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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산따라 강따라1]두만강변의 함박동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5-21 11:30:14 ] 클릭: [ ]

동구밖에서 바라본 백금향의 소재지 함박동

매주 주말이면 조직되는 장도자전거주행동호회의 이번주 나들이 코스는 룡정시 백금향이였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연길부터 백금까지는 근 70키로메터, 왕복 140키로메터되는 꽤 먼 거리였다.

일찌감치 길을 떠나야 했으므로 장도팀은 아침 7시에 연길개발구 연룡로 길목에서 합류하여 곧 출발했다.

15만원 탈취사건 유적지

연길에서 백금까지 가는 길은 룡정을 지나 룡북선을 달리다가 주덕해 초대주장의 생가가 있는 승지촌에서 꺾어든다. 승지촌에서 남쪽방향으로 뻗어간 길을 따라 찾아가면 된다. 가는 길에 15만원탈취사건과 5.30폭동사건 유적지도 보인다. 중국조선족항일투쟁사에서 모두 의미있는 중대한 사건들이다. 유적지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면서 향토력사에 대한 공부를 할수 있었다.

대신저수지 일각

백금가는 길에서는 대신저수지도 만날수 있다. 1971년 수축을 시작해 1982년에 완공된 저수지이다. 언제길이가 453메터, 높이 30메터, 저수량 1855만립방메터이며 관개와 음료수 수원지로 사용되고 있다. 경치가 수려하고 물이 맑아 낚시군들이 즐겨찾는 곳이라고 한다. 거울같은 호면에 한가로이 낚시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의 모습도 아름다운 풍경처럼 비쳤다.

백금은 경내에서 흰사금이 많이 난다고 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오늘 장도주행의 목적지가 백금향이므로 일단 백금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룡정지명지”에 따르면 백금향은 광서년간 경내에서 흰사금이 많이 난다고해서 백금(白金)이라 명명했다. 백금향의 소재지는 함박동인데 광서초기에 부락이 섰고 조선말지명으로 함지박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함지박을 많이 만들었기에 함박동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마을지형이 마치 함지박처럼 생겼다고 해서 함박동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현재 백금의 시작은 용신에서부터 시작되고있다

백금경내에 들어선 것은 아직 향소재지인 함박동에 당도하기 전인 용신촌에서부터였다. 과거 향으로 불렸던 용신이 지금은 백금과 합병되면서 이젠 이곳부터 백금향경내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용신촌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백금’(白金)이라고 밝힌 거대한 화강암지명비가 세워져 있었고 뒤면에는 ‘생태 천당, 매력 백금 (生态天堂 大美白金)’이라는 간단하면서도 백금의 특색을 보여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바야흐로 산뜻한 신록에 물오르기 시작한 산야, 마음껏 욕심스레 들이마셔도 좋을 청정한 자연공기, 숲속 여기저기 겨끔내기로 들려오는 꿩들의 노래, 계곡을 따라 도란도란 귀맛 당기는 맑은 개울물소리… 산속으로 뻗어나간 길에는 오가는 차량도 없어 이곳이 바로 자연생태환경의 현주소임을 절감케 했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난데없이 길바닥에 뛰여든 어린 노루 한마리와 마주치기도했다. 모두들 뜻밖의 상황에 환성을 질렀고 노루는 놀라서 숲속으로 다시 사라져 버렸다. 옛날부터 백금은 꿩, 노루, 메돼지 등 야생동물들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용신을 지나면 자전거타기에는 별 부담없는 오르막길이 서서히 시작되고 그 오르막길이 끝나는 곳부터 백금까지의 10여키로메터의 구간은 기분 좋은 내리막길이다. 힘들게 오르막길을 톺아 올랐다가 내리막길을 질주하는 멋이 바로 자전거주행의 짜릿한 쾌감이요, 묘미이다.

백금가는 령마루에 올라서서

백금향에 들어서는 순간, 조선족민속풍격이 다분한 마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동구밖에서부터 조선족마을 특유의 장승 두개가 길량옆에 버티고 서서 손님들을 맞는다. 춘향과 리도령이 노닐었던 광한루를 닮은 멋진 정자도 눈길을 끌었다. 조명등으로 만든 앙증맞은 석등마저 투박하지만 정감이 갔다. 장고춤을 추는 조선족녀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도 보인다... 이같은 민속적인 마을분위기는 백금향에 들어서는 동구밖에서 뿐만 아니라 향소재지 마을인 함박동 곳곳에 널려있었고 가는곳 마다에서 만날수 있었다.

"백금향 백금촌 함박동11호"라고 쓴 문패가 이색적이다

‘백금향 백금촌 함박동 119’등 집집마다 조한 두가지 언어로 된 정교한 문패도 기둥에 걸어놓았는데 매우 아기자기하고 정겨워보였다.

큰길가 벌통을 쌓아놓은 한 살림집 앞마당에서 주인집 녀인이 풀을 뽑고 있었다. 꿀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가짜꿀은 팔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한근에 30원이라고 했다. 정색하고 진솔한 표정과 농촌녀인 특유의 순박함은 어쩔수 없이 믿음이라는 낱말을 떠올리게 했다.

백금향 소재지 함박동거리 일각

사실 백금은 변경지역이고 룡정시가지에서도 무려 35키로메터 떨어진 편벽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찾아온 봄기운이 산간마을에 깃들어서였을가? 마을곳곳 구석구석에 생기가 흘러 넘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을에서 어떤 큰 공사가 진행중인듯 공정차량들과 일군들이 분주히 오갔고 점심무렵이라 마을의 음식점들도 지지고 볶고 성업중이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마을을 두루 돌면서 구경하다보니 점심무렵이라 길모퉁이 한 음식점에 찾아들어갔다. 모녀사이인지, 고부간인지 젊은 녀인과 할머니 단 둘만 보이는 작은 음식점이였다. 할머니가 밥사발에 이밥을 넘치도록 수북히 담아서 내왔다. 린색함이 보이지 않는 순수한 농촌인심이 흐르는 밥상이였다.

 

수북이 담긴 밥그릇에 넉넉한 인심이 엿보인다

당지에서 난 솔버섯볶음과 금방 만들어내서 신선하다는 소고기 장졸임 등 구미를 돋구는 반찬들이 올랐다. 도시의 어지간한 음식점 못지 않게 음식들이 맛있고 깔끔했다. 우리가 연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말에 주인집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먼길에 고생 많았겠는데… 하고 내 자식 념려하듯 많이 드시라고 말한다…

백금 주민들이 세운 당은정 정자

백금향은 중조 변경지역이다. 그런 까닭에 흥변부민의 슬로건을 내걸고 발전을 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 동구밖에서 백금향의 주민들이 함께 세웠다는 당은정(党恩亭)정자를 보았다. 지난 2016년 태풍 ‘사자산’의 피해로 백금향이 큰 홍수피해를 입었을 때 당과 정부에서 촌민들을 이끌고 곤난을 이겨내면서 재해복구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위급하고 어려웠던 시기 당과 정부에서 촌민들에서 보내준 고마움을 잊지 못해 전체 촌민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세운 정자가 바로 “당은정”이였다.

백금촌향촌관광농민전문합작사

룡정시에서도 멀리 떨어져있지만 백금은 먼 변경의 오지마을이 아닌 변강진흥, 흥변부민의 정책으로 생기를 찾아가고 있는듯 했다. 마을에 향촌관광농민전문합작사가 세워져 있었고 전주적으로 민박, 미식, 민속전통기술이 있는 대상자들을 유치해 농촌관광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는 이곳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도 보였다.

백금을 찾아온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는듯한 동구밖의 춤추는 동상

지금은 백금에서 옛날처럼 흰 사금을 캐낼수 없지만 백금이 가지고 있는 변경, 생태, 민속 등 허다한 자연지리적경제 및 민속관광우세는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것들이 이곳에 귀한 백금처럼 묻혀있고 또 캐내야 할 현실판 ‘노다지’는 아닐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다.

백금을 떠나 귀로에 오르면서 아침 백금경내에 들어서면서 보았던 환영표어가 불현듯 떠올랐다.

“백금은 여러분들이 귀향창업하는 것을 환영합니다”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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