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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리진민, 리창일

심영옥 길림신문 2021-11-08 12:27:37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1. 성급 중공 지도간부

리진민(李振民, ?—1933): 중공만주성위원회 위원 겸 만주성당위원회 소수민족운동위원회 서기

본성은 김씨이며 1928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30년 8월 만주총행위원회 위원 겸 소수민족운동위원회 책임자로 되였고 1930년 11월 중공만주성위원회 위원이 되였으며 1931년말에 할빈에 온 후 계속 중공만주성위원회 위원 겸 만주성당위원회 소수민족운동위원회 서기로 사업하였다. 당의 소수민족정책을 잘 관철하기 위해 조선족들이 집중되여있는 곳의 지방 당조직 건설 뿐만 아니라 만족, 회족, 몽골족, 오르쳔족 등 소수민족들의 혁명투쟁에 대해서도 관심을 돌리고 지도를 하였다. 특히 조선족 당원 간부들에게 타민족과의 공동 투쟁을 위해 한어를 잘 배울 것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할빈에 온 후 어둡고 습기 찬 지하실에서 생활하면서 혼자서 한어(일어, 영어도 잘함)로 된 만주성당위원회의 각종 문건을 조선어로 번역하고 손수 강판글을 썼으며 인쇄까지 하여 당의 문건 정신이 제때에 조선족이 많은 당조직과 당원들에게 정확히 전달되게 하였다. 1933년에 혁명활동이 탄로나자 성당위원회에서는 그에게 활동을 적게 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렇게 활동하던중 1933년 여름 할빈에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여 옥중에서 피살되였다. (자료 출처: 《할빈시조선족백년사화》, 《중국공산당흑룡강성조직사자료》)

리창일(李昌一, 1902—?): 중공만주성위원회 위원, 중공동만특별위원회 조직부 부장

력사문헌자료에는 리창일(李昌日), 최창일(崔昌一)로도 나오고 있다. 1902년에 조선 함경북도 경원에서 태여나 길림성 북간도에서 중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혁명활동에 참가하였다.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중공류하현위원회 서기가 되였다. 11월에 중공남만성위원회를 결성하고 서기가 되였으며 중공만주성위원회 위원이 되였다. 1931년 10월, 중공동만특별위원회 조직부 부장이 되였다. 같은 달 쏘련혁명기념일을 맞아 연길현에서 반일무장봉기를 지휘하던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여 1933년 12월 경성 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자료 출처: 《중국공산당길림성조직사자료》 등)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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