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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114] 쫀득쫀득 어머니의 손맛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10-09 18:32:20 ] 클릭: [ ]

해마다 한번씩 찾아오는 한가위이다. 나이가 많아서인지 둥근달을 바라보면 고향 생각과 어머니 그리움에 눈굽이 축축해진다. 쪼들리는 가난에 속기름마저 다 빼앗긴 어머니는 비록 낫 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농촌 부녀였지만 음식 솜씨 하나는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어머니는 우리 삼형제한테 대추로 속을 채운 두툼한 약과를 만들어주었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막걸리도 손수 빚었다.

지난 세기 50년대 말의 일이다. 대대에 손님이 오거나 마을 어느 집에서 잔치가 있으면 꼭 어머니를 모셔서 음식을 만들도록 했다. 얼큰한 배추김치, 새콤한 보리밭무우, 통마늘 장아찌는 물론 매돌로 갈아 만든 하들하들한 두부도 있고 명태찌개도 있었다. 어머니가 만든 많은 음식중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더덕구이와 소고기찹쌀구이였다. 삼형제중 막내인 나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면서 곁에서 지켜보다나니 어머니가 만든 음식이 왜서 맛이 있는지를 다소 알게 되였다.

소고기찹쌀구이는 얇게 썬 소의 홍두깨살에 양념장을 바르고 찹쌀가루를 묻혀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쉽게 만드는 것 같지만 맛있게 만드는 데는 어머니 나름의 비법이 있었다. 어머니는 방아 쪄서 찹쌀가루를 장만했다. 당시 우리 집은 낡은 관사를 손질한 초가집이였는데 집앞 바로 오른쪽에 방아간이 있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나는 어머니를 도와 방아를 쪘다. 천정에 매여놓은 바줄을 잡고 방아를 디디면 어머니는 몽당 비자루를 들고 튕겨 나오는 찹쌀을 쓸어모으고 체로 쳐내여 보들보들한 찹쌀가루를 함지에 담았다. 열세살 어린 나이에 방아를 찧는 데는 조금 힘들었다. 시간이 얼마 안지나 온몸이 나른해지고 맥이 풀려 방아대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온 얼굴에 쌀가루가 뒤덮인 채로 내곁으로 다가와 방아를 디디면서 나의 손에 누룽지를 쥐여주군 했다. 어머니는 찹쌀가루를 잘 보관해두었다가 큰일이 있을 때마다 맛나는 음식을 만들군 했다.

소고기찹쌀구이는 소 홍두깨살을 얇게 썬 후 간장, 설탕, 마늘, 파, 참기름, 후추가루 등으로 만든 양념장에 약 10분간 재워둔다. 재워 둔 홍두깨살에 찹쌀가루를 고루 묻힌다. 바로 구우면 찹쌀가루가 떨어지고 너무 오래 두면 수분이 많아지면서 맛이 떨어졌다. 솥에 기름을 넉넉히 넣고 중불에 노릇하게 구웠다. 소고기찹쌀구이를 굽는 일은 꼭 어머니께서 손수했다. 다음 다 구운 소고기찹쌀구이를 꽃잎처럼 접시 변두리에 놓고 가운데 파, 당근, 고수풀 등 남새 무침을 얹어놓는다. 구운 소고기찹쌀구이에 남새무침을 돌돌 말아서 먹는데 쫀득쫀득하고 상큼한 맛이 나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더덕구이도 어머니가 특별히 잘하시는 음식중의 하나이다. 흔히는 더덕을 기름에 튀기는데 어머니는 기름에 물을 조금 넣고 기름 색갈이 우유색으로 되면 더덕을 튀겼다. 이렇게 만든 더덕구이는 쫄깃쫄깃하고 감칠맛이 났다. 동네분들은 어머니가 만든 여러가지 음식을 먹어보고 정말 맛있다며 칭찬이 자자했다. 음식 만드는 비결을 물으면 “가난한 집 살림이 음식을 맛있게 잘 만들도록 했어요.”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어느 날인가 우리 웃집의 맏아들이 장가가게 되였는데 사돈들에게 올리는 음식을 어머니께서 만들게 되였다. 이들이 특별히 소고기찹쌀구이를 올릴 것을 요청해와 서둘러 만들었다. 사돈중 한분이 맛나는 소고기찹쌀구이를 먹으며 연거푸 소주 석잔을 굽내 더니 그만 취해버려 인사말도 제대로 못하고 길을 떠났다 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40여년이 된다. 풋풋한 인정을 나누던 방아간도, 잔치집을 다니며 음식을 만들던 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의 모습도 언제였던가 우리들의 생활에서 멀어져갔다. 황혼 무렵이면 제비들이 둥지에 날아들고 “음메―” 하며 귀맛 좋게 들려오던 송아지의 부름도 들리지 않는다.

추석이라 외국에 간 자식들이 택배로 찰떡과 순대를 가득 보내왔지만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쫀득쫀득한 소고기찹쌀구이가 생각난다. 우리의 삶도 쫀득쫀득 소고기찹쌀구이처럼 맛있고 향을 풍기며 풋풋한 인정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 리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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