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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웅 “중국선수들을 계속 응원할 터”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4-06 14:02:33 ] 클릭: [ ]

-“나는 이 운동원들이 아깝고 이 열정이 아깝고 나를 관심하는 관중들도 아깝다.”

체육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송세웅과 중국녀자배구를 련계시키게 된다.

가가호호에서 다 알고 있는 체육경기 해설원 송세웅은 두세대 배구팬들의 ‘눈과 귀’가 되였는데 그의 높고 격앙된 목소리는 중국 녀자배구팀의 ‘5련패’의 휘황과 더불어 1980년대의 전민기억이 되였다.

82세의 송세웅은 중국신문넷 기자의 취재를 받을 때 여전히 중국 녀자배구팀의 발전을 관심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보다 21살 어린 현임 중국 녀자배구 감독 랑평을 우상으로 여기고 있으며 “나는 이 운동원들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송세웅은 1978년 제8회 아세아운동회 때부터 랑평을 알게 되였다. 그후부터 그의 직업생애는 모두 중국녀자배구와 함께 하였다.

자료사진:송세웅. (사진래원: osports전체육도편사)

1980년대 중국 녀자배구팀의 국제경기 전부는 모두 송세웅의 해설로 완성되였다. 그는 한차례 또 한차례 녀자배구팀의 승리를 텔레비죤앞을 지키고 있는 중국관중들에게 전달하였다. 송세웅은 중국 녀자배구 배후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으며 그는 자기의 해설로 중국 녀자배구가 천가만호에 알려지게 하였다.

중국 녀자배구가 1981년 처음으로 세계컵 우승을 따냈을 때 옆에 있은 송세웅의 격동된 정서는 말과 행동에서 넘쳐났다. 그때의 정경을 회억하면서 고령의 송세웅은 아직도 중국 녀자배구팀과 일본 녀자배구팀 매개 선수들의 이름을 준확하게 말했다.

 
사진: 1981년 녀자배구 세계컵 결승경기 현장.

그에게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쌍방의 최후 대진이였다. 중국 녀자배구가 14:15로 뒤진 정황하에서 랑평이 스매시 스파이크(抄手扣球)로 써브권을 되찾았다. 두팀은 몇회합의 공방전을 벌였고 중국 녀자배구팀이 두차례의 블로킹(拦网)에 성공하면서 17:15로 전반경기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중국 체육사상 리정비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는데 중국 녀자배구가‘5련관’을 획득하는데 기초를 다져주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체육의 ‘3대 구류(三大球)’세계우승 령기록을 깨뜨렸다. 송세웅은 당시 이렇게 말하였다. “정말 쉽지 않았다.”  

경기후의 시상식에서 송세웅은 현장에서 격동에 넘쳐 말했다. “시인들이여, 그대들은 시로 우리의 녀자배구팀 처녀들을 찬미하고 작가들이여, 그대들은 문장으로 우리의 녀자배구팀 처녀들을 노래하라.”

몇년전 진가신이 감독을 맡은 영화 《우승》을 기획할 때 송세웅은 다시 한번 요청되여 1981년의 결승경기를 록음하였다. 시공간을 넘어 당시의 “경기장”에 돌아간 송세웅은 이렇게 말하였다. “당년의 그 경기장면들이 하나하나 눈앞에 나타났는데 정말 사람의 심금을 울려주었고 뜨거운 눈물이 눈시울을 가득 채웠다.”

 
사진: 송세웅이 제2회 녀자배구 아세아선수권대회를 회억하고 있다.

그후의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 1984년 로스안젤스 올림픽대회, 1985년 세계컵과 198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송세웅은 모두 현장에서 중국 녀자배구팀의 우승을 견증하였다. 대원이였던 랑평이 한차례 또 한차례 경기장에서 도약하여 진공할 때면 송세웅은 “중국의 ‘쇠주먹’이 벼락이 떨어지듯 매질한다.”고 랑평의 스파이크를 형용하였다. ‘쇠주먹’이라는 별명은 점차 랑평의 대명사로 되였다.

그러나 랑평은 처음엔 이 별명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랑감독은 이 별명이 너무 단단하여 앞으로 배우자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후에 모두 이렇게 부르자 랑감독도 접수하였다. 우리는 좋은 친구였고 막역지교이다.” 송세웅은 웃으면서 말했다.

 
자료사진: 2019년 녀자배구 세계컵에서 중국 녀자배구가 우승하였다.

송세웅과 랑평은 40여년의 교분이 있다. 중국 녀자배구팀 대원으로부터 오늘의 중국 녀자배구팀 감독으로 되기까지 송세웅은 풋풋한 햇내기로부터 강자로 탈바꿈한 랑평을 지켜보았다. 그가 보기에 랑평은 중국 녀자배구팀 감독의 둘도 없는 인선이였다. “그녀는 운동원이였을 뿐만 아니라 감독이였으며 국외에서 감독을 맡았었다. 그녀는 국제화의 리해가 깊기 때문에 그의 주도사상은 계승과 발전, 개혁과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다시 중국 녀자배구팀의 지휘권을 잡은 랑평은 과감한 개혁을 진행하여 중국 녀자배구에 가장 선진적인 배구 리념을 가져다주었다. 송세웅은 현재 녀자배구에서 강조하는 키골의 고대화와 남자식 타법은 세계배구운동의 발전에 부합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랑평의 인솔하에 중국 녀자배구는 다시 한번 세계의 정상에 올랐다.

비록 랑평보다 21살 더 많았지만 송세웅은 랑평을 자기의 우상으로 여겼다. “그녀는 비범한 인물이고 나는 그녀를 매우 경복한다.”

취재 당일 활동 현장에서 자리에 앉을 때 송세웅은 직접 랑평의 앞을 지나지 않고 랑평의 뒤쪽을 에돌아 자기의 자리에 갔다. 그는 “이는 랑평감독에 대한 존중이다.”고 말했다.

 
사진: 송세웅이 중국 녀자배구팀 대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체육해설원사업에 종사한 근 반세기동안 송세웅은 줄곧 녀자배구팀의 골수팬이였다. 2019년 중국 녀자배구팀을 찾아 갔을 때 80세의 송세웅은 20여살의 젊은 대원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였다. 그는 “당신들에게 축복을 드리며 광대한 팬들을 대표하여 허리 굽혀 인사합니다.”고 말했다.

1970년대 송세웅은 한때 녀자배구팀 처녀들과 함께 먹고 함께 있으면서 로동하였었다.

시간은 흘러 40여년이 지났지만 그의 중국 녀자배구에 대한 감정은 더욱 커가기만 하였다. “지금 나이가 많지만 운동선수들에게 매우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운동선수들이 아깝고 이 열정이 아깝고 나를 관심하는 관중들도 아깝다. 기회가 있으면 나는 계속 중국 운동선수들을 응원할 것이다.”

/출처: 중국신문넷, 번역: 김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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