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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김성득, 김영호,리백성

김정함 길림신문 2022-02-11 14:19:38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3. 시, 지구급 중공지도간부

김성득(金圣得, 1893—?): 중공주하중심현위원회 서기

김백파(金白波)라고도 불렀으며 1927년 11월 흑룡강성 녕안현 동경성에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화요파)을 재결성하고 조직부 부장이 되였다. 1929년 6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책임비서가 되였다.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주하현 하동촌에서 활동하던 중 당지 관헌에 체포되였다가 9.18사변이 일어난 후 석방되였다. 1931년말에 중공주하현특별지부 조직위원이 되였다. 중공만주성위원회 순시원으로 여러 곳에 파견되여 활동하였으며 1933년 5월 중공주하중심현위원회 서기가 되였다.

(자료출처: 《흑룡강항일투쟁인물록》,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김영호(金永浩, ?—1937): 중공남만성위원회 비서처 처장

1936년 7월, 중공남만성위원회 비서처 처장이 되였다. 1937년 7월 중순, 양정우가 인솔한 교도퇀의 150여명과 함께 서진을 하던 중 흥경현(신빈현) 황토강에서 일본군, 위만군 500여명과 격전을 벌이다가 리동광 등과 함께 희생되였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길림성조직사자료》, 《동북항일련군사》)

리백성(李柏成, ? — ?): 중공태안-료중중심현위원회 서기

1932년 2월, 중공만주성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태안(台安)-료중(遼中)중심현당위를 결성하고 서기가 되였다. 항일청년 30여명으로 항일의용군(항일구국군)을 결성하였고 5월 20일 중공봉천특별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10여명의 당원들을 두개 조로 나누어 장해천(張海天) 등 항일의용군에 파견하여 개조사업을 하게 하였으며 태안에 주둔한 동북군 제79려 제554퇀 제4련 류한산(劉漢山)부대에 들어가 류한산이 의거하여 항일의용군에 참가하도록 하였다.

(자료출처: 〈중공안산지구 지하조직의 항일투쟁〉, 《중국공산당료녕성조직사자료》)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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