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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백모, 손영호

심영옥 길림신문 2021-12-03 13:33:09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1. 성급 중공 지도간부

백모(白某, ?—?): 중공만주성림시위원회 후보집행위원, 소수민족운동위원회 서기

1933년 4월부터 7월까지 중공만주성림시위원회 후보집행위원을 지냈고 1933년 4월부터 5월까지 중공만주성림시위원회 소수민족운동위원회 서기를 지냈다(《료녕성조직사자료》에서는 이 백모가 바로 라백선(罗白先)이며 이 라백선은 1932년 10월부터 1933년 7월까지 만주림시성당위원회 비서장을 지냈다고도 기록하고 있다). (자료 출처: 《중국공산당료녕성조직사자료》, 《중국공산당흑룡강성조직사자료》)

손영호(孙永浩, 1914―1939): 중공남만성위원회 위원,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군부 총무처 처장

류영호(刘永浩), 류좌건(刘佐健, 《중국공산당길림성조직사자료》 등 한문 자료에는 류좌건으로 나온다) 등 이름을 썼으며 1914년에 조선 함경북도에서 태여나 부모를 따라 길림성 화룡현(지금의 룡정현) 덕신 금곡으로 이주했다. 16살 나던 해에 길림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고 9.18사변 후 신분이 폭로되여 화전, 반석 일대로 이동했다. 1932년초, 남만에서 중공반석중심현위의 지도하에 공청단 사업을 책임졌고 1934년에 반북, 버리하투, 괴자항 등지에서의 공청단구위원회의 설립을 주도했다. 반석과 해룡에서 각지 조직을 도와 반일회를 발전시켰으며 농민자위대와 청년의용군의 설립을 적극 지원했다. 몽강, 화전, 휘남 등지에 내려가 대중 무장을 발전시켰으며 우수한 청년들을 동북인민혁명군에 용약 참가시켰다. 1935년 겨울, 청년단남만특별위원회 서기가 되였다. 1936년 6월, 중공남만성위원회 위원 겸 청년부 부장이 되였고 7월에 항일구국청년단남만총회 서기도 겸임하였다. 1937년에 반석, 이통, 청원, 도풍, 서안, 해룡, 금천, 휘남, 몽강(지금의 정우현), 관전, 환인, 집안, 림강, 무송, 화전, 통화와 신빈 등 각 현에 청년지하조직을 설립하고 길해철도 연선의 철도로동자들 가운데서 항일지하조직을 설립하여 남만의 항일유격투쟁을 힘 있게 지원했다. 1938년 7월, 제1로군 군부 총무처 처장이 되였다. 1939년말, 돈화 대포시하전투에서 전사했다. (자료 출처: 《동북인물대사전》, 《중공연길현영웅렬사명록》, 《중국공산당길림성조직사자료》)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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