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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105]하향지식청년들 연변의‘진달래’ 상해에 활짝 꽃피웠다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7-29 13:42:28 ] 클릭: [ ]

-번숙근이 세운 상해지식청년진달래무용단 조선족문화예술의 전파자로

상해지식청년진달래무용단의 성원들

두터운 민족문화감정을 잊지 못해

저절로 어깨춤이 흘러나오는 흥겨운 가락과 함께 신들린 듯 우아하고 절주감이 넘치는 춤사위, 거기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대복장에까지 눈길을 빼앗기다보면 저도 몰래 엄지손가락을 내밀게 되는 것이 바로 중국조선족무용이다.

조선족무용에 대한 사랑과 매력에 빠져들어 무용단체까지 만들고 15년째 조선족무용으로 멋진 제2의 로후인생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번숙근(樊淑芹)단장을 비롯한 상해지식청년진달래무용단의 32명 성원들이다.

이들이 표현한 광장무용 《새 아리랑》과 무용 《장고야 울려라》는 아름다운 음악선률과 률동적인 춤자태로 상해시민들의 절찬과 박수갈채를 받았으며 발레무 《백모녀》의 연기자이며 저명한 국가1급 배우인 석종금으로부터 “이들은 가장 훌륭한 무용팀”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기까지 했다.

조선족무용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상해지식청년들

평균 년령이 65세, 조선족이 아닌 이들이 조선족무용에 이토록 빠져들게 된 것은 무엇때문일가? 알고 보니 조선족무용의 우수성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젊은 시절 하향지식청년으로 연변에 내려오면서 조선족인민군중들과 함께 생활하고 사업하면서 맺은 두터운 민족문화감정을 잊지 못해서였다.

번숙근과 상해지식청년진달래무용단

상해지식청년진달래무용단을 소개하자면 단장인 번숙근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1969년 3월, 번숙근은 상해에서 훈춘현 밀강공사에 하향지식청년으로 내려오게 되였다. 어려서부터 무용을 애착했던 번숙근은 연변에서 하향지식청년으로 있을 때 조선족 춤노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선족군중들은 로동의 여가거나 명절이 오면 가무를 즐기군 했는데 어떤 때는 지식청년들도 함께 끼여 춤추고 노래하면서 조선족문화예술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리곤 했다. 그때 번숙근은 조선족들이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는 민족이라는 인상을 깊이 받았으며 조선족의 우수한 문화예술재능에 대해 직접 몸으로 느끼고 익혀나가게 되였다.

상해지식청년진달래무용단 번숙근단장

번숙근은 1972년도에 연변한어사범학교에서 공부했고 그후 돈화시 대석두림업국 제2중학교에서 교원사업에 종사했다. 무용을 잘했던 그는 대석두림업국 문공단에 갈 기회도 있었으나 여러가지 원인으로 결국에는 가지 못하게 되였다. 대석두에서 교원사업을 하는 기간 그는 교육계통운동회 단체체조시합에서 학생들을 지도하여 항상 1등상을 따내군 했다.

1978년도에 그는 길림화학섬유공장 자녀중학교에 전근했다가 1985년도에 남편과 함께 강소성의 한 화학총공사에 전근되여 사업했으며 1997년도에 남편과 함께 상해로 돌아가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4년 훈춘하향지식청년친목회가 상해에서 설립되게 되였다. 하향지식청년들이 함께 모여 교류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면서 번숙근은 조선민족가무를 위주로 하는 무용팀을 만들 구상을 무르익히게 되였다. 조선족무용과 노래를 통해 지식청년들의 마음의 소리를 서로 찾고 회포를 나눈다는 취지에서였다.

초창기 곤난과 어려움을 하나둘 극복하면서

무용팀이 제일 처음 세워졌을 때는 겨우 13명밖에 없었다. 무용팀의 설립목적은 매우 좋았으나 막상 시작하려고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연습장소와 경비, 공연복장 등이 가장 큰 문제였고 팀원들이 가정에서 이런저런 사유로 몸을 뺄 수 없어 한데 모여 련습하기도 어려웠다.

2004년도 처음 무용련습을 할 때는 훈련장소가 없다보니 공원에 가서 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8시간이나 되는 연습이 이어졌고 점심도 라면으로 간단히 에때우면서 훈련에 몰두했다. 팀원들이 상해시 여러 지역에 널려있다 보니 연습장소인 공원에 모이자면 모두들 한두번씩 공공뻐스를 갈아타야 했으며 적어도 1시간이상씩 차를 타야했다. 그렇다고 누가 점심을 사주고 교통비를 대주는 것도 아니였다. 그들은 오로지 조선족무용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불평불만을 모르고 훈련에 열중했다.

그들의 이같은 진지함과 열정은 주위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한 지식청년의 도움으로 이들은 회해가두와 평량가두의 활동실을 리용하게 됨으로써 마침내 로천공원에서 활동해야 했던 불편과 어려움을 덜 수 있게 되였다.

조선족무용 물동이춤

가장 어려운 것은 공연복장이 없는 것이였다. 부득이 얼마 안 되는 경비에서 복장을 세맡아 입었는데 지출이 적지 않았다. 이들의 열정에 감동된 상해지식청년 주효하 부부(부인 훈춘 조선족)가 2005년도에 12벌의 조선족공연복장과 상모 2개를 지원했는데 이것이 이들 무용팀의 초기 재산의 전부였다.

조선족무용을 출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번숙근(왼쪽)

부족되는 공연복장마련을 위해 무용팀성원들은 자체로 천과 재료들을 사서 무대복장을 만들었다. 너도나도 서슴치 않고 호주머니를 털었고 이처럼 힘을 합치니 어려움도 하나둘 풀어나갈 수 있었다. 회원들의 노력으로 조선족옷 32벌, 만족옷 16벌, 따이족옷 12벌, ‘조화중국’무용복 12벌, 무용치마 12벌, 상모 8개 등 많은 복장과 도구를 자체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절약한 비용이 10여만원이나 되였다.

상해시 관중의 인정을 받은 조선족 춤노래

상해지식청년진달래무용단이 소문을 놓기 시작한 것은 2013년 3월부터 6월초 사이에 펼쳐졌던 제1회 상해시민문화절 무용시합에서부터였다.

번숙근과 그의 무용팀은 뛰여난 연기로 예선과 선발경기는 물론 6월2일에 펼쳐질 결승전자격까지 따냈다. 진달래무용단의 우아한 춤자태와 아름다운 선률, 화려한 무대복장은 관중들을 매혹시켰으며 평심원들의 찬탄을 자아냈다. 상해지식청년진달래무용단은 시합에 참가한 6200개 팀 가운데서 일약 돋보였는데 “년도 100개 최우수무용단”의 영예를 받아 안았으며 전문가와 평심원들의 추천으로 순조롭게 20강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상해텔레비죤방송국에서 거행한 시상식야회에 참가해 표현하는 행운을 지니게 되였으며 “최우수 시각상”의 영예까지 받아 안게 되였다. 영예앞에서 무용단 성원들은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고생과 어려움들을 용케도 극복하고 이겨내면서 얻은 승리의 무한한 희열감 때문이였다.

제1회 상해시민문화절 무용시합에 참가하고

기쁜 일은 더 있었다. 경기후 번숙근과 무용단은 오지리 윈의 유명한 “황금홀” 년말공연요청까지 받았다. 무용단 성원들의 노력이 세계예술계의 긍정까지 받았다는 자부심에 무용단 성원들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러나 경비원인으로 “황금홀” 년말공연요청에 응하지 못하게 된 일이 지금껏 유감으로 남는다.

진달래무용단성원들이 표현한 물동이춤

2013년 9월25일 진달래무용단은 상해시중로년건강무시합에 참가하게 되였다. 시합에는 상해시 각 지역들에서 출마한 100여개의 탄탄한 실력팀들이 대거 참가했는데 경쟁이 매우 치렬했다. 진달래무용단은 팀의 선명한 조선민족무용특색을 살리면서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공연을 성공에로 이끌었는데 대망의 금상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시합이 끝나자마자 상해시중로년건강무시합 조직위원회 총감독이 직접 찾아와 이들 진달래무용단을 2014년상해시예술제 공연에 정식 요청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상해지식청년진달래무용단은 150차에 달하는 공연을 진행하였는데 직접적인 관객수가 연인수로 7만5000차에 달한다. 그동안 무용단이 받아 안은 영예도 풍성한데 2008년도에 로만구무용시합 우수상, 2009년도에 안휘성인민방송국의 무용우수상 3개, 2011년도에는 사회구역2급단체로 평의되였으며 2012년에는 황포구 로년대학 1급단체, 2013년에는 상해시예술제 시민무용시합 20대 강팀에 듬과 동시에 최우수시각상을 받았으며 2013년에는 상해시중로년건강무시합에서 1등상을 받아 안았다. 2009년 지식청년하향 40돐 그리고 201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 기념행사때에도 이들은 하향지식청년으로 내려왔던 제2고향 연변을 못 잊어 훈춘시에 찾아와 무대공연을 펼쳐 크게 환영을 받았다.

상해무대에서 제2고향 연변의 민족문화예술을 널리 전파할 터

진달래무용단의 인기비결에 대해 번숙근은 “무용단원들의 지식청년정분이 우리 모두를 하나로 이어놓았다.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조선족의 민족특색, 그리고 단원들의 한결같은 애착과 지향이 우리 모두를 다년간 부단히 분발향상하게끔 밀어준 동력”이라고 말했다.

“진달래무용단의 무용은 조선족의 민족풍격을 뚜렷이 살리면서 제2고향에 연변에 대한 상해 로지식청년들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정감을 노래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무용단의 초심이자 귀착점”이라면서 번숙근은 “앞으로도 진달래무용단은 상해의 무대에서 제2고향 연변의 민족문화예술을 널리 전파하고 그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아낌없이 노력할 것이다.”고 미래결의를 피력했다.

201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을 맞으면서 훈춘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오는 8월 2일, 번숙근단장을 비롯한 30여명 진달래무용단의 성원들이 다시금 하향지식청년으로 내려왔던 "두번째 고향" 훈춘을 찾아오게 된다. "상해지식청년 훈춘하향 50돐"과 "상해지식청년진달래무용단설립 15돐"을 맞으면서 펼쳐지는 "환고향련환문예야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이다. 이 공연에서 상해지식청년 진달래무용단은 훈춘시문화관과 함께 조선족무용 "물동이춤"을 비롯한 18가지나 되는 문예종목들을 두번째 고향인민들에게 선물하게 된다.

뜻깊은 사연과 인연으로 맺어지고 이어져온 훈춘과 상해 두 지역간 사람들의 따뜻한 민족적 정분과 사랑, 번숙근단장을 비롯한 진달래무용단은 ‘제2고향’ 연변의‘진달래’를 상해에 씨뿌리고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치웠으며 아름답게 꽃피워 가고있다.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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