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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따라 강따라17] 황구연로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9-07 18:15:15 ] 클릭: [ ]

하룡수평은 황구연로인이 살던 마을이다

룡정시 팔도향 룡수평이 지금은 연길시 소영진 오봉촌 7조로 완전히 이름을 바꾸고 있었다. 지명은 엉뚱하게 바뀌였으나 다행히 마을 동구밖에 과거의 지명을 새긴 ‘하룡수평’돌비석이 남아 있어서 쉽게 마을을 찾을수 있었다.

‘룡수평’,이곳은 ‘단마르크’ 하면 저명한 동화작가‘안데르센’이 생각나는 것처럼 ‘중국조선족의 이야기대왕 황구연’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의 고향’이다.

황구연은 김덕순, 차병걸과 함께 ‘중국조선족 3대 이야기군’임과 동시에 ‘중국10대 민간이야기 구연대가’에 이름을 올린 대단한 이야기군이다. 황구연이 옛이야기들을 구술한 시기는 1983년부터 1987년까지 불과 5년사이인데 그동안 26차에 걸쳐 김재권과 연변민간문예가협회 박창묵, 박찬구 등에게 무려 1300여편의 이야기들을 구술했다고 전해진다.

지명지에 따르면 룡수평은 마을을 감돌아 흐르는 구수하가 구불구불 흐르는 것이 마치 룡처럼 생겼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연길시에서 삼도만진으로 가는 연삼(延三)도로를 따라 30킬로메터쯤 가면 유서깊은 ‘삼형제바위’가 보이는데 여기서 서쪽방향으로 갈라진 길을 따라가면 구수하를 건느는 다리가 나진다. 이 다리를 넘어가면 상룡수평과 하룡수평으로 나누어진 오붓한 시골마을 룡수평이 나타나는데 황구연은 남쪽의 하룡수평에서 살았다.

룡수평에 들어서서 보니 북쪽으로는 유서깊은 항일전설이 깃들어있는 병풍바위가 우뚝 마을을 지켜섰고 각일각 깊어가는 계절속 오곡백과 익어가는 향기와 구불구불 마을을 감돌아 흐르는 여울소리 또한 귀맛좋아 전설속 동네인듯 오붓함을 더했다.

마을 뒤켠에 우뚝 솟은 병풍산이 지켜선 오붓한 마을

마을에 당도하니 마침 60대의 한 촌민이 뚝딱뚝딱 옥수수 다락을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황구연의 옛집에 대해 문의했더니 뜻밖에도 바로 옆자리의 텅빈 집터를 가리켜 보였다. 불과 2~3년전에 허물어 버렸다는것이다. 황구연의 집터는 오래전에 이미 어떤 시내사람에게 팔렸고 집을 구입한 임자가 무슨 시설을 짓는다면서 집을 허문후 지금까지 공터로 남아 있다는것이였다. 잡초가 무성한 텅빈 집터를 마주하고 보니 착잡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가득했다. 한때는 학계에서 황구연의 옛집을 포함한 룡수평에‘황구연이야기마을’건설 주장도 나왔다는데 여러가지 원인으로 마을이 건설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냥 옛집이라도 보존되여 있었으면 상당한 문화적 의미가 있지 않았을가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황구연이 살던 옛집은 이미 잡초가 무성한 빈터로 남아 있다

사실 룡수평에 찾아 오기전까지는 황구연 옛집에 대한 커다란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로인이 한두컬레도 아니고 무려 1,000컬레도 넘는 방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 전설의 탄생지가 아닌가?! 로인은 비록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살았던 옛집에서라도 과거 황구연로인의 흔적이나 묻혀있던 숨결이라도 찾고 또 더듬어 볼수 있지 않을가 하는 소망과 상상때문이였다.

길림성민간문예가협회 비서장으로 사업했던 조보명선생은 지난세기 80년대에 전문가와 학자들을 이끌고 황구연을 찾았는데 그의 집 퇴마루에 앉아서 그가 들려주는 조선족 민간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나서 황구연이야말로 걸출한 ‘민간문화계승인’임을 인증하고 직접 황구연에게 ‘민간구연표현예술가’증서를 수여하였다고 한다. 퇴마루가 딸려 있었을 황구연의 옛집과 백발수염을 쓰다 듬으면서 구수하게 이야기끈을 풀어 나갔을 황구연의 모습이 담겨있었던 옛집이 지금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기에 더욱 아쉬웠다. 과연 력사,문화적가치가 있는 옛건물들에 중시를 돌리지 못하고 이대로 관심없이 아무렇게나 처리해도 좋은것인지 묻지 않을수 없다.

오봉촌에서 태여나고 자란 조춘국(69세)씨는, 황구연이 풍채도 좋고 멋지게도 생겼다면서 젊었을 때 많이 돌아다녔는지 박학다식하고 견문도 많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조선말과 일본말은 물론 한어도 잘했다고 한다. 황구연집에는 일반 사람들은 읽기 힘든 고서체와 번자체 옛날 책들도 매우 많았던 기억이 난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세기 80년대 당시, 구수한 이야기주머니를 풀고 있는 황구연(가운데)

사료에 따르면 1909년 2월 27일에 한국의 경기도 양주군에서 출생한 황구연은 조선시대 황희 정승의 22대 손이며 어렸을 때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어도 배웠고 농업전문학교에서 농업기술도 배웠다. 1937년도에 중국에 이주한후에는 경찰학교도 다녔고 목단강, 사평, 연변 각지 등 여러 곳을 떠돌아 다니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해방후에 룡정에 정착해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황구연이 받은 교육과 지식구조로 보아 그는 철학, 력사, 문학, 의학, 농학, 법학, 언어학에서 상당한 수준에 있었고 민속학, 종교학, 풍수지리에도 능하고 조선어, 한어, 일본어도 마음대로 구사할수 있는 수준이였다고 한다. 그의 복잡한 인생경력과 신분은 그의 설화구술에 작용했는바 서민의 로고와 고충을 직접 겪었기에 생활과 의식을 이야기속에 잘 담을수 있었다고 학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룡수평촌 토박이인 동상헌(67세)씨도 황구연로인에 대한 추억들을 터놓았다.

1979년도에 새집을 지을 때 황구연로인이 집짓는 구경을 하면서 그에게 “집짓는 목수는 잘 먹여야 한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더라는 것이였다. 옛날 한 마을에 집짓는 목수가 하나 있었는데 집짓는데 쓸 지붕틀을 하루에 몇 개씩 만들어서 내놓았다. 그런데 집주인이 목수에게 술과 고기로 잘 대접하니 그후부터는 지붕틀을 이틀에 하나씩 만들어 내더라는것이였다. 그 연고를 알고 보니 처음에는 대충대충 만들어 냈지만 잘 대접받으니 ‘먹은 소가 똥을 눈다’고 목수도 시간과 품을 아끼지 않아 든든한 집을 지을수 있게 되였다는 이야기였다.

동상헌씨와 그가 1979년도에 지었다는 집

동상헌씨는 1981년도에 딸을 낳았을 때 이름을 ‘미자’라고 지었는데 학식이 있는 황구연로인을 찾아 이름을 여쭤본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자 황구연로인이 “녀자애들 이름은 여러 사람이 부르기 수훨해야 잘 지은것이야, 잘 지었어…”하고 말해주더란다. 그러면서 조선팔도에서는 유독 세 사람의 이름이 가장 천시지리에 잘 맞는 좋은 이름이라고 했다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을사람들이 기억하는 황구연은 저녁이면 모기불 피워놓고 마을사람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런 전설속의‘이야기대왕’이 아닌 평범한 마을의 좌상이고 유식한 동네 어르신이였던 것 같았다.

마을의 적지 않은 로인들은 황구연 로부부가 80년대 중반 회혼례를 치르던 그때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는데 온 마을에 경사가 난것처럼 대단히 흥성흥성했다고 추억했다. 그때까지만해도 결혼 60주년을 맞이하여 쇠는 회혼례를 치르는 로인들이 많지 않았기에 황구연로인의 회혼례는 룡수평은 물론 전 연변에서도 크게 알려지고 소문이 났던 기억이다. 그런데 무정한 것이 세월이라더니 황구연로인의 자식들중 딸 한명을 내놓고 아들 둘은 이미 모두 저 세상 사람이 되였다고 한다.

민간이야기가 황구연의 묘소

황구연로인의 묘소는 마을과 그리 멀리 않은 서산 언덕의 이깔나무숲속에 있었다. 묘소로 가는 길에는 무수한 야생 산비둘기가 인기척에 놀라 숲속을 천방지축 날아예는데 문득 이곳과 지척에 있는 오봉촌 입구의 발합라즈(鹁鸽砬子)라고 불리우는 큰 바위가 생각났다. 과거 바위에 비둘기가 많이 살아서 그렇게 불리웠다고 한다. 이 고장에는 지금도 비둘기가 대를 끊지 않고 옛날처럼 그렇게 많이 모여살고 있는 것 같았다. 산발을 타고 500메터나 갔을까 할 때 낮다랗고 하얀 대리석비석이 나타났고 무성한 잡초속에 묻힌 황구연의 묘소가 나타났다. 거기에는 ‘민간이야기가 고 황구연의 묘’라고 씌여져 있었다. 이 묘비는 길림성민간문예가협회와 연변민간문예가협회에서 1989년도에 세운것이라고 한다.

황구연로인은 1987년 12월 15일에 세상을 하직하였는데 림종을 앞두고 “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바닥이 날려면 아직 멀고도 멀었다네…”하면서 매우 아쉬워 했다고 한다.

쓸쓸한 무덤가에는 이곳저곳에 철맞춰 이깔버섯들이 탐스럽게 돋아나 있었는데 마치 황구연로인이 못다한 이야기들을 해묵은 버섯에 피워올려 세상에 알리는듯 싶은 느낌이 들었다. 싱싱한 버섯 몇 개를 이야기 주워담듯 따가지고 돌아서면서 왜선가 황구연로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선족민속문화를 전승,발전시키는데 있어서 황구연과 그가 살았던 룡수평은 언젠가는 반드시 조명받고 각광받는 우리 민속문화의 소중한 부호가 될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때문이다.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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