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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 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양림

심영옥 길림신문 2021-12-03 13:47:44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1. 성급 중공 지도간부

양림(楊林, 1898—1936): 중공만주성위원회 위원 겸 군사위원회 서기

본명은 김훈(金勛)이고 양림(楊林), 양주평(楊州平), 양녕(楊宁), 필사제(畢士弟) 등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조선 평안북도 출신으로 평양에서 중학교에 재학중 3.1운동에 참여했다. 그 해 가을 조선 국내에서 활동하기가 어려워 길림성 통화현 하니하(哈泥河)로 옮겨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해 이듬해 5월 졸업했다. 그 후 왕청현 서대파 십리평으로 가서 북로군정서에 합세하여 사관련성소 구대장, 교성대 소대장이 되였다. 10월에 청산리전투에 참전하여 한개 중대를 지휘하였고 그 후 여러 독립군 부대가 밀산을 거쳐 로씨야 경내로 전이하자 운남 곤명에 가 운남강무학당 제16기생이 되였고 1924년초에 졸업했다. 1924년 5월, 황포군관학교 훈련부 기술주임이 되였다. 1925년 1월 이후 집훈처 교관을 맡다가 제1차 동정 때 제3기생 학생대대 제4대장이 되였다. 5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11월에 국민혁명군 제4군 독립퇀 제3영 영장이 되였다. 1927년 8월, 안해 리추악과 함께 모스크바 중산대학에 입학하여 정치리론을 1년간 배우다가 모스크바 륙군보병학교에 전학하여 군사지식을 배웠다.

1930년 봄, 중공중앙 군사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중공만주성위원회에 파견되였다. 동북에 온 후 중공만주성위원회 위원 겸 군사위원회 서기가 되였고 만주성당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10월에 중공동만특별위원회의 결성에 참여하고 군사위원회 서기가 되였다. 동만 각 현 당위원회에 군사부를 설치하고 황포군관학교 출신들과 쏘련에서 군사를 배운 적이 있는 간부들을 군사부장으로 배치하여 연변의 유격대 결성 사업을 힘있게 추진시켰다. 1931년 2월 15일, 군사위원회를 지도하여 직접 〈동만유격대사업요강〉을 작성하였다. 이 군사문헌은 글자수가 7,000여자에 달하는데 유격대의 임무와 의의 등 9가지 문제를 일목료연하게 제기하였다. 특히 지난 시기 동만유격대가 발전 장대하지 못한 원인을 분석한 후 대중 발동 문제, 유격대에 대한 당의 령도 문제, 유격대의 전략전술 등에 대하여 새로운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그 후 동만유격대의 사업에 생기를 부여하였다. 1931년 9.18사변 후 중공만주성위원회의 소환령을 받고 할빈으로 가 다시 성당위원회 군사위원회 서기가 되여 동북 범위내의 제반 무장투쟁을 지도하였다. 1932년 4월, 성당위 순시원의 신분으로 남만에 파견되여가서 중공반석현위원회의 사업을 도왔다. 이 기간에 리홍광 등과 함께 하마하자 5.7농민봉기를 조직하여 남만 항일투쟁의 새로운 발단을 마련하였다. 5월, 리홍광이 조직하고 대장으로 있는 ‘개잡이대’를 확대, 발전시켜 반석로농의용군을 결성했고 7월 반석로농의용군을 4개 중대를 가진 대오로 확충시켰다. 남만의 항일무장을 조직한 뒤 동만 4개 현의 항일유격투쟁에 대한 지도도 늦추지 않았다. 1932년 봄과 여름 사이 동만특별위원회와 4개 현의 군사부를 통하여 분산된 지방 유격대를 통일된 현유격대로 발전하도록 이끌었다.

1932년 7월, 중공중앙국 서기이며 중앙쏘베트 로전(勞戰)위원회 주임인 주은래의 지시를 받고 강서 중앙쏘베트구역에 들어갔다. 선후로 강서군구 회창, 심오, 안원 군분구 사령관, 홍군 제23군 군장, 월감군구 사령관, 홍군 제1방면군 제1군단 참모장, 로전위원회 참모장 등 직무를 력임했다. 1933년 3월, 국민당의 제4차 반‘포위토벌’ 전쟁에 참여했고 총병참부 참모장으로 활약했다. 1933년 10월, 중앙홍군대학이 설립되자 이듬해에 군사총교관이 되였다. 1934년 1월, 중화쏘베트 제2차 대표대회에 조선인 대표로 참석하여 주석단 성원으로 선출되였다. 10월, 2만 5천리 장정에 참가하여 중앙군사위원회 간부퇀 참모장이 되였다. 1935년 10월, 섬북근거지에 도착한 후 1936년 2월에 중앙군사위원회의 파견을 받아 황하도하작전의 중임을 맡은 홍군 제15군단 제75사의 참모장이 되였다. 2월 20일, 제75사 제223퇀 제1영을 선봉대로 삼아 도하작전에 나섰다가 적탄에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다가 희생되였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흑룡강당사인물》, 《중국공산당흑룡강성조직사자료》,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등)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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