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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김봉상, 김석봉, 김성도

김정함 길림신문 2022-01-28 10:55:44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3. 시, 지구급 중공 지도간부

김봉상(金凤祥 ?―?): 중공주하중심현위원회 서기

1932년 9월, 중공주하특별지부가 중공주하중심현위원회로 개편되자 서기로 되였다.

(자료 출처:《흑룡강항일투쟁인물록》)

김석봉(金石峰, 1887―1970): 중공길동성위원회 비서처 주임, 중공도남특별위원회 위원

본명이 김상걸(金尚杰)이고 1923년에 고려공산당에 가입했다. 1929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동방대학(모스크바)에서 공부했으며 후에 중공길동성위원회에 파견되여 비서처 주임으로 있었다.

1936년 8월초, 녕안 류수처 주임이 되였고 9월 24일 중공도남 류수부대 부주임이 되였다. 1937년 3월, 중공길동성 도남특별위원회 위원이 되였다.

1938년에 동북항일련군 제4군, 제5군과 함께 서정에 참가했으며 부녀퇀의 사업을 지도하였다. ‘8녀투강’ 사건이 발생한 후 같은 해 11월 22일 림구현 조령진에 은페하였다. 1962년 7월 당적을 회복하였고 1970년 병으로 사망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김성도(金圣道, 1902―1934): 중공동만특별위원회 조직부 부장

별명이 왕개(王盖)이고 김철인(金铁仁)이라고도 했다. 1902년에 조선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태여나 길림성 훈춘현 대황구로 이주했다. 룡정은진중학교에서 공부했고 1926년에 중학교 졸업 후 대황구 북일중학교에서 교사로 있으면서 대황구 삼일(三一)학교 설립에 참여했다.

1927년 2월,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여 만주총국 동만도 간부가 되였다. 1930년 7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8월에 중공동만특별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훈춘현당위원회 결성 준비 업무를 맡았으며 10월에 훈춘현당위원회를 내오고 11월에 서기가 되였다.

1931년 6월, 중공연화현위원회 서기가 되고 8월에 연길현당위원회 서기가 되며 11월에 동만특별당위원회 조직부 부장이 되였다. 1932년 가을, 대황구, 연통립자에서 항일유격근거지를 창설했다.

1933년 10월, 종파주의자로 지목되여 특별위원회 위원 직을 박탈당하며 1934년 1월 민생단원으로 지목되여 왕청현 마림(马林) 남산에서 처형당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연변력사사건당사인물록》,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박문봉

编辑:김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