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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55] 초불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8-26 14:48:34 ] 클릭: [ ]

올해 85세인 엄마는 신문과 책 보기를 무척 즐긴다.

해마다 《길림신문》, 《종합참고》, 《장백산》, 《연변녀성》 등 신문 잡지를 주문하여 구독하고 도서 대여증으로 여러 면의 좋은 책들을 수시로 빌려보고 있다.

근년엔 엄마는 다년간 간행물을 읽으면서 배운 많은 지식을 “인젠 나 혼자만이 아닌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며 한해에 한권씩 신문 스크랩을 만들고 있다.

필자의 어머니.

신문에서 읽은 가치 있는 건강 상식이며 음식 만들기며 생활의 지혜 등 다양한 내용을 가위로 오려낸 후 종류를 나누어 스크랩을 한 백과지식전서를 만들면서 “이 스크랩이 조금이라도 자식들과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면 보람이 있고 기쁘겠다.”고 말한다.

세월의 흔적이 남기고 간 엄마의 얼굴에는 굵직한 주름살이 박혀있지만 안경 쓰고 책을 보는 모습은 참말로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과도 같다.

원래 한어사범학교를 졸업한 엄마는 아버지를 따라 할빈병기공장에서 근무하다가 공장, 농촌에 내려가 단련해야 한다는 국가 정책에 따라 1962년에 안도현 중평촌으로 갔다.

빈곤한 농촌생활은 우리 가정에도 례외가 아니였다. 책 읽을 시간과 환경이 안되였다. 엄마는 차츰 엄마라는 가정주부의 책임감으로 자신의 취미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1980년 여름, 산악지대인 우리 고장에는 련속 7일 동안 주룩주룩 장대비가 내리더니 큰 홍수가 졌다. 어느 날, 수리공정을 책임진 아버지는 홍수방지지휘부에서 바삐 보내시다가 한밤중에 심근경색으로 현장에서 쓰러졌다. 항상 자기의 몸은 건강하다고만 여겨온 아버지는 연변병원 구급실에서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아버지가 제정신이 들어 눈을 뜨기까지의 사이에 엄마는 한순간도 눈을 부치지 못하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아버지의 병간호를 했다.

그 때로부터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일등 보호대상이였으며 슬픈 일, 속 타는 일이 있으면 항상 아버지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기쁜 일, 좋은 일은 뒤늦게 기회를 잡아서 아버지께 알려드리는 것이 우리 가족의 일관한 법칙이 되였고 엄마는 우리 가족에 닥쳐든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땅거미 질 때까지 벽돌공장, 건축현장, 선반 깎기 심지어 땡볕이 쨍쨍 내리비치는 무더운 한여름에도 산에 가서 벌초까지 했다. 그야말로 엄마는 돈벌이만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다했다.

어릴 때 내가 본 엄마는 항상 땀벌창이 된 옷, 그것도 뒤잔등엔 땀에 절어 구멍이 송송 난 속옷을 입고 있었으며 손과 발바닥이 갈라져 마치도 소나무 껍질을 방불케 하였다.

엄마는 자신의 무한한 희생과 노력으로 바꾸어온 돈과 아버지의 ‘병가월급'으로 자식들을 입히고 먹이고 학비를 내주면서 자신에게는 일전 한푼 쓰려 하지 않았으며 아무리 힘들어도 짜증 한번도 낸적이 없었으며 투정 한번도 쓴적이 없었고 원망소리 한마디도 한적이 없었다.

그런 엄마를 두고 내가 종종 엄마는 우리 가정의‘무명영웅'이라고 하면 엄마는 “아버지께서 이 가정을 잘 이끌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하게 산다”고 우리 앞에서 아버지를 내세웠다.

물론 아버지도 훌륭하고 자상한 분이지만 나의 기억 속에는 엄마가 이 가정을 위해 더 많이 고생하고 더 많이 힘들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우리 자식들의 학습도 매우 중시했다.

필자(왼쪽 첫번째)와 필자의 어머니, 딸 그리고 외손녀. 

당시 우리 고장은 자그마한 촌마을이라 도서관이 없었다. 가을 김장철이 되면 기차를 타고 로투구진에 가서 수요되는 김장감을 사왔다. 그 때면 엄마는 꼭 서점에 들려 내가 볼 책들을 골라 사오군 했다.

한번은 엄마가 알렉산드르의 장편소설 《몽떼그리스또백작》이란 명작 4권을 사들고 현성에서 공부하는 나를 모처럼 찾아왔다.

며칠전 어문시간에 선생님이 세계 명작 소개에서 이 책을 설명한 적이 있어 난 정말 보고 싶었지만 책값이 엄청난지라 감히 엄마와 말하지 못했다. 뜻밖에 보고 싶었던 책을 받아쥔 나는 너무나도 좋아 그 자리에서 퐁퐁 뛰면서 엄마 품에 안겼다. 정말 고맙고 또 고마왔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가슴이 막 흥분되고 기쁨을 감출 수 없다.

엄마는 자신이 굶더라도 자식한테 유익한 일이라면 서슴없이 희생하는 분이였다. 엄마는 자신을 잊고 살았다. 엄마는 자기의 인생이 없었다! 그저 자식들이 건강하고 자식들이 출세하면 대만족이고 대행복이였다.

지금도 엄마는 자식을 위하여 맛나는 음식도 하고 집 청소도 가끔 한다. 마치도 초불마냥 자기 몸을 불태우며 자식과 이 가정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 남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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