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장백산아래 약수동에 다녀오다(하)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1-21 10:20:47 ] 클릭: [ ]

 

철리를 계시한 채발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하여 강선모씨는 마을 옆을 감돌아 흐르는 두도백하에서 전날 저녁에 강물에 대놓은 물고기발을 거둬들이고…”

 
병풍바위와 두도백하

기자가 쓴 이 한구절 때문에 약수동의 배낭려행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이미 밝혔다. 우리는 약수동에 도착하여 우선 점심 식사를 하게 되였다. 식사가 끝나 우리가 제일 먼저 알아본 것이 채발을 어디에 놓는 가였다. 강의 물은 많지 않았다. 우리의 종아리까지나 올 깊이였다. 강의 한쪽에 채발을 놓을 수 있는 틀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채발은 거둬져 강언덕에 놓여 있었다. 내가 급히 강선모아저씨를 찾아 채발을 놓지 않는 원인을 물어보자 고기 밸을 딸 시간이 없어서 발을 거뒀다는 것이였다. 우리가 고기밸을 따겠다는 조건으로 채발은 다시 놓여졌다.

약 세시간이 흐른 후 우리가 다시 채발을 가볼 때에는 고기가 둬사발은 실히 들어있었다. 고기는 다 6~7센치나 좀 넘는 고기들이였고 제일 크대야 10센치나 될 만한 크기였다. 우리는 우선 작은 고기들을 골라내여 다시 강에 놓아주고 고기밸을 따기 시작했다. 고기종류는 다양하였는데 버들치도 있고 빠돌치도 있고 혹 미꾸라지도 보였는데 대부분이 ‘써거리’라고 불리우는 고기였다. 이 고기는 다 자라도 7센치메터 좌우라고 한다. 우리 고향에 많은 돌쫑개는 보이지 않았다. 고기가 많이 내릴 때에는 하루밤새 10근은 실히 된다고 한다.

 
통발로 고기를 잡는 강선모아저씨

채발을 놓을 수 있고 고기를 잡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대만족이였다. 하지만 하늘의 풍운조화는 알 길이 없다고 이튿날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자 너무 놀라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비도 내리지 않았는데 물이 어제보다 10배는 불어있었다. 강선모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우에서 땜의 물을 빼는 것 같다고 하였다. 하루밤 새에 불어난 강물 때문에 채발은 보이지도 않고 채발을 놓았던 자리는 사나운 파도에 삼키우고 말았다. 채발은 물에 떠내려간 것이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강선모아저씨는 절대 떠내려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물은 급히 불어나던 것처럼 급히 줄어들었다. 나흘째 되는 날에는 물이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되였는데 채발은 기적 같이 원자리에 놓여있었다. 그 사나운 파도에도 밀려가지 않고 제자리를 굳건히 지킨 채발을 다시 보노라니 머리에 떠오르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우리의 생활과 인생도 강물과 같아 언제 어디서 파도가 덮쳐올지 종잡을 수 없다. 이때 우리는 채발을 본 받아 그 거세찬 파도를 받아넘기고 자기의 자리를 굳건히 지킨다면 평화는 곧 찾아올 것이다. 말할 줄도 모르는 채발이 나에게 주는 계시는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오묘한 것이였다.

마음이 담겨진 음식

약수동에 있던 한주일간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든 것이 바로 크게 불어난 식욕이였다. 등산하느라 걸어다닌 원인도 있겠지만 음식 맛이 너무 좋아 식사량을 줄일 수가 없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도 그 맛이 일품이였지만 입맛을 돋구는 산나물반찬과 말린 물고기튀김은 그 맛을 형용하기가 어렵게 맛이 훌륭했다. 그리고 집에서 절인 마늘지와 사자고추(大辣椒)지는 그 맛이 특히 좋았다. 내가 식사할 때 그 사자고추지를 하도 즐겨먹었더니 아주머니는 내가 떠나올 때 그 사자고추지를 퍼그나 보내주었다. 밝히기 좀 무엇하기는 하지만 그 사자고추가 너무도 많아 한달간이나 먹을 수 있었다. 참으로 순수한 인정에 그저 더없이 감동할 뿐이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경영하는 이 작은 음식점의 음식은 아주 소박하고 색채도 그닥 아름답지 못하지만 중국과 한국에 소문이 자자하다. 중국의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의 음식프로에 올라 그 이름을 빛냈고 한국의 KBS방송의 ‘한국인의 밥상’프로에 올라 그 이름을 날리게 되였다. 하여 지금 이 집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단골손님이 위주이지만 텔레비죤을 통해 알고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가 있는 기간에도 손님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많을 때에는 여섯상의 손님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산나물을 구입한 후 저장하는 장면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손님들에게 차려올리는 음식은 언제나 동일한 음식이다. 산나물 몇가지에 말린 물고기볶음, 그리고 조선족식 닭곰, 때에 따라서는 푹 삶아 느끼하지 않게 만든 육류가 오르기도 하였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토 닭알과 오리알, 게사니알이다. 이 집에서는 개를 기르기도 하지만 닭과 오리, 게사니를 많이 기르고 있다. 이렇게 자기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드는 음식이라 손님들이 적을 수 없는 것이다. 토 닭알이여서일가 닭알튀김의 맛이 확실히 좋았다.

음식 맛은 갖은 양념들도 내겠지만 가장 깊고 본질적인 맛은 정성이 들어가야만 낼 수 있다고 한다. 음식에 마음이 녹아들지 않았을 때 깊고 여운을 남기는 맛을 절대로 낼 수 없다고 한다. 강아저씨와 김아주머니는 음식에 온갖 정성을 담는다. 아저씨가 닭을 잡아 손질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참으로 기울이는 그 진지한 정성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원인에서일가 약수동에 있는 세집 가운데서도 아저씨네 집을 찾는 사람이 특히 많다고 한다.

음식점을 경영하는 강선모 김룡순 부부

향기가 그윽한 꽃술

술에 대해 누구나가 아는 바가 적지 않다. 모태주나 오량액, 수정방과 같은 명주를 포함하여 우리가 즐겨마시는 여러가지 술을 몇가지 씩은 알고 있다. 나도 원체 술을 즐겨마시는 타입이라 여러가지 술을 많이 마셔보았다. 여러가지 약을 불려 만든 약주는 물론 술에 꿀을 탄 밀주 즉 꿀술도 적지 않게 마셨고 국화꽃을 넣어 만든 국화주도 마셔보았다. 하지만 백여가지의 꽃을 넣어 만든 백화주는 이번에 처음 마셔보았다. 그 맛이 참으로 독특하였다.

60도가 넘는 독한 술에 100가지가 넘는 꽃을 불려 만드는데 아저씨의 소개에 따르면 꽃의 가지수가 100가지 뿐만이 아니고 120여가지가 된다고 한다. 봄철이면 꽃채집에 총동원하여 아예 일년 동안 사용할 술을 한번에 몇백근을 만들어놓는다고 한다. 이 집에 다니는 손님들은 이 꽃술을 마음대로 마실 수 있 되 가져가지는 못한다고 한다. 수많은 아름다운 꽃들이 모여 만들어진 술이란 걸 생각만 해도 입에서 꽃향기가 풍기는 것 같다.

약초

강선모아저씨도 술을 즐겨마시는데 70을 바라보는 어른으로 말하면 아직도 술량이 상당한 축이였다. 하지만 절대 량을 초월하여 마시는 모습은 보지 못하였다. 그는 술에 대해 아는 것이 특히 많았는데 그가 이야기할 때면 술에 대한 미니강좌를 시청하는 느낌이였다. 그의 말을 통해 안 바지만 그는 뱀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가지 약재로 만든 술은 마실 수 있으나 그 어떤 동물을 불려 만든 술은 아예 마시지 않는단다. 나도 그와 같은 립장이라 많은 수긍이 갔다.

술을 마신 날이면 우리는 아저씨를 모시고 우리가 주숙하는 방에서 조선족장기를 두곤 하였는데 어찌 되다보니 우리 넷의 수준이 어슷비슷한지라 참으로 재미 나고 격렬하였다. 우리 넷은 두편으로 나누어 말하기가 없는 벙어리장기를 두었는데 참으로 재미 있었다. 꽃술의 향기가 장기판에서도 풍겨오는 느낌이였다. 우리가 함께 약수동으로 간 세 사람은 누구도 아침에 술을 마시는 습관이 없기에 륜번으로 아저씨를 동무하여 술을 마시곤 하였는데 우리의 그 아름다운 행위에서도 아름다운 꽃의 향기가 풍기는 것 같았다. 꽃술의 그윽한 향기가 지금도 입안에 가득하다.

입맛을 당기는 꽃술

가정의 당당한 식구

우리가 연길시에서 최창룡 사장의 차에 앉아 약수동으로 갈 때 최사장이 특히 강조하여 약수동에는 뱀이 많다고 강조하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내가 살던 고향에도 여러가지 뱀은 많았지만 그렇게 두렵지는 않았었다. 그냥 검정귀버섯을 채집할 때 우연히 한두마리의 뱀을 만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약수동에 도착해서도 하루에 한두마리의 뱀을 만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였는데 내가 뱀이 많다는 소식을 위쳇에 올리자 나의 녀동생이 뱀을 만나면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내달라는 어딘가 좀 과분한 요구를 보내왔다. 하여 내 친구도 영상촬영하고 나도 촬영하였는데 그 뱀들은 길이가 두메터는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 고향의 뱀들은 대개 늘메기가 아니면 독사거나 살모사인데 약수동의 뱀들은 다 우리 고향의 독사와 같은 뱀의 색갈을 띠고 있었다. 내가 저 뱀들은 독사가 아닌가고 묻자 아저씨는 독사도 있고 늘메기도 있다고 하였다. 내가 우리 고향의 늘메기는 다 푸른 색을 띠고 있다고 말하자 그는 늘메기도 살아가는 고장의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색갈을 띤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뱀들도 령성이 강한 동물이여서 사람이 먼저 지껄이지 않으면 절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아저씨 집이 있는 주위에는 뱀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우리는 약수동을 떠나기전에 유람객들이 체면 없이 아무 곳에나 버려버린 쓰레기들을 주어 태워버리자는 의논을 하고 인츰 행동에 옮겼다. 나의 친구 두분은 길가와 강가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모으고 나는 주로 집주위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처리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집주위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한시간 남짓한 동안에 무려 여섯마리나 되는 뱀을 보았다. 담이 작은 친구분들이 이곳에 오면 필요한 중시를 돌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집주위의 뱀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창룡 사장의 말에 따르면 그가 약수동에 와서 마당에 앉아 봄볕을 즐기는데 두메터는 실히 될 만한 뱀 한마리가 스륵스륵 기여와서는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두메터도 안되는 거리에서 자기를 빤히 쳐다보면서 봄볕을 즐기다가 기여가더라고 한다. 뱀들도 이젠 이 집의 일원으로 된 양 사람들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강아저씨는 어느 때엔가 뱀술을 만든다고 뱀을 잡으려는 손님을 그 자리로 쫓아버렸다고 한다.

인간을 믿고 인간을 해치지 않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나 어떤 경우에는 좀 과분한 행위도 서슴없이 저지른다고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은 나머지 길에 나와 쭉 엎드려서는 잠을 잔다고 한다. 이 뱀 때문에 차가 지나갈 수 없어 경적을 울리고 나무막대기로 뱀을 길가로 몰아내고서야 차가 웁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크크크…, 세상이 넓다보니 벼라별 일도 다 생기나보다.

주인집 부부와 우리 일행이 함께 남긴 기념사진

미움을 자초한 손님

약수동에서 며칠을 보내다보니 아저씨와 아주머니와 친해져 적지 않은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나누게 되였다. 어느날 저녁식사 때 아주머니가 우리들의 행실이 바르기에 참 좋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였다. 평소에 웬만해서는 사람들을 주숙하게 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이번만은 두사람이나 소개하기에 그냥 주숙을 허락하게 되였다고 밝혔다. 그 때를 놓지지 않고 내가 그럼 어떤 손님들이 미운가고 묻자 아주머니는 몇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밉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부 손님들은 절제할 줄 모르고 술을 마신다고 한다. 몇몇 친구들이 모여와서는 술을 마시는데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키기에 참다운 휴식을 할 수가 없어 이튿날 사업에 큰 지장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손님은 령혼이 다 망가져 마치 기생집에나 온듯이 드러내놓고 녀복무원을 불러 자기의 수청을 들라고 요구한다고 한다. 이런 쓰레기 인간들은 원래 한주일을 있게 되여있지만 이튿날 아예 사정없이 쫓아버린다고 밝혔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자기가 잘난듯이 아가씨 행세를 하거나 도련님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밉다고 하였다. 이 집에 손님으로 온 사람들 중에는 부급 간부거나 성급 간부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분들이 오면 특히 조용하고 말도 아주 문명하게 한다고 한다. 오히려 속에 든 것이 없는 젊은놈들이 와서 괜히 우줄렁거리며 못난 행세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집 주위에 와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는 사람들 중에는 채발에 든 고기를 한마리도 남기지 않고 가져가는 몰렴치한 사람들이 있는데 참으로 꼴불견이라고 한다. 그 어느 분이든지 아저씨나 아주머니를 보고 고기를 좀 줄 수 없는가 묻는다면 그들은 한번도 거절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손님으로 가거나 려행객으로 가거나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경계선이 있는 법이다. 일단 그 선을 넘어서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번에 우리 셋은 다 교육사업 일군들이라 누구보다도 이 방면의 요구가 높아 절대 주인집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도리여 주인집을 도와 옥수수 껍질도 벗겨주고 고기밸도 따주고 환경청소도 해주어 퍼그나 좋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나의 훌륭한 그 친구들이 참으로 고맙다.

나의 훌륭한 친구들 (모아산에서)

료양을 동반한 려행

엄숙한 의미에서 말하면 려행과 료양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아주 간단한 의미로 알아보아도 려행사라고 부르지 료양사라 부르지 않으며 료양원이라 부르지 려행원이라 부르지 않는다. 려행의 참뜻은 돌아다니며 본다는 뜻이고 료양은 한곳에 머물면서 휴식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가 약수동에 다녀온 것은 려행과 료양이 결부된 것이였다.

우리가 약수동에 갈 때 연길에 들려 모아산 등산을 하고 이도백하로 가는 도중 멋진 경치를 만나면 차를 세우고 잠간 감상하기도 하였다.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돈화에 들려 친구 두 분을 만나보고 아름다운 광장 두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약수동에서는 멋진 병풍바위를 감상하고 등산 길에 나름의 멋을 갖춘 원시림을 관찰하고 자기의 규모를 갖춘 6호 약수물도 찾아가 보았다.

우리가 약수동에 도착해서는 많은 강렬한 운동은 피하고 참다운 휴식을 취하기에 노력하였다. 나는 금방 출제 때문에 48일간 갇혀있다가 나왔기에 심신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참다운 휴식이 필요했다. 하여 나는 될수록 조용한 환경 속에서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저기 려행을 다니다보면 감상의 즐거움과 동시에 엄청난 피로가 쌓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기에 료양이 위주라면 휴식을 첫자리에 놓아야 하고 가고 오는 도중에 려행의 즐거움을 즐기는 것에 만족하여야 한다.

지금 적지 않은 분들이 겨울을 해남도에 가서 보내군 한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갈 때 려행을 하거나 올 때 려행의 형식을 취하며 해남도에서는 료양의 형식을 취한다. 이것 역시 채납할 만한 방법이다. 려행과 료양을 결부시키는 방법은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널리 사용할 수 있다. 신강 려행길에 어느 한지방에 들려 3일이나 4일을 휴식하면서 잠시간의 료양을 즐길 수 있고 사천 려행길에서는 맛 나는 음식을 즐기면서 한단락의 료양시간을 가질 수 있다.

나오는 말

이번의 오지 배낭려행을 통하여 나는 려행과 료양에 대해 얼마간 알게 되였고 금후의 국내려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좀 더 신심이 생기게 되였다. 려행과 료양을 유기적으로 결부시키면서 즐길 수는 없을가? 어찌 보면 하나의 과학연구 과제와도 같아보인다. 이번 오지 려행 내지는 오지 료양은 나의 삶에서 아주 유익한 체험이였다. 그리고 배운 것도 많았다. 글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 이번 오지에 함께 다녀온 친구들이 그립고 약수동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그리우며 길림신문사의 기자와 최창룡 사장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못 잊을 약수동이 그리워진다. 아, 자연이 숨쉬는 약수동이여!!

/신기덕

0

관련기사 :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