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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산따라 강따라9] 가야하를 건너니 무릉도원 있었네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11-06 15:47:08 ] 클릭: [ ]

봉림민속원을 소개하고 있는 봉림촌당지부서기 오기철

노랗게 물든 길가 백양나무 잎새들이 하나둘  떨어지면서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자전거려행의 목적지가 배초구진까지였지만 여기까지 왔다가 봉림촌을 못 보고 간다면 유감일 것 같았다. 봉림촌은 배초구진에서 가야하를 건너 동북방향으로 3킬로쯤 더 가야 만날수 있는 시골마을이였다.

근 200년의 력사를 가지고 있는 봉림촌은 수림으로 우거진 분지에 자리잡고 있어 지척에 있는 배초구보다 기온이 2도가량 더 높다고 한다. 기후가 따뜻하고 습윤해 농사도 잘 될뿐만아니라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수림이 너무 아름다워 날아가던 봉황도 깃을 내릴 무릉도원이라는 의미에서 봉림촌으로 불리우게 되였다고 한다.

과거 그 곳에 취재갈때는 가야하 상공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좁은 허궁다리를 건너 마을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후에 오래된 그 다리가 끊어지면서 지나가던 농용차가 그대로 강바닥에 추락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다리가 통하지 않은 봉림촌은 그후로 꽤 오랫동안 바깥세상과 이어지지 못한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봉림촌에 다리가 놓인 것은 지난 2015년도의 일이였다. 민족발전자금이 들어오면서 촌민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든든한 다리가 놓였다. 마을에 민속원도 세워 진다고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봉림촌민속원이 손님을 맞기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은 지난 6월초였다.

봉림촌에 이르렀을 때는 점심때가 지난 한적한 오후였다. 추녀가 건뜻 들린 조선족특색건물의 민속원이 반기듯 나타났다. 약속하고 간 것은 아니였는데 오기철서기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듯 반갑게 맞아 주었다. 민속원이 문을 연후 밤낮이 따로 없이 민속원일에만 매달려있다보니 그럴법도 했다. 

오기철서기는 2008년도에 락후한 봉림촌의 촌당지부서기로 부임되여 와서 봉림촌을 살기좋은 향촌마을로 가꾸려고 10년 넘게 로고를 아끼지 않는 휼륭한 농촌간부였다. 오기철서기의 소개로 민속원을 구경하면서 비로서 봉림민속원은 레저휴가, 민속체험, 음식오락, 문화탐방을 일체화한 조선족 민속풍격을 띤 민속원임을 알수 있었다.

봉림민속원에서 디딜방아를 찧어보고있는 관광객들

봉림민속원의 총 부지면적은 7500평방메터였는데 그 안에 조선족특색을 갖춘 주택 8채가 들어 있었다. 주택들은 10~20년대풍의 주택으로부터 시작해 30~40년대, 50~60년대, 70~80년대 풍격의 주택 그리고 현대주택의 이미지들을 각각 보여주고 있었다.

조선족민속문화특색에 따라 민속원의 여러 방들에는 각 시대와 시기별 조선족전통생활용품들이 구전하게 놓여져 있었다. 조선족전통농기구들을 돌아볼수 있는 농기구전시장과 조선족전통생활용품들을 전시한 2개의 민속생활용품 전시장도 보였다.

민속원의 전반 설계가 모두 오기철서기의 손에서 설계됐다고 한다. 민속원에 있는 700~800점에 달하는 민속생활문화용품들 역시 오기철서기가 과거부터 하나 둘, 모아 온것이라고 한다.

그는 과거 조선족들이 집을 허문다는 소식을 듣기만 하면 곧 그곳에 달려가 버려진 낡은 물건들을 주어오군 했다. 이런 물건들은 이제는 어데가 찾아볼라고 해도 볼데가 없다. 배초구에서 많이 수집했다고 한다. 과거 마누라가 낡은 쓰레기들을 주어와서는 뭘 하느냐고 나무랐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쓰레기가 아니라 매우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오기철서기는 자랑스러운듯 말했다.

봉림민속원에는 근 800점에 달하는 각종 민속문화유물들이 있다

“현재 조선족마을들에 조선족들이 점점 적어지고 민속문화를 거의 잊어버릴 정도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우리가 민속촌이라도 꾸려놓지 않으면 모든 것이 종적을 감추며 잊혀지게 될것입니다.”오기철서기의 안타깝지만 사명감이 돋보이는 말이였다.

요즘들어 민속촌들이 여기저기 많이 일떠서긴 했지만 봉림민속원처럼 력사단계를 나누어 건설했고 또 많은 민속문화유물들을 갖춘 곳은 그리 많지 않다. 하기에 봉림민속원에 와서 민속문화를 료해하고 배우는 것이 기타 지역 민속촌들과는 다른 점임과 동시에 특색이라고 오기철서기는 강조했다.

오기철서기는 봉림민속원을 건설하면서 기타 현시의 민속촌들을 많이 돌아 보았는데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더라고 말했다. 그런것들로 민속을 체현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민속이란 어떻게 형상화하고 발굴하면서 체험하고 료해할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옛날식으로 만들어 놓았을뿐 거기에 대한 이야기도 없고 소개도 없다면 민속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속농기구들에 대해 소개하는 오기철서기

“저는 봉림민속원에 한사람만 찾아와도 직접 이것저것 일일이 다 보여드리고 상세히 소개시켜 줍니다” 오기철서기의 고집스런 한마디였다.

오기철서기의 이야기는 스케줄에 따라 건당이전의 1910년대 우리들의 생활로부터 시작해 해방전 30년대의 생활상과 해방후 5~60년대의 진보, 그리고 개혁개방이후의 변화에까지 이어진다. 그러한 부동한 력사시기를 대표하는 다양한 이미지 및 분위기들을 통해 중국조선족의 100년 력사를 떠올리고 보여주는 것이였다.

 

 민속문화유물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이야기가 깃들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는 옛날 추억이 제대로 떠오른다면서 말하군 합니다. 과거로 돌아간듯하다면서 좋아하지요.” 지나온 세월의 강을 건너 다시 돌아보는 과거가 얼마나 감개무량하고 소중할가?! 그걸 가까이에서 피부로 느끼지 않고서는 그 미묘한 감정과 마음속 가득 차오르는 수확감은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봉림민속원이 구경온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록 규모는 작지만 민속전통과 문화적인 함의는 매우 농후하다”는 높은 평가와 칭찬을 받는 리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왔던 과거를 추억하게 만드는 민속원의 실내정경

오기철서기는 당전의 농촌빈곤해탈사업이 마무리 되고나면 국가의 사업중점이 곧 향촌진흥에 돌려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생활수준이 부단히 제고되고 소비의식이 개변됨에 따라 농촌향촌관광이 향후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향촌진흥에 들어가게 되면 국가적으로도 적극적인 지지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였다. 정작 봉림촌은 향촌진흥을 한발 앞서 가고 있는 것이였다.

오기철서기는 현재 왕청현에서도 이미 관광으로 현을 흥기시키는 “관광흥현”(旅游兴县)구호를 내오고 적극적인 실시단계에 들어가고 있는데 농촌향촌관광을 많이 틀어쥘 것이라고 내다 봤다.

봉림민속원의 가장 큰 특점은 관광객들이 체험하고 즐길수있다는 점이다

현재 봉림촌은 길림성민족단결진보창건활동 “쌍십쌍백”(双十双百)시범촌과 길림성 3A급 향촌관광기지로 되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민속촌으로도 명명됐을뿐만아니라 왕청현의 아름다운 향촌건설 선진촌이기도 하다. 향촌관광기지로 떠오르기 위한 준비가 이미 모두 되여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적극적인 홍보와 선전이 필요합니다. 많은 도시인들이 봉림촌에 와서 참관하고 놀수있는 계기를 더 많이 개발하고 만들어 주어야 겠지요.” 봉림촌의 밝은 미래에 대해 오기철서기는 신심과 희망으로 벅차 있었다.

소개에 따르면 올해 6월에 대외에 개방되여서부터 봉림민속원은 이미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 4000여인차 접대했고  봉사수입이 10만원에 달했다. 비록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이 같은 관광자원과 수입은 봉림촌의 집체경제를 살찌우면서 촌민들의 혜택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오기철서기는 소개했다.

마을을 떠나면서 가야하를 다시 건너 돌아보니 울긋불긋 단풍든 봉림촌은 전설속의 무릉도원처럼 아름답다. 아름다운 고장으로만 찾아 든다는 전설속의 봉황새도 무리지어 깃을 내릴법한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운 전설속의 마을을 만들고 또 열심히 가꾸어가고 있는 오기철서기의 향촌진흥의 멋진 꿈이 그리 멀지는 않아 보였다.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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