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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118] 아침을 깨우는 소리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12-17 21:24:41 ] 클릭: [ ]

“짹짹짹, 째액 째르르륵, 째액, 짹짹…”

얄포름한 카텐 사이로 보석같은 아침해살이 부서져 내릴 무렵이면 분주하게 주고받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고즈넉한 새벽의 고요를 깨뜨릴 때다. 연록의 5월이 만들어 내는 자연의 하모니이다. 혼곤한 잠결 사이를 비집고 즐거움이 바스락거린다.

필자 박미자

이렇게 경쾌할 수가! 귀가 즐거운 호젓한 하루의 시작, 게나른한 기지개를 켜본다. 무상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조용히 나를 잠에서 깨웠다. 고요함을 꿰뚫고 우지짖는 새들의 속삭임 소리, 기분 좋은 상쾌한 무늬를 그린다.

새벽녘의 도시는 참으로 분주하다. 새벽의 간이막 사이로 들려오는 강아지의 킁킁대는 소리, 환경 미화 제초기의 드르렁 소리, 신나게 달리는 차들의 엔징소리, 귀청을 울리는 공터의 시공소리, 이른 새벽부터 담소를 나누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부끄럼없는 쏘프라노, 아침운동을 즐기는 흥겨운 음악소리… 생명이 약동하는 순간이다.

북적이는 소리 속에서 새들이 내는 소리가 유난히 작다. 북적임 속에서 속삭이는 듯 우리를 깨워주고 가슴을 잔잔하게 울려주는 그 소리.

얼마전 대련 병원에서 약제사로 일하는 언니가 일손이 부족한 까닭에 사회구역 코로나19 검사에 나섰다고 했다. 혈육이 무엇인지 가족이라는 리유 하나로 고생이다, 힘들겠다는 일상적인 감정들이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 350관, 3,473명, 3시간, 8시간… 딱딱하게 계산된 랭혹한 수치들에는 평범한 일터에서의 어려움의 무게가 두둑이 깔려있었다. 숨막히는 질식 증상, 흥건히 고여 내리는 땀방울, 김 안개에 의한 가시도 저하, 극한에 대한 도전, 끊어질 듯한 허리 통증, 고달프게 저려오는 팔, 무심하게 지나쳤던 코로나19 검사일군들의 로고가 마음에 새삼스럽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고서 어찌 인생을 론하랴고 몸으로 체험하는 고달픔 속에서 의료일군 동료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짠하다.

코로나19로 인한 3년간의 시간 속에 당과 정부의 령도하에 얼마나 많은 의료일군과 사회구역, 자원봉사원들을 비롯한 무명 인사들이 묵묵히 자신의 일터에서 커다란 중임을 떠메고 나갔을가? 한낱 코로나19 검사만도 이렇게 힘든 데 중증환자들을 돌보는 의무일군들의 로고는 더 말할 나위없을 것이다.

“의사는 의사(义士)라고 했던가/ 저 빛나는 이마를 보아라/ 저 강인한 눈빛을 보아라!/ 아, 장하다, 흰옷 입은 용사들아!/…그대들이 백마 타고 개선하는 날/ 천만송이 꽃들이 그대들을 맞아주리라!” 무한으로 향하는 연변 백의천사들을 노래한 김호웅교수의 〈흰옷 입은 사람아〉가 새삼스럽다.

시대의 난관 앞에서 중임을 떠메고 가는 사람들, 그들이 들려주는 소리는 책임과 담당, 헌신과 인내였다. 그들이 있었기에 약체 군체에 대한 보호가 이루어질 수 있었고 매 하나의 생명은 태산보다 무겁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던가! 평범한 일터의 자그마한 소리, 그것은 더 큰 소리를 들을 수 있게 일깨워주는 감동 어린 깨우침의 소리였다.

병원에서 만난 70대 초반의 할머니는 자그마한 키꼴에 왜소한 몸매, 어린애 같은 단순한 감성을 지닌 분이였다. 30대 후반의 아들의 배동하에 의사 앞에 마주선 할머니는 카랑카랑한 쏘프라노에 귀가 살짝 먼 ‘어른 아이’였다. “예, 알겠습니다” 마지막 억양이 살짝 올라가 녀성 특유의 기분 좋은 상쾌함을 가져다준다. 간호사의 부름소리에 뒤말을 맺기도전에 벌떡벌떡 일어나 잽싸게 반응하는 할머니, 어쩜 성질이 저렇게 급할가, 행동은 저렇게 빠를가 모두의 억측이고 감탄이였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파람을 일구며 휘익 휘익 날아다니는 듯한 행동에 헛웃음만 나왔다. 그 억측을 뒤덮은 건 할머니가 살아온 지난 19년이다. 한국에서 견디여온 19년의 농장 생활이 몸에 배여버린 습관이란다.

“가만히 있지를 못하게 해요. 행동이 늦으면 말을 들어요. 빨리빨리가 일상이지요”, “별을 지고 나갔다가 달을 지고 들어오지요. 사람이 아무리 힘들어도 일하다가 죽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유”, “철통으로 박스처럼 지은 집에서 3,4명이 함께 합숙을 하지유. 전기담요는 왜 그렇게 뜨거운지, 자꾸 꺼야 해요”, “함께 일하던 아줌마가 적게 받은 돈 1원 받겠다고 헤매다가 목숨을 잃었어유. 휴—1원이 돈인가요?”, “돈은 애들 두명 공부시키고 집 사주고 시집장가 보내고 남편까지 3년 아프고 나니 없어요.” 무심하게 뱉어내는 마디마디에는 고단한 삶의 무게가 가지가 휘청이도록 치렁치렁 걸려있었다. 부모라는 이름아래 자식을 위한 혼신의 몸부림, 그래도 다행히 가족들은 고생한 값을 안단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엄마는/ 그대로 되는 줄 알았습니다/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심순덕 시인의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에서 그렸던 그 모습이 아련하다.

자식에게 어머니란 존재는 뿌리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던가! 한 집안의 뿌리이며 생명줄이였을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어두운 땅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뿌리를 닮은 한 시대의 어머니들, 그들이 깨우쳐주는 소리는 책임과 근면성, 겸허함과 희생의 미덕이였다.

3월 코로나19로 인해 부득불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였다. 온라인 수업인만큼 학생들의 이목을 끌기 위하여 통용언어문자로 된 원작 시랑송을 그대로 도입하게 되였다. 류종원의 〈내가에 살며〉, 김상은의 〈금슬〉, 왕국진의 〈살며 생각하며〉, 애청의 〈나는 이 땅을 사랑해〉…작품의 무게에 걸맞는 아름답고 웅장하고 잔잔한 선률과 매력적인 육성의 조합, 작가가 살아온 시대와 내적인 울림, 원작과 번역문의 융합, 그것은 짜장 중화문화의 훈도였고 문화와 예술의 향연이였다.

화려한 무늬를 그려 넣은 거문고에 맞춰 읊어가는 파란만장한 김상은의 인생살이, 무엇 때문에 생명을 열애해야 하는가에 대한 왕국진의 확고하고 긍정적인 메세지, 민족정신과 중화문명의 상징이자 조국 운명의 상징이였던 ‘땅의 시인’ 조국에 대한 애청의 무한한 사랑…

문학은 한 나라, 한 민족의 령혼이라고 했던가! 문화 훈도의 역할을 톡톡히 해야 하는 교원이라는 직업, 주옥같은 문학작품에 녹아있는 정서들은 문화를 전수하는 감성의 세포들을 깨우기에 충분하다. 감성을 전달하고 학생들과 대담하면서 어느날엔가 문학창작에 열정을 쏟아 붓는 제자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어문교원으로서의 꿈이 아닐가! 제한된 수업시간 소중한 작품이 들려주는 소리, 다원화 시대 우리 문화와 민족 문화, 세계 문화의 감성과 정서를 조금씩 조금씩 깨워주라는 책임과 믿음, 꿈과 희망의 소리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소리가 참 많다. 네트워크가 발달하고 미디어와 콘텐츠가 발달한 현재, 들리는 소리 속에서 듣고 싶은 소리와 들어야 할 소리를 잘 가려들어야 할 것이다. 어디에서 어떤 소리를 듣고 무엇을 깨이치는가는 각자의 몫이다. 생각이 깨여있지 않고 마음이 깨여있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것이 아름다운 것은 삶이 우리를 깨우고 그 속에서 인간화 되여가는 우리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 아닐가!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이들의 포부와 리상, 희망과 로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열정과 분투, 헌신과 배려, 선인과 현인들의 지혜와 삶의 도(道)…우리를 깨우는 소리가 아닐가?!

대자연과 인류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현재, 가녀린 풀 한포기, 살랑대는 나무 잎사귀 한잎, 화사한 꽃 한송이… 마음이 깨여있으면 들리는 소리—자연이 깨우는 소리도 가려들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고요한 아침 새들의 지저귐 소리, 나의 아침을 깨우는 소울이였다.

/박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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