 공부를 계속하자. 네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이다. 소포를 받던 해가 1954년도였다.

나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방울방울 쏟아졌다! 어머니는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으시고 눈물이 무엇 인지도 모르고 무뚝뚝하던 아버지의 눈에서도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당과 나라는 나를 한품에 안아주고 구원의 손길을 보내주었다. 허명윤선생님과 50여명 동학들도 나에게 우정의 손길을 보내주었다.

아버지는 “모두들 이렇게 발벗고 나서 도와주는데 부모로 되여 어찌 가만히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머니와 같이 서둘러 학교 부근에 세집을 잡았다. 어머니는 아예 나의 뒤바라지를 해주셨다. 추운 겨울에는 눈길을 헤치고 싸리나무를 해다 광주리를 틀어 팔았고 가을 뒤끝에는 들에 나가 이삭을 줏고 배추떡잎을 주어 세때를 끓여주었다.

나는 열심히 공부하여 우등생으로 2학년에 진급했고 련속 3년 우등하여 3호학생으로 되였다.

나는 당과 국가, 선생님과 동학, 부모덕에 전문대를 졸업하고 1959년도에 영길현9중에 배치받았다. 학생들에게 조선어문, 력사 등을 가르치다가 40년 교직을 쌓고 퇴직하였다.

지금 내 나이 80세이다. ‘뜻밖에 받은 소포’는 긴긴 내 인생 길을 비쳐주었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나의 여생의 밝은 등대로 될 것이다. /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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