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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61] 모주석의 접견을 받던 나날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12-09 11:19:18 ] 클릭: [ ]

필자 조만선

금년에 나는 89세 고령이다. 나이가 많은 데다가 중풍을 맞아 운신하기 어려운 인생의 막바지에 있다. 자리에 누워 1964년 9월, 국경 15주년 경축 활동에 참가하고 모택동 등 중앙 지도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볼 때마다 설레이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다.

1952년 10월에 사업에 참가한 나는 료녕성 신빈현 왕청문구 공청단서기, 신빈현인민법원 서기원으로 사업하다가 1961년 6월에 위자욕공사 당위서기로 발령 받았다. 그 때 내 나이는 28세였다. 당시 위자욕공사는 현성에서 100리나 떨어진 편벽한 산골에 있었는데 전기도 없고 뻐스도 통하지 않았으며 여름이면 늘 장마가 져서 사원들의 식량도 장만하기 어려운 형편이였다.

갑자기 사업 발령을 받다보니 나는 사원들 집에서 먹고 자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해 8월 밤낮 사흘동안 폭우가 쏟아져 태자하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마을 북쪽 제방이 터질 것 같았다. 제방이 터지면 300여세대, 1,000여명에 달하는 사원들의 생명 안전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나는 공사 간부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6개조로 나누어 군중들을 안전지대로 대피시킨 후 곧바로 식량창고에서 근무하는 류주임을 찾았다. 창고의 밀가루로 터지려는 제방뚝을 막기 위해서였다. 류주임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상급의 허가 없이 국고의 식량에 손을 댈 수 없다고 딱 잡아 땠다. 나는 공산당원증을 내놓으면서 “모든 후과를 내가 책임 질테니 당장 창고 문을 여시오!” 라고 명령을 내렸다. 나는 교원들과 함께 폭우를 무릅쓰고 100포대의 밀가루를 날라다가 터지려는 제방을 막았다.

그 후 신빈현규률검사위원회 두성문 서기는 몸소 조사조를 거느리고 위자욕에 내려와 조사한 후 모든 련락이 끊긴 위험한 시간에 과단성 있는 조치로 인민의 생명안전을 확보하였다고 칭찬을 하면서 국고의 밀가루 100 포대를 허가 없이 손을 댄데 대해 아무런 책임도 추궁하지 않았다.

그 이듬해 농사차비를 하자니 사원들의 식량이 떨어지고 가축 사료가 부족하여 봄파종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나는 현장을 찾아가 가을에 꼭 갚겠다는 보증을 서고 2만여근의 쌀과 두병을 실어다가 공사 간부들과 함께 직접 사원들 집에 가져다주었다. 모철에는 또 30여명의 교원들을 데리고 사원들 집에서 먹고 자면서 모내기를 도와주었다. 나와 공사 간부들의 솔선수범은 농민들의 생산 적극성을 불러일으켜 그 해 위자욕공사 알곡 총 생산량은 원래의 380만근으로부터 450만근으로 불어났다. 이와 같이 나는 3년 동안 악전고투하여 안전 다수확을 거두는 한편 마을마다 전기를 가설하고 자체의 힘으로 현성으로 통하는 뻐스 길을 닦고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어 거류하를 다스렸다.

1964년 9월에 나는 영광스럽게도 전국 소수민족 청년대표단의 성원으로 북경에 가서 국경 15주년 경축 활동에 참가하고 인민대회당 연회에 초청되였으며 천안문광장, 민족문화궁도 참관하였다.

10월 5일은 내 일생에 있어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 아침, 우리 대표단 단장은 오후에 중요한 행사가 있으니 사람마다 민족 복장을 입고 몸단장을 깔끔히 하라고 했다. 오후 5시 15분, 인민대회당의 모든 조명이 일시에 밝아지면서 모주석을 비롯한 중앙 지도자들이 대청에 들어섰다. 순간 박수소리와 만세 소리가 온 대청에 울려퍼졌다. 나는 앞으로부터 3번째 줄에 서다보니 모주석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웅장한 체구에 환한 얼굴, 3,000여명 소수민족 대표들과 세계 각지에서 모여온 손님들에게 손을 저으시며 감사를 표하는 모주석의 모습을 보다보니 나도 몰래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다.

 
모주석 등 당중앙 지도자들의 접견 사진
 
"모주석이시여, 모주석! 당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중국이 있게 되였고 당신이 있었기에 나같은 고아들이 이런 영광을 지니게 되였습니다. 나는 영원히 당을 따라 사업을 잘하여 조국의 영예를 빛내여가겠습니다." 나는 자애로운 모주석의 얼굴을 바라보며 굳은 맹세를 다지고 또 다졌다.

올해는 벌써 건국 71주년이 되는 해이다. 나는 신빈현공안국 국장, 법원 원장, 공상국 국장으로 사업하던 그제날의 초심을 잊지 않고 오늘도 대련시 개발구조선족로인협회 고문으로 사업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육신을 통째로 불태우는 헌신정신으로 생명의 저 끝까지 숨이 붙어있는 한 나의 사업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조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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