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05-25 18: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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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을 만나며 세상을 연다. 이런 만남은 수 많은 일상의 평범한 만남도 있지만 의미있고 뜻깊은 일을 함께 하여 삶의 려정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소중한 만남도 있다. 이런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에서 귀한 인연이 싹트고 따뜻한 정이 꽃피고 이야기가 엮이고 추억이 남는 것이다.
김경자가수와의 만남이 바로 이와 같은 소중한 만남이다. 지난 1980년대 내가 가사를 쓰고 고창모 작곡가가 곡을 지은 〈돌다리〉를 불러 대중들이 즐겨 부르고 널리 사랑 받는 노래로 되게 하였으며 나에게 여러 작품평의에서 많은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그 첫 만남은 내가 연변방송국 음악편집부에서 근무하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980년대 초반은 전반 중국의 시대적 변화와 마찬가지로 우리 연변의 민족방송음악도 대변혁의 회오리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문화대혁명 결속 10년이 다가오면서 사회전반의 의식형태, 가치관념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심미의식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였다. 문화대혁명 10년 동안 지겹게 부르던 찬송가, 격정가요들이 외면되고 그 자리를 대체할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정서를 담은 가요들이 필요한 시기였다. 당시 중국대륙에는 벌써 향항 대만 노래(港台歌曲)가 흘러 넘쳐나고 있었고 우리 조선족대중들도 나긋나긋한 한국가요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생각해 낸 것이 연변식 류행가요를 만들어 내는 것이였다.
그때 내가 근무하던 연변인민방송국 음악편집실에는 주임으로 저명한 작곡가 동희철 선생님 이하에 당시 연변에서는 내노라 하는 작곡가들인 한병락, 황상룡, 고창모 등 재능 있는 작곡가들이 포진해 있었다. 우리는 ‘류행가 작품공모’로 이 난국을 정면돌파하기로 결정하고 대중들이 즐기는 다양한 선률의 가요작품을 만들어 방송에 내보내자고 결정하였다.
김경자 가수와 인연이 된 노래 〈돌다리〉에 깃든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노래는 악보로서의 작품도 중요하지만 어떤 가수가 어떻게 부르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고 하여도 가수가 훌륭하게 표현해 내지 못하면 나무아미타불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여 우리 편집부에서는 음악작품공모와 동시에 가수선발에 공력을 들였다. 마침 연변대학에 교내 무대는 물론이고 주변의 학교까지 휩쓸며 교정가요(校园歌曲)의 요정 ‘쏘청린'(小程琳)이란 별호로 인기몰이를 하는 녀대생이 있다는 소문을 확인하고 즉시 련락하였다. 김경자 가수는 이렇게 우리 앞에 나타났다. 마침 그때 새 작품을 들고 우리 편집부를 찾아왔던 한 작곡가가 자기 악보를 내밀며 록음하기를 요청하였다.
후다닥 편곡을 마치고 정식 록음에 들어갔다. 그리고 당시 모든 작곡가들과 가수들이 선망하는 방송프로그램인 ‘매주일가’로 이 노래를 방송하였다. 이 노래가 바로 김경자, 세 이름자를 청중들의 가슴에 새겨 넣은 류행가요 〈살구나무〉이다. 김경자 가수는 이어 〈산향길〉, 〈물소리 새소리〉 등 많은 가요를 련달아 히트시키며 음악방송무대에 굳건히 자리매김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인기몰이를 하며 떠오르는 가수이지만 그가 부르는 작품이 별로 신통치 않았다. 가수의 목소리는 좋은데 가사와 곡이 수준미달이였다. 한마디로 너무 촌티가 났다. 기획단계에서 우리가 바랐던 기존의 연변식 풍격을 탈피하고 새로운 느낌을 안겨주는 소위 ‘향항대만노래'(港台歌曲)식 교정가요(校园歌曲)를 만들려는 생각과 거리가 멀었다. 하여 이번에는 편집부에서 직접 팔을 걷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가 〈돌다리〉이다.
산간마을의 동구밖에 다리 하나가 놓였네
졸졸 흐르는 맑은 물은 다리아래로 흘러가네
산간마을의 동구밖에 다리 하나가 놓였네
지나가는 뻐스 타고 고향 멀리 떠나왔네
네온등 밝은 거리 거닐어도
산촌의 돌다리가 그립다네
지난 밤 꿈결에도 나는 보았네
어머니 서 계시던 돌다리를
산간마을의 동구밖에 다리 하나가 놓였네
졸졸 흐르는 맑은 물은 다리아래로 흐러가네
김경자가수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와 세밀한 감정표현을 겨냥해 작사에서부터 작곡, 편곡까지 맞춤형으로 제작된 이 노래는 대뜸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청소년학생들을 비롯한 어린 친구들이 즐겨 따라 불렀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이번에는 당시 연변예술학교 재학생들였던 현성해, 박연 두 친구를 불러 TV로 록화하여 방송하였다. 노래 〈돌다리〉는 이렇게 대중들이 사랑하고 여러 공연무대나 TV프로에 자주 등장하는 곡목으로 되였다.
그런데 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 이르러서 ‘김경자'라는 이름자가 보이지 않았다. 라지오, 텔레비에서 많은 청중과 시청자들이 바라고 듣고 싶은 목소리이지만 정작 본인이 나타나지 않으니 아쉽지만 할 수 없는 일이 되였다.
어릴 때 아빠곁에서 한국방송을 들으며 노래를 배우던 것처럼 록음기를 켜고 수 많은 엔카를 듣고 부르며 한구절 한구절 배워나갔다. 이 과정에서 연변의 〈살구나무〉소녀가수는 어느덧 성숙미 넘치는 일본의 엔까가수로 성장하였다.
김경자가수는 일본의 전통가요 엔까(演歌)를 연변조선족대중가요로 재해석하였다. 그의 맑은 목소리는 세월과 함께 더욱 성숙되여 일본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의 가슴을 달래주는 〈도쿄엘레지〉와 〈남자라네 녀자라네〉, 〈사계절과 그리움〉 등 노래로 수 많은 팬들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연변이 낳은 우리 가수 김경자, 우리에게는 글로벌시대라는 현실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훌륭한 가수로 거듭나는 김경자 가수를 응원할 일만 남은 것이다.
/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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