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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조기석(曹基锡)

김정함 길림신문 2022-08-08 11:11:31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3. 시, 지구급 중공 지도간부

조기석(曹基锡, 1904—1932): 중공동만특별위원회 선전부 부장

일명 조영훈(曹永勋)이라고도 하며 1904년에 조선 함경북도 종성군에서 태여나 1912년에 연길현 세전마을(지금의 영성촌 부근)로 이주했다가 소학교를 마치는 해에 다시 룡강동으로 이주했다. 1923년 2월, 룡정 동흥중학교에 입학했으며 재학중 조선공산당 엠엘파 계통의 골간이 되였다.

1925년에 동흥중학교를 중퇴하고 일본 도꾜에 가서 ‘로동조합평의회’에 참가했다. 1926년 5월 룡정으로 돌아왔고 조선공산당 엠엘파 계통의 파견을 받아 황포군관학교 분교인 무한중앙군사정치학교 교도대에 들어가 군사를 배웠다. 1927년 초 국민혁명군 등연달부대에 들어가 북벌전쟁에 참전했다.

4.12반혁명정변 이후, 대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부대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1929년 봄, 조직의 배치로 고려공산청년회 소속 동만청년총동맹의 간부로 되여 한차례의 대규모 반일집회를 준비하다가 룡정의 간도일본총령사관에서 그 기미를 알아차리고 검거선풍을 일으키자 비밀리에 집을 국자가로 옮기고 세린하 연길현공립11학교 교사가 되였다.

1930년 5월, 중공동만특별지부의 5.1투쟁행동위원회 위원이 되였다. 왕청현 5.30봉기 책임자로 하마탕 일대의 5.30봉기를 지도했다. 5.30봉기 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8월에 중공동만특별위원회 비밀교통원이 되였다.

1931년 3월, 중공연길구위원회 서기가 되였고 연길감옥 혁명가들을 구출하는 사업을 지도하였으며 소작투쟁과 추수투쟁을 지도했다. 1932년 1월, 중공동만특별위원회 선전부 부장을 겸하였다.

1932년 3월 24일, 춘황투쟁을 지도하다 체포되였고 4월 23일 ‘대성촌(大成村)참안’에서 살해당하였다.

(자료출처: ≪연변력사사건당사인물록≫, ≪항일련군명록≫)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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