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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시 인문경관ㅡ위만황궁

편집/기자: [ 박명화 ] 원고래원: [ 길림성인민정부넷 위만황궁넷 ] 발표시간: [ 2017-11-17 14:53:48 ] 클릭: [ ]

 
위만황궁 정문

 
동덕전
 

 
동쪽화원

길림성 장춘시 광복로(光复路) 5호에 위치한 위만황궁 옛 터는 청조 마지막 황제인 아이신죠로·부의(爱新觉罗·溥仪)가 위만주국 괴뢰황제로 있을 때의 궁전유적지이다. 부지면적은 13.7만평방메터로 국내 현재 남아있는 비교적 완정한 궁정유적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일본이 무력으로 중국 동북을 침점하고 파쑈 식민통치를 강행한 가장 전형적인 력사증거이다.

위만황궁 유적지 핵심보호구에는 현재 문물건축이 여러 곳 있는데 중화문(中和门)을 경계로 하여 내궁(内廷)과 외궁(外廷)으로 나뉜다. 집희루(缉熙楼), 동쪽화원(东御花园), 서쪽화원, 동덕전(同德殿), 서예루(书画楼) 등이 주로 있는 내궁은 부의와 그 가족의 생활구이다. 근민루(勤民楼), 회원루(怀远楼), 가락전(嘉乐殿), 궁내부 등이 주로 있는 외궁은 부의의 정무활동구이다.

그외 또 건국신묘(建国神庙), 식수헌(植秀轩), 창춘헌(畅春轩), 중화문(中和门), 서양료리방(洋膳房), 중국료리방(中膳房), 어용 차고, 마구간, 경마장, 화초실, 금위군(禁卫军)병영, 근위군(近卫军)대 병영 등 부속시설이 있다.

 
입구

위만황궁의 전신은 민국시기 길림, 흑룡강 두 성의 소금 업무를 관리하는 길흑전매운수국(吉黑榷运局) 관청이였다. 1932년 3월 9일, 부의는 일본 침략자의 지원하에 ‘만주국 집정’(满洲国执政)을 맡고 4월 3일 이 곳에 이주했다. 하여 이 곳이 ‘만주국집정부’가 된 것이다.

1934년,위만은 군주제를 실행하면서 ‘만주국’을 ‘만주제국’으로 개칭했다. 3월 1일부의는 근민루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집정’에서 ‘황제’로 탈바꿈하였다. 따라서 ‘집정부’도 ‘왕궁’으로 변하였는바 일반적으로 ‘황궁’으로 불렀다.

그후 위만왕궁은 비교적 큰 규모로 확충되였다. 1934년부터 1940년까지 이 7년사이 선후로 회원루, 동덕전, 동쪽화원, 방공지하실, 가산(假山), 가락전, 건국신묘 등 건물을 건설하였다.

 
흥운문
 
 
궁내

위만황궁의 건물은 고대와 현대, 동방과 서방의 건축 스타일을 혼합한 모습이고 전형적인 식민성 특점을 형성하고 있다. 건축 풍격상 당시 중국 동북의 특수한 사회상황을 진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위만황궁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산물로서 다중적 내함과 독특한 가치로 중국 봉건사회의 마지막 황제의 최후의 발악을 진실하게 반영하며 더우기는 일본이 동북을 침략하고 피비린내 나는 포악한 식민통치를 실행한, 중국 근현대 식민문화의 전형적인 경종성 기념지 가운데 하나이다.

1945년 8월, 위만주국이 무너진 후 위만황궁을 수위하던 금위군, 근위군 병사들과 궁중의 잡부 그리고 주위의 백성들은 혼란한 틈을 타 위만황궁에서 마구 략탈하는 바람에 일정한 정도로 파괴되였다.

 
집희루

부의의 침실

국민당이 동북을 통치하는 시기 위만황궁은 선후로 송북련립중학교 건물과 국민당 60군 주둔지로 사용되였다. 새중국 창립 후 위만황궁은 또 륙속 심양중공업기계학교, 제1자동차제조공장 기술학교, 길림성문화간부학교, 길림성정법간부학교, 길림성농업전람관, 길림성공안총대 간부훈련반, 장춘시제2비금속자료시험기공장 등 단위의 장소로 쓰였다. 이 기간 궁중의 주요 건물만 보류된외 원래의 일부 건물들은 헐리거나 또 일부 새 집들이 들어서면서 위만황궁의 원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1954년 길림성박물관이 길림시에서 장춘시로 옮겨오면서 림시 위만황궁의 동덕전, 가락전과 서화루 등에 자리를 잡았다.

 
근민루

 
중국인 접견실

 
<일만의정서> 체결 테이블

부의황제 즉위식장

1981년 길림성인민정부는 위만황궁 옛 터를 길림성 중점 문물보호 단위로 공포하였다. 위만황궁박물관(长春伪皇宫)은 국가 5A급 관광구이자 전국 우수 애국주의 교양기지이며 북경고궁, 심양공궁과 함께 현재 존재하는 중국 3대 궁전 유적지로 불리우기도 한다.

위만주국의 8대 통치기구(치안부, 사법부, 경제부, 교통부, 흥농부, 문교부, 외교부, 민생부)와 위국무원, 종합관청(综合法衙)은 모두 장춘시 신민대가(新民大街) 부근에 있다. 일본과 중국 건축 스타일을 접목시킨 이 건물들은 장춘시의 중요한 건축 문화재로 기록되고 있다.

 
일본의 동북침략 증거물

 
부의가 사용했던 차량(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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