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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46] 계몽스승 (박영옥편3)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6-19 16:37:14 ] 클릭: [ ]

필자 박영옥 
이듬해 나는 아홉살에 소학교 1학년에 붙었다.집과 2키로메터의 거리를 둔 학교인지라 1학년 때는 매일이다 싶이 줄곧 부모님과 선생님 등에 업혀 다니면서 공부했다.

오른쪽 발뒤축이 땅에 내려닿지 못해서 겨울에는 그래도 신끈이 달린 솜신이여서 끈을 꾹 매면 뒤축이 내려오지 않는데 봄부터 가을까지는 신을 신을 때면 신뒤축이 자꾸 떨어져서 노끈으로 신과 발을 동여야 했다.

어느 한번은 한 장난꾸러기 남자애가 발에 동여있는 노끈을 확 잡아당기더니 밖에 버렸다. 신이 벗겨져서 걸을 수 없게 되자 나는 아예 신을 손에 쥐고 맨발로 밖에 나가서 그 노끈을 주었다. 삐뚤게 생긴 발가락을 본 애들이 모두 눈이 휘둥그래졌다.그 날 그 애가 선생님에게 꾸지람 받게 된 건 당연한 일이다.

애들의 놀림 속에서 그래도 공부만은 잘해 반년 만에 소선대원에 가입했다. 그 때 소선대원 가입은 열살부터였는데 아홉살인 나한테 푸른등을 켜준셈이다. 공부를 잘한 것도 있겠지만 신체적 장애에 대한 격려였으리라.

다리가 너무 엄중한 장애다 보니 나는 친구들이 마당에서 맘껏 뛰여놀 때면 부러운 눈매로 바라보았고 때론 자기 다리를 바라보며 눈물도 흘렸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다리가 고쳐진다는 끝없는 동경이 생겼다. 무수한 기다림도 가져 보았다.

동경을 잃고 향기를 도적 맞힌 나의 동년에도 어느 땐가는 한갈래의 빛이 찾아들거라는 그런 기다림이 있었다.

아버지가 그 어려운 생활 형편에서도 나에게 많은 책을 사주셨다. 처음에는 책에 취미가 없었는데 하학 후면 애들이 노는 줄뛰기나 돌차기 등 여러가지 많은 놀음에서 애들은 나와 짝 뭇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나는 자기의 아픈 마음을 책을 탐독하는 것으로 달래고 또 달랬다.

내가 소학교에 입학했을 때 우리 집 식구는 여섯명이였다. 아버지 혼자의 낮은 월급으로 매우 어렵게 살아가는 형편이였지만 아버지는 어디에 용한 의사가 있다면 인차 돈을 꿔서 치료시켰다. 그래서 월급 타는 날에 빚을 다 물고 나면 쌀 살 돈도 없어서 또다시 단위에서 꿔서 사는 형편이였지만 아버진 늘 나한테 미소를 보여주었고 많은 서적들을 사주셨다

《춘향전》, 《홍길동전》, 《붉은 바위》, 《박씨 부인전》, 《순천에서 발견된 수첩》 등…

우리 집에는 책이 점점 불어났다. 18평방메터 되는 집에 책을 놓기가 비좁아서 아버지는 집앞에다 자그마한 창고를 짓고는 그 창고에 책을 두었다.

“아이구, 기가 막혀요. 쌀 살 돈도 없는데 왜서 자꾸 책만 사는가요? 책에서 돈이 나와요? 쌀이 나와요?”

어머니의 불만에 아버진 “이제 책에서 돈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올지 누가 아오?”라고 대답하셨다.

처음에 나는 책에 취미가 없었는데 아버지께서 책 읽으실 때면 나에게도 책을 건네주시면서 어서 읽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책에는 수많은 지혜가 있었고 수많은 도리가 있었고 세상의 모든 것이 적혀있었다. 참 재미 있었다. 후에는 책을 볼라치면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60년대는 석유 등잔불을 켜고 살 때라 나는 어두운 등잔불 밑에서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집이 구차하여 석유도 흔하게 못 쓰는 년대였지만 아버지는 내가 책만 읽는다면 돈을 꿔서라도 석유를 사들였다.

아버진 엄마처럼 잔잔한 사랑을 표현하시지는 않았지만 가슴 속에는 파도처럼 세차고 산처럼 거대하고 묵직한 사랑이 묻혀있었다.

바로 아버지의 계몽으로 나는 책을 알았고 인생의 참된 도리를 알았고 집채 같은 파도 속에서도 밀리지 않고 꿋꿋이 버티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소학교 2학년부터 작문을 잘 써서 선생님들을 놀래웠고 내가 쓴 작문이 쩍하면 학교 중앙 복도에 나붙어 있었다.

그 때 내가 사는 금광촌은 우리 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농사일로 살아 갔는데 우리 집은 마을의 ‘도서관’으로 불리웠다. 누구나 책만 보고 싶으면 우리 집에 와서 빌려 갔는데 아버지는 쾌히 빌려주시긴 하였지만 늘 이런 부탁을 하군 하였다.

“책을 돌려올 때 어지러워지면 안되니까 꼭 깨끗하게 봐야 해.”

그러나 여러 손에서 돌고 돌다가 되돌아온 책들은 헐망해지군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마음 아파하시며 주름 간 페지를 정히 펴고 떨어진 곳은 다시 풀로 붙이셨다. 아버지께서는 책을 보물처럼 여기셨다.

책을 많이 보시는 아버지에게는 이야기가 샘물처럼 파고파도 자꾸만 솟아 나왔다. 그래서 저녁이면 나는 아버지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듣다가 잠들 때가 많았다. 한창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세상을 보면서 아름다운 감성을 느낄 나이에 아버지의 이야기들은 나를 또 다른 세계를 알게 하였다.

열살 때의 어느 날 저녁 녘에 나는 동갑내기 송월이, 철옥이와 함께 도랑에서 물장난을 하다가 건너켠 생산대 남새밭에 눈길이 멎었다. 거기에는 새빨간 도마도들이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얘들아 우리 저 도마도를 따먹자.”

내가 먼저 이렇게 웨쳤다.

우리 셋은 제꺽 도마도밭을 지키는 아바이가 소변 보러 간 틈을 타 감자밭을 지나 도마도밭에까지 접근하였다. 나는 재빨리 제일 큰것으로 다섯개나 따서 앞 옷섶에 감쌌다.

“요 계집애들 어 디 맞아봐라”

별안간 그 아바이가 막대기를 휘두르며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우리 셋은 걸음아 날 살려라는 식으로 죽기내기로 뛰기 시작했다. 그 때 다리가 장애인 나는 물론 달릴수 없었다. 송월이와 철옥이는 내 앞에서 달렸다.

나는 막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행여나 하고 최대의 노력을 다 해서 뛰였다. 그런데 우리를 쫓아오던 그 아바이는 내 곁을 지나 앞에서 달리는 철옥이를 잡는 게 아니겠는가?

철옥이는 울상이 된 채로 도마도를 몽땅 빼앗겼다. 몰론 송월이도 면치 못했는데 그 애들은 매는 맞지 않았지만 된욕을 먹은 후 밭에서 쫓기워갔다. 나도 인제 그 애들의 신세를 면치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겁이 더럭 났다. 그래서 머리를 수그리고 멍하니 서있었다.

조금 후 그 아바이가 밭고랑으로 되돌아올 때 나는 겁기 어린 눈으로 도마도를 꺼냈는데 그 아바이는 아직도 분이 내려가지 않는지 씩씩대며 이렇게 말했다.

“넌 도마도를 가지고 어서 집에 가거라”

“?...”

“너 다시는 이렇게 훔치면 안돼! 알았지?”

그 아바이의 목소리는 퍼그나 온화했다

그 날 저녁 나는 훔쳐온 도마도를 먹으며 낮에 있었던 일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오늘 다른 애들은 훔친 도마도를 모두 빼앗겼지만 내 것은 그 아바이가 빼앗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집에 가져가라고 했어요. 날 생각해주는 그 아바이가 참 좋아요.”

나의 말에 아버지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시더니 “그 아바이가 널 해쳤구나”하고 혼자말로 중얼거리더니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시는 것이였다.

“이전에 천식이라는 한 아이가 있었는데 태여날 때부터 한쪽 발이 기형이였단다. 그래서 온 집식구들은 물론이고 동네에서도 그 애를 모두 불쌍하게 여겼지.

어느 한번 그 애가 뒤집에 갔다가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시렁 우에 놓인 옥수수떡 세개를 훔쳤단다. 그 애의 어머니가 몇마디 꾸짖자 욕을 모르고 자라온 천식이는 마구 울었단다.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온 뒤집 아주머니는 천식이가 울게 된 사연을 알고는 ‘불쌍한 애를 왜 욕하오? 그까짓 몇개 밖에 안되는 옥수수떡을 가지고 이게 뭐요?’하면서 두둔해나섰단다. 그러자 천식이도 ‘봐요. 도적맞힌 임자도 아무 말이 없는데 어머니는 왜 이래요? 이후 다시는 날 욕하지 말아요.’ 하고 제쪽에서 도리여 큰소리를 치더란다. 그 애 어머니는 아들이 정말 불쌍한지라 더 말하지 않았단다. 결국 장애자라고 동정만 했더니 천식이는 ‘내가 장애자이니까 누구도 감히 날 어쩌지 못해’하는 심리가 자라게 되였단다. 그 후 그 아이는 뭐나 보는 대로 훔쳤기에 나중에는 감옥에 들어가고 말았단다…”

이튿날 아버지는 날 데리고 그 아바이를 찾아 가셨다.

“어제 훔친 도마도 값을 가져 왔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돈을 건넸다. 그러자 그 아바이가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불쌍한 애가 좀 먹겠다는데 무슨 돈이요?”

“우리 딸애를 사랑해주는 그 마음은 고맙지만 자칫하면 애를 해치게 될가봐 걱정입니다. 오늘 꼭 이 돈을 받으십시오.”

그 아바이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돈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난 속으로 아버지를 이렇게 원망했다.

‘그까짓 도마도 값이 얼마 된다고?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성의를 조금도 몰라.그리고 욕심도 너무 없어...’

집으로 돌아올 때 한자나 나온 내 입을 바라보시던 아버지는 이렇게 타일렀다. “불쌍하다고 제멋대로 놔두면 이후 좋은 사람 못 되는 거다. 이럴수록 더욱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단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지만 차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아버지의 그 때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진 나한테 정직하고 리기적이 아닌 인간이 되도록, 내 삶이 비뚤어지지 않도록 가르쳐주셨다.

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또한 특별히 자상하셨다.

어느 한번 철 모르는 셋째 녀동생이 나의 팔목처럼 가는 오른쪽 다리를 보더니 마구 웃어댔다.

그 때 옆에 있던 아버지가 버럭 성을 냈다.

“너 언니가 병 때문에 그런 건데 다시 말해봐라. 가만두지 않겠다.”

아버지는 마음이 유순하기로 소문 있는 분이였다. 그 날 처음으로 분이 치밀어오른 아버지를 보고 우리 형제들은 모두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버지는 내 인생의 훌륭한 멘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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