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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축구 월드컵 도전사

편집/기자: [ 길신 ] 원고래원: [ 본지종합 ] 발표시간: [ 2009-06-20 10:31:40 ] 클릭: [ ]

1966년 첫 출전 8강 기적, 44년간의 터널 지나

17일,  조선 대 사우디전에서 0: 0무승부를 거두어 조 2위로 월드컵 본선 직행티켓을 따낸 순간, 조선선수들이 뒤엉켜 껴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1950~60년대만 해도 조선축구는 아세아 최강이였다.

1966년 영국 잉글랜드월드컵대회가 조선축구의 하이라이트였다. 랭전시대였던 당시 한국은 조선에 패할것을 우려해 아예 월드컵 예선출전을 포기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16개의 본선 티켓가운데 아세아, 대양주, 아프리카 등 3개 대륙 지역예선에서 1개 국에만 본선기회가 주어졌지만 강호 오스트랄리아를 제치고 월드컵 본선티켓을 거머쥔 조선은 첫 출전한 월드컵 본선무대에서 8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이후 조선축구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월드컵 예선참가도 들쭉날쭉했다. 1970년 메히꼬대회 예선은 불참했고 1974년 서독대회는 최종예선 진출에 실패했다.

1978년 아르헨띠나대회를 거른 뒤 1982년 에스빠냐대회에 나섰지만 최종예선에서 탈락했고 1986년 메히꼬대회에선 1차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1990년 이딸리아대회에선 한국에 0―1로 지는 등 최종예선 최하위에 머물렀다.

1994년 미국대회에도 최종예선 6개 국중 최하위(1승 4패)에 그쳤다. 한국은 당시 조선과 최종예선 마지막경기에서 3:0으로 이기고 승점이 앞서있던 일본이 이라크와 2:2로 비기면서 꼴득실차로 본선티켓을 차지하는 《도하의 기적》을 이뤄냈다.

12년만에 다시 참가한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도 조선은 또다시 최종예선 탈락의 쓴맛을 봤다. 2005년 3월 평양에서 열린 이란과 홈경기(0:2)에선 심판판정에 격분한 관중이 란동을 부려 다음 홈경기를 타이 방코크에서 무관중경기로 치르는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4년간 별렀던 조선은 이번에 마침내 44년만의 두번째 월드컵 본선행의 쾌거를 안으며 사상 첫 남북 동반진출의 력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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