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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 아래 약수동에 다녀오다 (상)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1-18 18:10:47 ] 클릭: [ ]

들어가는 말

2020년도 8월 하순에 장백산 아래 이도백하의 약수동에 친구 두 분과 함께 뜻 깊은 오지려행을 다녀왔다. 예순이 넘도록 오지마을에 배낭려행을 다녀온 것도 처음이고 음식점에서 한주 동안을 보낸 일도 처음이다. 공기 좋고 경치 좋고 인심 좋은 천혜의 오지마을에서 보낸 한주일간의 생활이 너무 인상이 깊어 술좌석에서 몇번 자랑 삼아 이야기하였더니 글로 써내라는 닥달이 심해서 마침내는 이렇게 어려운 필을 들어 그 때 받은 인상을 소박하게 적게 되였다.

고목 앞에서의 필자 

 씨앗을 심어준 정보

5월 20일, 나는 위챗에 올라 《길림신문》을 보다가 길림신문사의 한 기자가 쓴 글 〈장백산아래 약수동골의 자연인으로 살아왔어요〉라는 주제목 아래 〈―장백산아래 심산유곡, 약수동골에서 자연인의 삶을 살아가는 강선모, 김룡순 부부의 이야기〉라는 긴 부제목을 가진 기사를 읽게 되였다. 꽤나 긴 글이였는데 나는 단숨에 다 읽었다. 전편 글도 잘 되였지만 글 가운데의 한구절이 너무도 인상적이였다.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하여 강선모씨는 마을 옆을 감돌아흐르는 두도백하에서 전날 저녁에 강물에 대놓은 물고기발을 거둬 들이고…”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나는 더 고려할 여지도 없이 올해 여름에 이 곳에 꼭 다녀오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채발로 고기를 잡는 것이 나에게는 고기잡이라는 간단한 뜻을 벗어나 전반 동년의 회억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로도 되기 때문이였다. 1968년도 내가 소학교 2학년을 다닐 때 아버지는 나에게 크고도 보기 좋은 큰 채발 하나를 만들어주었다. 그 때부터 시작된 채발로 고기를 잡는 일은 고중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였다.

약수동의 가을경치 / 인터넷에서

생활이 좋아짐에 따라 후에는 반두나 투망으로 고기를 잡기도 하고 통발이나 노루그물로 고기를 잡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몸에 밴 습관은 채발로 고기를 잡는 일이였고 고기잡이 재미도 채발이 최고였다. 그래서 어느 때든지 꼭 고향에 가서 며칠을 묵으면서 채발로 고기를 잡아보는 것이 나의 소원이였다. 이런 소박한 념원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어렵사리 다가왔으니 절대 놓칠 수 없었다. 바로 신문에 실린 기사의 그 한구절의 정보 때문에 나는 어려운 선택의 과정도 없이 오지려행을 가기로 그 자리에서 결정하게 되였다.

한국의 유명한 력사 드라마 〈대장금〉이 력사 서적 중의 한구절을 가지고 만들어졌다는 글을 보고 이전에 크게 놀랐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보화시대를 살아가면서 정보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번처럼 정보의 중요성과 정보의 힘을 절감하기는 처음이다. 조용히 돌이켜보니 우리들의 많은 씨앗은 정보에 의해 심어지는 것은 아닐가 생각된다.

 음식점

전기랭장창고

성공을 부르는 우정

이번의 성공적인 오지려행을 통하여 나는 인연과 우정은 우리 생활의 귀중한 재부임과 동시에 대단한 동력이구나 하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되였다.

이번 배낭려행에서 우선 약수동이란 곳을 알기 위해서는 그 주인공들의 전화번호를 아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그 주변의 다른 려인숙들의 정황도 알아보는 것이 필요했다. 이러기 위해서 내가 찾은 사람은 모두 5명이였다. 이들의 힘을 통해 나는 약수동과 그 주변의 정황에 대해 초보적인 료해가 있게 되였고 마음 속에 수자가 있게 되였다.

사실 나는 이전에 그 기사를 쓴 기자와 만난 적이 없었다. 그가 쓴 기사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였으며 또 그의 소개로 연길시에서 회사를 꾸리고 있는 최창룡 사장을 알게 되였다. 최창룡씨는 평소에 사무가 아주 많은 사람이다. 우리가 약수동에 갈 때는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였고 이도백하에서 약수동으로 가는 길은 수리중이여서 보통차로는 가기가 힘들었다. 최창룡씨는 주동적으로 처음 만나는 우리를 힘 좋은 자기의 차로 100키로메터나 넘는 먼 약수동까지 직접 실어다주었다. 너무도 감동적인 처사에 우리는 그저 감사할 뿐이였다. 참으로 인상 깊은 후더운 분이였다.

그리고 우리가 한주일간 뜻깊게 보냈던 려인숙의 강선모, 김룡순 부부와도 그렇게 재미 있게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기자씨와 최창룡씨의 힘이 크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한다. 인연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강한 힘을 갖고 있기도 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깊이 느꼈다.

려행이나 료양이나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고리가 바로 파트너 선택이다. 파트너가 좋지 못하면 려행이나 료양이나 잘되기가 힘들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셋은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빠른 속도로 만나 하나의 작은 팀을 이루게 되였다. 나는 8월 18일 새벽에 배낭려행을 하기로 결정을 내리게 되였다. 인원은 3명으로 잡았다. 하여 오전에 선후로 매하구와 통화시에 계시는 두 친구에게 전화로 련계함과 동시에 《길림신문》에 실린 그 기사를 보내주었다. 이들은 인츰 동의하고 속히 장춘으로 떠나 한명은 점심시간에 도착하고 한명은 오후에 도착했다. 전쟁 시에나 있을법한 놀라운 신속함이였다. 끈끈한 우정의 힘을 절감하는 순간이였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인연과 우정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한 인연과 우정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동시에 인연과 우정을 반드시 소중히 여기고 아껴야 하겠다는 결심을 다지게 된다.

약수동에 가기전 모아산 등산

자연이 숨쉬는 오지

공원을 거니는 것과 자연 속을 거니는 것은 그 감각부터가 다르다. 인간의 손길이 많이 닿아 문화적으로 아름답게 건설된 공원은 걷기도 좋고 환경이 아름다워 기분도 좋다. 하지만 자연 속을 거닐 때의 그 신성함과 뿌듯함을 느낄 수가 없다. 순수한 자연이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런 원생태의 것이다. 우리가 이번에 갔던 곳이 바로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순수한 자연이였다. 하지만 그 속을 거니노라면 그 어떤 숭엄한 느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나 역시 자연의 한부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약수동은 참으로 오지이다. 사람의 건강에 좋은 약수가 있고 그림처럼 펼쳐진 병풍바위가 있고 그 아래를 굽이돌아 흐르는 두도백하가 있어 경치가 좋고 공기도 좋지만 그곳에서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은 많지 못하다. 모두 합하여 음식점을 경영하는 세집이다. 하지만 이곳이 이전에 주덕해 주장이 처음으로 일떠세운 연변료양원이 있던 곳임을 머리에 떠올리면 이곳의 경치가 얼마나 좋고 공기가 얼마나 좋을 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잘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노라면 이 곳의 풍수도 상당히 좋다고 한다.

우리가 주숙하고 있던 음식점은 집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두도백하가 흐르고 그 강 너머는 곧 산이 있는 곳이다. 집주위의 밭을 제외하고는 그냥 말그대로 잡초와 잡목이 우거진 순수한 자연이다. 아름다운 새들의 노래 소리와 강물의 노래 소리가 어울리고 해빛 좋고 달빛 좋은 곳이다. 그리고 조금은 불편할 지도 모르겠지만 전화가 통하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챗은 통할 수 있어 외계와의 련계는 마음대로 할 수가 있는 곳이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인간은 도시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일떠세우려고 무척이나 노력한다. 공원에 인공늪을 만들기도 하고 가산을 만들기도 하며 꽃도 심고 바위도 가져다 이 곳 저 곳에 놓아두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모두가 자연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갔던 오지마을은 너무도 순수한 자연이 살아있어 숨 쉬는 곳이다. 자연의 품에 안겨 오색의 아름다운 꿈을 꾸고 싶은 사람들은 어디든 상관없이 오지마을로 찾아가보시라. 아마 그대가 느끼고저 하는 그 아름다운 느낌을 유감 없이 만긱할 수 있을 것이다.

위성에서 찍은 약수동마을의 위치

하늘이 선물한 약수

장백산천지와 가까워서일가 약수동 한곳에서 만도 약수가 나는 곳이 여섯 곳이나 된다. 1호 약수로부터 6호 약수에 이르기까지 그 효과성은 조금은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약효가 비숫하다고 한다. 광물질 함량이 풍부하고 자연 소다맛으로 목구멍까지 시원한 약수는 여러가지 약효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몸속의 독소를 없애고 변비를 치료하는 효과가 뚜렷하다고 한다. 이렇게 하늘이 선물한 약수가 있는 곳이였기에 연변제1료양소를 여기에 세웠으리라 추정된다.

나와 함께 동행한 두 친구는 약수를 잘도 마시는데 나는 그 냄새를 이기지 못하여 이틀간 마시고 그만 투항하고 말았다. 그래서 다른 약수를 마시게 되였는데 그것이 바로 고로쇠나무에서 뽑은 수액(树夜)이다. 고로쇠나무에서 뽑은 수액은 당뇨나 간질환, 무릎관절염 등 각종 질병치료에 좋다고 한다. 텔레비죤에서나 보아오던 그 신성한 수액을 마시니 그야말로 다른 선경에나 온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신기했다. 봄이 되여 춘분이 지나면 수액을 뽑는데 그 일이 무척이나 어렵다고 한다.

땅에서 솟아나는 약수나 나무에서 채집한 수액이나 다 복 받은 고장에만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태여난 곳도 산골이고 내가 성장한 곳도 산골이지만 약수도 없고 아예 고로쇠나무란 존재도 없다. 하늘이 선물한 것이라 어쩔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약수동에 있던 어느날 식사가 끝난 후 아주머니가 숭늉을 가져다주었는데 그것을 마시면서 나는 우습게도 이 숭늉이야말로 하느님이 우리 민족에게 선물한 약수가 아닐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그 구수하면서도 깊은 맛이 그 어느 약수보다도 나아보였다.

약수가 그렇게 좋은데 또 나름대로의 부족함도 가지고 있었다. 그 약수물로 두부를 앗을 수 없단다. 약수 뿐만 아니라 그 부근의 약수가 아닌 샘물을 가지고도 두부를 앗을 수 없다고 한다. 하여 방법이 없이 이도백하에서 두부를 정기적으로 사올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두부의 맛을 최고로 알고 있는 나에게는 큰 아쉬움이였다. 우리가 어릴 적에 배운 ‘하나가 둘로 나뉜다’는 리론이 참으로 틀림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오른다. 약수도 나름대로의 부족점을 가지고 있는데 찬바람이 몰아치는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어찌 결점이 없으랴? 남의 결점만 밝히지 말고 그러려니 하자.

 제6호 약수

자연이 보내온 선물

약수동에서는 봄철이면 20분이면 산에 가서 한때 먹을 나물을 캐올 수 있다고 한다. 산이 가깝다는 의미와 산나물이 많다는 두가지 뜻을 다 담고 있는 말이겠다. 기자의 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고로쇠나무 수액을 뽑는 철이 지나면 4월 초부터 시작해 달래, 민들레, 명이(한초), 지장나물, 참나물, 물쑥, 오갈피, 호박나물, 곰취… 등 20여가지가 넘는 청정자연산나물이 선후로 산과 들에서 돋아난다.” 자연은 나물 외에도 여러가지 버섯과 열매를 아낌없이 준단다.

산이 나물과 버섯, 열매를 선물한다면 강은 여러가지 물고기를 아낌없이 선물해준단다. 봄철부터 가을철까지 강에 채발을 놓아 고기를 잡을 수 있는데 많을 때면 10근이 넘게 걸리기도 한단다. 아래에 고기잡이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다루기에 여기서는 구체적인 서술을 략한다.

산과 강이 우리 인류에게 이렇게 수많은 선물을 아낌없이 선물하지만 그 혜택을 누구나가 다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부지런한 사람 만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산을 가까이 하고도 신선한 나물채를 맛보지 못하는 사람이나 강을 옆에 끼고도 시원한 물고기국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강선모아저씨나 김룡순아주머니는 더없이 부지런한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봄철에 산에 올라 직접 산나물을 채집하여 처리하기도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나물을 뜯어오면 수구하여 처리하기도 한단다.

이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기에 산나물을 저장하는 것도 하나의 큰일이라고 한다. 손님들의 상에는 여러가지 산나물 반찬이 올라야 하기에 그들은 수요에 따라 어떤 나물은 직접 랭동실에 얼구기도 하고 어떤 나물은 말리워 보관하기도 한단다. 물고기도 밸을 따서 말리우기도 하고 수요에 따라서는 강에서 갓 잡아올린 물고기를 가지고 시원한 국을 끓여 올리기도 한단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채소를 채집할 수 있는 커다란 터밭이 있으니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에도 큰 문제가 없다. 약수동에서 먹던 여러가지 산나물 내음이 지금도 방불히 옆에서 풍겨오는듯 싶다.

산나물과 물고기로 이루어진 밥상

세월이 담겨진 고목

약수동에서 료양하는 기간 우리는 낮이면 큰길을 따라 3키로메터 좌우의 거리가 되는 갈림길까지 등산을 하기도 하고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산을 오르기도 하였다. 한번은 병풍바위의 우에 있는 작은 봉우리를 오르게 되였는데 그 등산길에서 적지 않은 고목과 만나게 되였다. 등산 자체도 아주 기분이 좋은 일이지만 그 등산 도중에 만나게 되는 여러가지 ‘친구’들은 등산객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등산길에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만난다면 참으로 즐겁다. 한번은 등산길에 만난 산딸기의 모습을 위챗에 올렸더니 한시간 내에 3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녀갔었다.

길가의 먹음직한 산딸기

앞에서도 밝혔지만 내가 태여난 곳이나 성장한 곳도 다 산골이지만 무슨 원인인지 우리 고장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없었다. 가장 큰 나무라 해도 내가 한아름으로 안을 수 있는 나무들이였다. 그런데 약수동에서 만난 고목들은 내가 한아름으로 안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였다. 기후 때문인지 토양 때문인지 아니면 장백산의 정기가 다분해서인지 이곳의 고목들은 그 가지수도 많았고 뿜어내는 기도 달랐다. 하늘을 치받고 있는 그 헌앙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숭엄한 감정에 잠기게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박달나무처럼 단단하다’는 말은 수없이 들어왔지만 나는 내 눈으로 박달나무를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였다. 그것도 울퉁불퉁 삐여져나온 아름드리 박달나무를 대하고 나니 그만 할 말을 잃었었다. 그리고 수액을 인류에게 선물해준다는 고로쇠나무와의 만남도 이번이 처음이였다. 고로쇠나무를 대면하니 이도백하에서 처음으로 미인송을 만날 때와 같은 경건함도 느끼고 해남도에서 처음으로 일왕종을 만날 때와 같은 신비로움도 느끼게 되였다. 내 고향에는 참나무가 많다. 하지만 한아름이 넘는 참나무를 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큰 소나무는 둘이서 껴안아도 안지 못할 정도로 굵었다.

아름드리 홍송 앞에서

알아보니 이런 나무들의 나이는 내 나이보다도 많다고 한다. 한곳에서 아무런 투정도 부리지 않고 60년이 넘게 살아온 그 모습들을 바라보노라니 내 마음은 어느덧 경건한 감정에 쌓이게 되였다. 이 세상의 풍상고초를 다 겪으면서 굳건히 살아왔을 그 나무들의 강인함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이 세상의 주인이나 된 듯이 우쭐렁 거리는 우리 인간들도 자연의 위엄에는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듯 싶다. 내가 고목들의 숙연한 모습들을 사진으로 찍어 위챗에 올렸더니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한시간 만에 60여명이 다녀가는 새로운 기록을 돌파하기도 하였다. / 신기덕 (다음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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