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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김창근(金昌根)

김정함 길림신문 2022-01-28 11:02:29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3. 시, 지구급 중공지도간부

김창근(金昌根, 1907—1935): 중공반석중심현위원회 서기

왕평산(王平山)이라고도 하며 조선 평안북도에서 태여나 1921년에 부모를 따라 길림성 훈춘현으로 이주했다. 1924년에 룡정대성중학교에 입학했으며 1927년에 반석현 호란진(呼兰镇)에서 소학교 교원으로 있으면서 리동광이 조직한 청년동맹에 참가했다.

1929년에 조선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영길현 오리하(五里河)에 파견되여 당지부 건립 활동에 참가하였다. 1930년 8월, 중공길림(림시)현위원회 결성에 참여하고 책임자가 되였다.

1932년에 괴자항 일대에서 조선족, 한족 농민들을 단합시켜 반일회, 농민회 등 반일조직을 발전시켰으며 농민자위대도 세웠다. 자위대를 거느리고 지주집을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였으며 농민자위대 속에서 골간을 선발해 반석유격대에 보냈다. 이 시기에 농민협회, 반일회, 부녀회, 아동단을 거느리고 양림과 리홍광이 발동한 ‘4.3’, ‘5.1’, ‘5.7’ 농민봉기에 참가하여 과감하게 투쟁하였다.

1933년 5월, 중공괴자항당지부 조직위원이 되여 천합(天合), 점산호(占山戶) 등 반일산림대를 쟁취하는 과업을 수행했다. 1934년 1월, 괴자항특별당지부를 중공괴자항구위원회로 확건하고 서기가 되였다.

일제가 잔혹한 ‘3광정책’으로 산간마을을 모두다 불사르면서 이른바 ‘집단부락’을 세우고 ‘보갑제도’를 실시하자 농민적위대의 골간들로 무장공작대를 묶어세워 놈들의 ‘토벌대’와 어려운 전투를 진행하면서 근거지 보위에 나섰다. 11월에 리동광이 남만성당위원회로 전근되여가자 중공반석중심현위원회 서기가 되였다.

1935년 4월, 반동, 반남지구의 농민자위대의 골간을 토대로 20여명에 달하는 유격대를 조직하여 일본군과 위만군의 거점을 습격하고 악질주구와 변절자를 숙청하면서 반석, 해룡, 이통 등 지구의 항일투쟁을 가일층 발전시켰다.

당해 7월, 동북항일련군 제1군 제2사 부대와 련합하여 홍석립자산 부근에서 위만군을 여지없이 타격하였으며 10월에 홍성립자에서 건강이 회복된 7명의 상병원을 토대로 14명의 대원으로 묶어진 두번째 유격대를 건립하였다.

11월 25일, 제2사 참모장과 함께 40여명의 전사들을 거느리고 영성자에 주둔하고 있는 위만군 기병부대 제13퇀 기총련을 습격하여 많은 무기를 탈취하였다. 12월에 현당위원회 조직부 부장과 함께 이통구당위원회의 사업을 시찰하러 나갔다가 이통 제3구 두도구 대간방자 부근

밀영에서 적들의 포위에 들어 저항하다 적탄에 맞아 희생되였다.

(자료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중국공산당길림성조직사자료》)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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