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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주건, 지희겸

김정함 길림신문 2022-07-18 10:30:11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3. 시, 지구급 중공 지도간부

주건(朱健, 1889—?): 중공동만특별위원회 선전부 부장

리성춘(李成春), 왕성민(王成民)이라고도 불렀으며 조선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여나 어려서 동북으로 이주했다. 1913년에 연길현에서 철혈광복단에 참가했으며 1919년 3월 반일시위운동을 주도했다.

1920년에 대한국민회군 간부로 되여 군비 증강에 힘썼으며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 참가했다. 그해 말, 쏘련 경내로 퇴각했다가 1921년 6월 자유시사변을 겪은 후 연해주 이만으로 이동해 10월에 서간도군비단과 대한국민회군을 통합하여 대한의용군사회를 결성하는 데 참여했다.

1923년 1월, 적기단 결성에 참여하고 북만주에서 활동했다. 그해 8월, 연길현 옹성립자에서 고려공산당 만주지방위원회를 결성하고 책임비서가 되였다.

1927년 3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가입하였고 7월에 룡정에서 상해파 공산주의자그룹인 재만조선공산주의자단체를 결성하고 책임자가 되였다.

1929년 3월, 돈화현에서 조선공산당재건준비위원회 결성에 참여했으며 8월에 조선공산당재건준비위원회 만주부를 결성하고 책임비서가 되였다.

1930년 4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5월에 중공연변특별지부 집행위원이 되여 5.30봉기를 지도했다. 10월에 중공동만특별위원회 위원 겸 선전부 부장이 되여 적색유격대 건립에 참여했다. 1931년에 있은 9.18사변 후 항일유격대 건립에 참여했다.

(자료출처: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

지희겸(池喜谦, 1903—1983): 중공주하중심현위원회 서기

조선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여나 1910년 9월 가족과 함께 연길로 이주했다. 1922년 1월부터 1925년 6월까지 녕안현 길림성립제4중학교에서 수학했고 7월에 고려공산청년회 만주비서부에 가입했으며 1927년 7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가입했다. 1928년 10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엠엘파) 북만 제2도 책임자가 되였다.

1930년 9월, 녕안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10월에 중공밀산현위원회 결성에 참가하고 서기가 되였다. 12월에 밀산에서 무장폭동을 기도했으나 실패하고 쏘련으로 피신했다.

1931년 3월 목릉으로 돌아와 중공목릉현위원회 설립을 준비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할빈제3감옥에 투옥되였으며 9.18사변 후 석방되여 할빈총공회 내 당조직 서기가 되였다. 12월에 주하현에서 중공주하특별지부를 결성하고 서기가 되였다.

1932년 3월, 중공주하중심현위원회 결성에 참여하고 서기가 되여 주하, 오상, 쌍성, 연수, 위사 등 5개 현의 당사업을 지도했다. 9월에 있은 ‘홍창회 사건’으로 현당위원회 비서가 되였다.

1933년 4월,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8월에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36년 1월, 만기 출옥 후 연길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하다 1944년 9월 다시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였으며 1945년 4월 석방되였다. 1945년 9월, 연변로농청총동맹 결성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이 되고 중국공산당에 재가입하였다.

선후로 중공연변위원회 선전위원, 연변인민민주대동맹 위원장, 연변철도관리국 국장 등 여러가지 직무를 담당하였으며 1980년 7월부터 연변조선족자치주 정치협상회의 부주석,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길림성위원회 상무위원을 지냈다. 1983년에 사망했다.

(자료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중국공산당흑룡강성조직사자료≫,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인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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