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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47] 아버지의 묵직한 사랑(박영옥편4)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6-19 16:50:53 ] 클릭: [ ]

1990년 아버지께서 중풍에 걸려 제대로 운신 못하게 되였다. 나는 온갖 정성을 다해 치료시켜 드리느라 애썼지만 아버지의 병은 날로 더해갔다.

“아버지, 아직도 몇십년은 더 앉으셔야 하는데요…제가 정말 아버지를 많이 지치게 했어요.”

필자 박영옥

나는 눈물부터 나와서 더 말할 수 없었다. 마치 내가 아버지를 너무도 힘들게 굴어서 아버지가 너무 일찍 병에 드신 것 같은 죄책감이 앞섰다. 그렇다. 난 확실히 아버지를 너무 지치게 했다. 나의 직장 해결을 위해서 아버지는 향정부와 현정부를 문턱이 다슬도록 다니셨다. 때론 일부 간부들이 틀거지를 차리면서 아버지에게 언성을 높였고 자꾸 찾아온다고 짜증도 부렸고 얼려 넘기기도 했다. 번마다 시원한 대답도 못 듣고 도리여 스트레스만 가득 받고 정부의 문을 나섰을 아버지의 그 괴로운 마음을 상상 만해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내 다리를 치료하겠다고 어디에 용한 의사가 있다면 번마다 아버지가 날 데리고 다니셨다. 연변의 방방곡곡으로 다 다녔는데 그 돈, 그 걸음은 계산할 수 없을 만큼 아름찼다.

내가 스물두살 때 아버지는 하북촌에 아주 용한 중의가 있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하북촌은 향소재지와 15리 가량 떨어진 산골마을이여서 그곳에 다니는 차도 없고 해서 아버지는 단위 자전거를 빌렸다. 내가 병 보고 집에 올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웠다. 그런데 갑자기 자전거가 고장 나서 탈 수 없었다. 집까지 가려면 아직도 5리 길은 더 가야 했다. 그 때 아버지는 그 자전거를 끌고 단위에 가서 다시 다른 자전거를 가지고 오겠으니 나더러 선 자리에서 꼼짝 말고 있으라는 것이였다.

길 량쪽에는 시커먼 나무들이 가득 서있고 이따금 지나가는 차가 있을 뿐 오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나는 몸이 아픈 탓으로 귀찮아서인지 별로 무서운줄도 몰랐다.

이윽고 아버지가 다른 자전거를 타고 부랴부랴 달려왔다. 자전거에서 내린 아버지는 무작정 날 껴안으셨다.

“후 ㅡ네가 무사하구나. 이런 곳에 널 두고 가는 내가 제 정신이 아니지.”

아버지의 옷은 흠뻑 젖었고 얼굴에서는 땀이 비물처럼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평소에 말수가 아주 적은 편이였다. 나의 글들이 신문에 실렸을 때마다 엄마는 막 흥분했지만 아버지의 얼굴색은 언제나 평온했다.

“네 글이 신문에 실렸구나.”

어조도 이렇게 담담했다. 그러나 밖에 나가면 아버지는 친구들 앞에서 자랑을 많이 하셨다.

“이보게, 내 딸 하나 잘 두었소. 글을 척척 써내는 게 내 제일 큰 자랑거리란 말이요.”

내가 결혼하자 처음에 아버지는 농민사위의 농사일을 열심히 도와 나섰다. 모내기로부터 기음 매기, 가을이면 곡식을 걷어 들이기까지. 그런데 후에 호구문제 때문에 늘 나하고 트집을 잡자 아버지는 어느 한번은 이렇게 언성을 높였다.

“빈손으로 우리 딸을 만나서 우리가 집도 해결해 주었고 손바닥 만한 땅을 부치지만 우리가 절반 넘게 해주는데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내 딸을 구박해? 사람이 너무 경우시비가 없는 거구만.”

평생 선비로 불리 온 아버지가 이렇게 사위를 호되게 꾸짖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때 뿐이지 그냥 농사일을 도와 나섰다. 씨뿌리기로부터 시작하면 가을걷이까지 말없이 도와주었다. 이렇게 도와주면 사위가 감동을 받아 딸을 더 사랑해주려니 생각한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남자는 가을에 거둔 곡식에서 조금이라도 처가집에 주는걸 꺼려했다. 아버지 힘으로 농사를 짓고도 이렇게 처사하는 인간이 이 세상에 더 있을가?

이 일 때문에 우리 부부간에 시비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는 아주 평온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실 뿐이였다.

“그런 사소한 일로 부부간에 금이 가면 안돼. 부부란 남남이 만나서 사는 건데 어찌 내 마음과 똑 같겠느냐? 그 사람이 욕심쟁이여서 그런거야.”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몸이 부서져도 달갑게 여기셨다.

이렇게 아버지는 언제나 차례진 일 앞에서는 열심히 그리고 불공평함에도 불평없이, 그 어떤 분규 앞에서도 조용히 묵인하는 인생을 살아 오셨다.

1991년 10월 18일,아버지는 63세를 일기로 하늘나라에 가셨다. 장례식날 나는 가슴이 저미는듯 아팠고 후회도 많았다. 내가 왜 아버지를 고생 많이 시켰던가? 왜 효도도 제대로 못했던가? 아무리 땅을 치며 통곡해도 소용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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