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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8)박문호편

편집/기자: [ 김룡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2-10 08:55:37 ] 클릭: [ ]

갑A 첫 원정승을 일구어낸 공신―― 원 길림성축구팀의 주력공격수 박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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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호. 

 

 청소년축구양성에 모든 걸 바치고 있는 박문호

 

 

“소학교 4학년 때까지 정규적인 축구지도를 받아보지 못했지요.” 

 

보기에도 시원시원하게 생긴 박문호가 언제부터 축구를 시작했는가 하는 물음에 대답하는 말이다. 

 

1968년 1월 24일에 룡정시 안민가에서 태여난 박문호는 당시 민족학교였던 안민소학교를 다녔다. 그 때 체육시간이면 한족반에서는 롱구를 하고 조선족반에서는 편을 갈라 축구를 하였는데 어린 박문호는 축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다른 애들보다 공에 대한 의식이 좋고 속도가 빠르며 순발력과 투지가 강했던 문호를 체육선생님은 학교축구팀의 수비수로 기용하였고 1980년 봄에 개최된 룡정진 소학교운동대회에 출전시켰다. 마침 그번 경기를 관람하면서 축구새싹을 찾고 있던 룡정시체육학교 리수령선생과 비교적 정규적인 축구팀을 두고 있던 신안학교 체육교사 임청삼선생의 눈에 문호가 새별로 반짝이였다. 훌륭한 싹이라고 생각한 두분 선생은 문호를 신안학교에 전학시키고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일이 될라니 그 해 연변주체육학교에서 13—16세 되는 연변주내 축구신동들을 모집하여 중점훈련반을 꾸리고 1965년에 전국축구갑급련맹경기에서 일등의 월계관을 따낼 때의 공신이였던 연변축구팀의 원로 정종섭선생에게 감독을 맡겼다. 이 반에는 후날 축구명장으로 성장한 김광주, 최광일, 방근섭 등이 포함되였는데 142센치메터 키의 박문호도 이들과 함께 이 반에 이름을 올렸다. 

 

“그땐 참 힘든 줄도 몰랐지요. 기계처럼 움직여야 했죠. 지도교사의 호각소리가 곧바로 명령이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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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현대자동차축구팀시절의 박문호선수( 방태호 찍음) 

 

박문호는 당시를 회억하면서 5년간 정규적인 축구지도를 받은 그 시절을 돌이켰다. 열세살 어린 나이에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면서 먹는 만큼 키도 우썩우썩 컸다. 

 

1985년에 길림성청년팀에 발탁된 박문호는 1986년에 펼쳐진 전국청년련맹경기에 출전하여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선보였고 이듬해부터는 길림성팀에 합류하여 전국갑급련맹경기에 출전하였다. 1988년에 을급팀으로 강급하였다가 1990년에 다시 갑급리그에 복귀한 연변팀에서는 리호은 감독의 지도하에 1993년에 펼쳐진 전국운동회에서 5위의 돌풍을 일으키면서 1994년부터 중국최고의 축구리그인 갑A무대를 휘저었다. 

 

“원래는 공격수가 아니고 수비수였습니다. 주체육학교시절과 청년팀시절 모두 수비수로 뛰였습니다. 어느 한번 정감독님과 공격수로 뛰고 싶다고 말했더니 련습경기에서 두번인가 공격선에 배치하더군요.” 

 

그것이 박문호가 수비수로부터 공격수로 변신한 계기가 되였다고 한다. 

 

박문호는 연변축구팀이 길림삼성 이름으로 축구무대를 달구던 1994년의 두껨의 경기를 가장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대 료녕원동과 북경국안과의 원정경기이다. 

 

제3륜 료녕원동과의 경기는 심양시체육중심경기장에서 펼쳐졌다. 지금처럼 원정팬이 많지 않았던 그 시절 심양의 축구팬들은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야유로 연변팀에 압력을 주었고 심양팀의 선수들은 거친 동작으로 연변팀의 선수들을 압박하였다.

 

경기 24분만에 료녕의 우명(于明)선수에게 선제꼴을 내준 연변팀에서는 쾌속반격과 전면방어로 료녕팀의 드센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야만 했다. 전반전 33분경 한차례의 공격에서 얻어낸 코너킥을 김영수선수가 그림 같은 포물선으로 꼴문 앞 전방에 올렸고 공의 방향과 속도를 주시하면서 달려가던 박문호가 땅을 차고 힘껏 솟구치더니 보기 좋게 대방의 꼴문 안에 공을 꽂았다.

 

1:1! 연변팀의 선수들은 사기가 충천했고 기세를 몰아 료녕팀을 압박했다. 이 날 경기에서 최광일선수가 61분경 추가꼴을 터뜨리고 경기막판까지 갔으나 경기종료를 앞두고 려병(黎兵)선수에게 동점꼴을 내주면서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이 날의 꼴은 박문호가 넣은 갑A 첫 꼴이였고 또 길림삼성팀에서 94시즌에서 처음으로 기록한 1점이여서 더욱 기억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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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곤명에서 연변현대자동차팀 단체사진

 

승점이 2점이던 그 해 제15륜까지 연변팀에서는 12점을 기록하여 강급선에서 해탈되지 못하였고 갑급보존을 위해 혈전을 펼쳐야 했다. 제16륜은 북경국안과의 원정경기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북경팀은 홈장승률이 높은 팀이여서 웬간한 팀들은 무승부를 목표로 전술을 짠다. 하지만 약팀에 속했던 길림삼성팀에서는 1점이라도 꼭 승점을 챙겨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면방어, 전면공격’의 전술로 북경국안팀과 맞붙었다. 

 

경기 초반, 홈장우세를 믿고 대거 진공하는 북경국안팀의 태세는 밀물공세나 다름없어 길림삼성팀 문전은 먼지가 뽀얗게 일었고 연변팀의 선수들은 수비선으로부터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맞공격을 조직하였다. 경기 17분경, 중앙선부근에서 공을 통제한 박문호의 눈에 북경팀의 키퍼가 꼴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나와 손사래질하는 모습이 보였다. 피뜩 축구왕 펠레가 중앙선에서 대방의 꼴문을 갈랐던 일이 그림자처럼 떠올랐고 ‘이 때다’라고 생각한 박문호는 짐짓 공을 동료에게 패스하는 듯 가동작으로 상대선수를 살짝 빼고 그대로 한번 앞으로 짓치다가 꼴문을 향해 먼거리슛을 날렸다. 공은 40여메터 밖에서 총알같이 북경팀의 꼴문을 향해 날아갔고 화뜰 놀란 북경팀의 키퍼 리장강이 몸을 돌려 죽기내기로 달려갔지만 무릎을 치고 한탄해야 했다. 그 후로 리장강은 감히 꼴문 앞을 떠나지 못했고 북경팀의 수비선 역시 감히 앞으로 밀고 들어오지 못해 연변팀은 한결 쉬운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이 날 경기에서 박문호의 선제꼴로 주도권을 쥔 연변팀은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북경팀의 문전을 수시로 위협하였고 경기 56분경, 북경팀의 사봉(谢峰)선수에게 동점꼴을 허락했지만 물러서지 않고 상대팀을 압박함으로써 88분경, 고종훈선수의 쐐기꼴로 첫 원정승을 거두는 쾌거를 올렸다. 이 경기 이후 연변팀은 강급권에서 철저히 해탈되였다. 이 경기는 또한 연변팀의 갑A 데뷔 이후 첫 원정승이여서 더욱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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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축구양성에 모든 걸 바치고 있는 박문호. 

 

갑A 데뷔 첫해인 1994년 연변팀은 6승 7무 9패로 19점을 기록하여 10위로 갑A보존에 성공했는데 11위인 심양팀과는 8점이나 더 높은 점수였으며 상해신화와 같은 강팀들을 꺾으면서 연변축구의 저력을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박문호는 시즌에서 총 다섯꼴로 길림삼성팀내의 최다득점수로 되였다. 

 

그 후 박문호는 1995년과 1996년 시즌 때 연변현대팀에서 갑A경기에 출전하였는데 잦은 부상으로 경기출전기회가 비교적 적었다. 발목부상으로 1997년에 퇴역을 고심하던 박문호는 장춘아태의 간절한 요청으로 장춘아태팀에서 1년간 뽈을 찬 후 1998년에 정식으로 프로생활을 접었다. 

 

1998년 5월, 정종섭 감독의 부름을 받고 연변OK구락부에서 청소년축구를 지도하면서 감독생활을 시작한 박문호는 2000년 연길시체육학교 축구감독으로 되여 현재 체육학교 교장으로 사업하기까지 장장 17년을 연길시의 청소년축구인재양성에 혼신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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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축구양성에 모든 걸 바치고 있는 박문호. 

 

“룡정에서 태여났지만 열세살에 룡정을 떠났으니 연길에서 생활한 시간이 더 길지요. 주체육학교, 성청년팀, 연변(길림성)팀에서 도합 17년간 뽈을 찼습니다. 그래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이 뽈인가 봅니다. 체육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뽈을 가르치다  보면 멋을 모르고 뽈을 차던 동년시절로 돌아가군 합니다. 하하하…” 

 

사람 좋게 웃으면서 인터뷰를 마감한 90년대 연변팀의 효장 박문호는 “연길시 여러 소학교들을 돌아보면서 겨울철훈련영 명단을 작성하는 중”이라면서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 

 

/길림신문 김룡 김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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